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생 책을 만나면 생기는 일
소공녀를 만나다
누구나 책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와 20대 초반이던 이모와 함께 살았습니다. 이모는 부모대신이라는 책임감으로 저의 학교 생활이나 성적에 관심을 집중하여 늘 예습복습을 하도록 저를 몰아세우고는 했지요. 그 당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매달 받아쓰기왕, 계산왕 뽑기를 했습니다. 받아쓰기왕 시험은 단어 몇 개, 짧은 문장 하나 정도의 단순한 받아쓰기가 아니라 긴 문장 여러개를 두 번 읽어주면 맞춤법, 띄어쓰기를 틀리지 않게 다 써내는 것이어서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계산왕 시험은 흔히 말하는 빠른 시간내에 많은 수학 계산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었지요. 이모는 제가 꼭 왕으로 뽑혀야 한다며 초등 저학년이던 저를 매일 잠도 줄여가게 하며 공부를 시켰습니다. 덕분에 저는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라며 교장 선생님도 늘 불러주는 유명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일 아침마다 수학 문제를 다 맞춰야 학교를 보내던 이모가 몹시도 밉고 무서워서 어서 빨리 부모님께 가게 되기를 밤마다 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이 기도가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묵호라는 조그마한 강원도 시골에 있던 제가 부모님이 계시던 울산으로 전학을 가게 된 겁니다. 제가 이제 어느 정도 컸기에 동생들 건사하며 함께 생활해도 되겠다는 어머니의 판단 때문이었지요. 어찌나 기쁘던지! 그 해방감을 이루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골 작은 학교에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던 저는 새로운 학교에서 처음부터 적응 신고식을 뼈아프게 치렀습니다. 전학 간 다음날이 공교롭게도 월말 고사 시험날 이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이전 학교에서 공부했던 범위의 문제였기에 답을 금방 다 쓰고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아는 친구도 선생님도 없는 낯선 학교에서 마침 시험 감독을 들어오신 선생님이 어제 저를 이 학급으로 데려다 주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이전 학교에서 늘 선생님들이 말을 걸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던 기억만 있는 저는 그 선생님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나를 알아봐 주시고 눈만이라도 마주쳐주실까 싶어 시험지를 덮고 선생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지요. ‘선생님, 제 얼굴 한번 봐주세요. 저 선생님 알아요. 선생님도 저 아시죠?’ 하는 주문을 되뇌이며 계속 보던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앙칼진 목소리로 저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전학생 지금 뭐하는 거지? 커닝을 하려고 자꾸 선생님 눈치를 보는 모양인데 이 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디서 나쁜 버릇을 배워 와서는 이러는 거야? 아무리 몰라도 시험문제를 다시 보고 생각해야지. 남의 것 볼 생각에 선생님 얼굴만 살피다니 너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 고개 들지 말고 해!”
그때의 충격과 모멸감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한가득 올라옵니다. 요즘처럼 아이들이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서슴없이 하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저는 그저 억울함에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한 번도 공부문제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 없고 이런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걸 몰랐던 초등 4학년의 저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학교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강원도에서 이모가 보내 온 선물하나를 받았습니다. 처음 제 앞으로 받아본 우편물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열어보았습니다.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소설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1888년에 발표한 소설 “소공녀”였어요. 이전까지 특별히 책을 의미있게 접해 본적이 없었던 저에게는 굉장히 두근거리는 선물이었습니다. 어찌나 재미있고 감동적이던지 책이 다 닳아서 찢어질 만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시골 학교에서 인기 학생이었고 집에 오면 할머니가 해주시는 수발에 공주처럼 살던 저에게 울산에서의 초기 생활은 우울한 날들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새벽부터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 대신 집안일을 하고, 동생 둘을 챙기고, 학교 숙제를 끝내고 나면 겨우 저의 자유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시간이면 작은 다락방을 아지트로 삼아 소공녀를 읽고 또 읽으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곤 했었지요. 부자였던 주인공 세라가 가난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만 밝고 당차게 생활하는 모습이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 그 당시 저의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이 같이 오버랩 되면서 더 위로가 되었던 것이지요. 돈의 소유 여부에 따라 세라를 다르게 대하는 학교 선생님들이 마치 제가 전학 온 학교의 선생님들인 것 같아 소리 내어 욕하기도 했습니다. 내 안에 쌓인 억울한 마음이 책을 통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첫 이미지가 커닝이나 하려는 전학생으로 비춰져 친구들 보기가 부끄러웠는데 다행히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면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오해도 풀리고 다시 예전처럼 학교 생활이 편안하고 즐거워졌습니다. 마치 제가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소공녀의 세라가 된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제가 ‘소공녀’를 읽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어디에도 말 못할 상처를 안고 더 힘들어하지 않았을까요? 이렇듯 책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너무나도 큽니다. 이모가 어떤 마음으로 그 책을 보내주셨는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인생책을 선물해 주신 이모께 다시금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무슨 책을 사 주어야하는지, 공부를 하고는 있는지, 사느라 바빠 관심도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소공녀를 열심히 읽는 제 모습을 보고 월급날이 되면 “어깨동무”라는 그 당시 어린이용 잡지를 매달 사들고 오셨습니다. 월급날이면 술을 한 잔 걸치시고 큰소리로 저에게 “책 잘 읽는 우리 큰딸 아버지가 주는 선물” 하시며 종이봉투를 주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는 매달 잡지를 사 들고 오셨고 그 덕에 동생들과 저의 한달은 그 잡지를 구석구석 읽으며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익어간 저의 독서력은 중학생이 되어 아서 코난도일이 쓴 추리소설 홈즈 시리즈로 넘어갔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제인에어로 정점을 달렸습니다. 이 후 저에게 독서는 지금까지도 평생의 친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성인 독서 수업을 들어가면 수강생들에게 꼭 내 인생의 책을 소개해보도록 합니다. 지금은 기억 속에 묻어두었지만 그 때의 그 책에 대한 감동을 다시금 기억하고 책과의 즐거운 동행을 계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아이들에게도 물어봐주세요.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너의 멋진 책이 있었는지를. 없다면 지금부터 찾아보자고 끌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잊지못할 독서경험을 아이에게 들려주세요.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 한 두 권쯤은 있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책 한권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아이들은 좀 더 쉽게 독서를 평생 친구로 이어가는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우리 부모님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