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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환 Jun 24. 2016

비포 더 선라이즈와 조르주 쇠라

때론 멀리서 봐야 잘 볼 수 있는 것

비포 선라이즈’ 와 ‘쇠라

로맨스영화 중에서도 ‘비포 선라이즈(1995)’는 단연코 손꼽히는영화다. 이 영화는 실연당한 주인공이 내일 아침 비행기 시간까지 친구가 되어달라는 황당한 부탁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마법처럼 해가 뜨기 전(Before Sunrise)에 사랑에빠진다. ‘비포 선셋(2004)’과 ‘비포 미드나잇(2013)’으로 20년동안 이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 비포 선라이즈(1995,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두 사람의우연한 만남은 하룻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곳을 경험하면서 점점 발전한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선비엔나 거리에서 제시와 셀린은 우연히 한 화가의 전시회 포스터를 발견한다. 제시가 ‘사람이 배경에 녹아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던 작품을 그린 화가, 바로 ‘조르주 쇠라’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찾아서

영화 속에서는마치 모래로 그린 듯한 쇠라의 드로잉이 소개되었다. 쇠라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점묘법이다. 넓은 캔버스 위에 작은 점을 찍어가며 색과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학창시절미술 시험에 꼭 한번씩은 나온 바로 그것 말이다. 그리고 쇠라의 점묘법 작품 중 정점에 서 있는 그림이바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다.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1888~6, 시카고미술관 소장)


2013년 겨울, 출장을 마치고 시카고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쉬는 것을 포기하고 달려간 곳은 바로 시카고 미술관이다. 문을 닫기 30분 전이라입장료도 할인이란다. 내게 주어진 30분 동안의 미션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관람이었다.

| 시카고미술관에서 만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한 걸음 앞에서 본 ‘그랑드 자트 섬의일요일 오후’

모니터나책 속의 그림과 실제 그림은 달랐다. 우선 어마어마한 그림의 크기에 압도당했다. 저렇게 큰 캔버스 속을 점으로 채워 나가는 화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작품을 위해 쇠라는 2년간 매일 아침 그랑자트 섬에 나가 관찰하고 20점이상의 데상과 40점 이상의 스케치를 그렸다고 한다. 작품에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어느 하나 허투루 버릴 것이 없다.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공간적인 배치를 연구하고, 색채관계를 점검한 그의 집요함에 경외감이 들 정도다. 가까이 다가가니캔버스를 가득 매운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흐나 모네로 대표되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거친 붓터치가 있듯이, 원색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점들에서도 각기 다른 쇠라 만의 터치가 보인다. 탄산 거품마냥 중력을 이기고 어디론가 튀어 나갈 것 같은 점들의 생명력이다.


한 걸음 뒤에서 본 ‘그랑드 자트 섬의일요일 오후’

그런데, 한걸음 떨어져서 작품을 감상하면 또 다르다. 점은 원색이었으나 팔레트에서색을 섞은 듯한 색상이 느껴진다. 이것이 점묘화가 보여주는 마법일까?커다란 캔버스 속의 사람들은 정지버튼을 누른 동영상마냥 조금의 미동도 없다. 사람들은 영원히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 환한 빛은 어떤가? 영원히 지지않고 그랑드 자트 섬을 내리 쬘 것만 같았다. 모든 게 멈춘 그랑드 자트 섬에서는 사람들은 휴일인데도여유로움이 아니라 고독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시절, 스크린속의 셀린은 “사람들이 배경에 녹아 들어가는 모습”이라고말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 잘 볼 수 있는 쇠라의 작품처럼, 우리 인생에선 때론 시간을 조금 두고 보아야 깨닫는 것들이 있다.

분을 바르고있는 젊은 여인(1888~90, 코톨드 미술관)


과학자’ 조르주 쇠라

“어떤 사람은 내 그림에서 시(詩)가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 보이는 건 과학뿐이다.” 

-조르주 쇠라


화가가아니라 과학자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광학과 물리학 그리고 기하학을 연구했던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1859~1891).그 당시 다른 화가들처럼, 불꽃같은 사랑도, 반전에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틱한 삶도 없다. 매일 빛과 색을 표현하는 방법을 대해 캔버스를 실험실 삼아 연구하는심심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의 삶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많은천재들이 그러하듯 단 7점의 작품만을 남긴 채 30대에 독감으로요절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비슷한 점들의 집합이지만 모여서 쇠라의 작품이 되었듯, 매일 다를 것 없는 심심한 쇠라의 삶은 모여서 신인상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인상파 화가들이 주황색을 표현하기 위해 노란색과 빨간색 물감을 섞는 대신, 쇠라는 노란색 점과, 빨간색 점을 공간에 배치했다. 보는 사람의 머리 속에서 스스로 주황색을 섞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 쇠라가선보인 ‘색의 병치혼합’, 색의 조합으로 원하는 색을 생각해낼수 있다


어쩌면, 그는 한 픽셀 안에서 R, G, B 세 색의 조합으로 색을 표현하는현대의 모니터를 미리 생각한 시대를 뛰어넘은 과학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쇠라가 이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

고전으로서쇠라의 작품은 많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쇠라는 기존의 레드오션에서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노력하는 화가가아니었다. 점묘법이란 블루오션을 개척한 새로움을 만들어 낸 화가였다.쇠라의 새로움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학과 과학까지 공부했던 그의 폭넓은 지식과 함께, 매일매일 스케치를 반복하고 점을 찍어나가는 꾸준함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시장을 찾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만 연구할 것이 아니라, 인문과예술도 함께 공부하고, 기초 체력을 쌓으면서 꾸준히 연구하는 장인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듯이말이다.

| 기묘한춤( Le Chahut,. 1889-90, 크륄러-뮐러 미술관소장)


삶의 점들이 하나하나 모여 지금이 되었다

쇠라의작품 속 점 하나 하나가 모여서 커다란 작품을 이루듯이, 지금의 순간 순간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만들었다. 우리의 삶들이 모여서 회사, 사회,국가, 그리고 역사를 만들었다. 쇠라가 점 하나를허투루 찍은 적 없듯이, 찰나와 같은 순간에 스쳐간 인연 하나도 허투루 버릴 수 없다.

다시 영화로돌아와서, 비포 선라이즈에 나오는 집시 노파는 인사를 남긴다. “잊지말아요. 수억 년 전에 별이 폭발해서 세상의 모든 걸 만들었어요. 당신도만물처럼 우주의 점(먼지)으로 이루어 졌음을” 영화 속 노파와 조르주 쇠라는 같은 이야기를하고 있었다.

서커스(The Circus, 1890~91, 오르세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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