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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간인 박씨 Jun 08. 2024

꽃이 피고, 시골살이는 더 좋아진다

도심에서야 아파트 단지 정원의 오래된 나무들을 제외하면 

풍성한 식물을 보러 공원로 나가거나, 교외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집 베란다에는 항상 엄마가 키우는 식물이 초록초록하게 자라났었다.


때가 되면 물을 주고, 계절마다 볕을 잘 받기 위해 요리조리 

옮겨놓기도 하고 때때로 영양제도 맞춰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인지라 식구들이 정신없이 생활하는 틈에 

식물별로 돌아가는 녀석들이 종종 있었다.


식물을 제법 좋아하는 터라, 지금도 시골집 안에 잎이 넓은 화분 너댓 개를 키우고 있지만

마음처럼 쉽게 키우기가 어렵다. 

회사일로 바빠 며칠 들여다보지 보지 못하면 금세 시들해 보이기도 하고,

또 이파리가 검게 타는 것들도 있어 여간 까다롭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어라?

정원에는 봄이 오자 작년 겨울 야심 차게 심어놓은 구근, 숙근들이

마치 팝콘 터지듯 땅을 토도독 뚫고 올라온다.

가장 먼저 올라온 싹은

처음에는 작약인 줄 알았다. 


분명 그 자리에 작약 숙근을 심었었으니까.

겨울이 추워야 더 예쁘게 핀다는 작약에겐

지난겨울이 좀처럼 춥지 않아, 

월동이 오히려 더 어려워 꽃을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하던 차에 올라온 싹이라 

기뻐했었다. 


그런데 무섭게 자라나는 줄기가 

내가 아는 작약과는 다르다 싶었던 결과,

아니 이건 뭔데? 처음 보는.. 꽃은 맞나?


찾아보니 금낭화란다. 며느리주머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고.

하트모양 아래 수술이 달린 것 같은 모양에 신기하고, 엄청난 성장속도와 부피에도 놀랐다.

분명 작약인 줄 알고 마음 쓴 게 아쉽기도 반쯤 아쉽기도 하고, 반쯤은 도대체 어디서 왔나 싶기도 하고 :)

추측컨대 작약 숙근을 온라인 구매하면서 두 어개 쯤 잘 못 딸려 온 것 같다. 


우연히 마당 입구 바로 양쪽에서 자라나 이번 봄, 마치 대문같이 활짝 꽃을 피웠다.

나보다는 집에 놀러 온 엄마를 비롯한 중년 여성들에게 특히 반응이 좋았다.

4월 초부터 피어난 꽃들이 창문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피어있다.  괜히 든든하다.



그다음 순서로 피어난 꽃은 수선화.

사실 수선화는 내가 심은 꽃도 아니었고,

이사 왔을 때 보이던 것도 아니라 

꽃이 필 때까지 존재를 모르게 숨어있었다.


처음 줄기가 올라올 때는 

전 주인분이 부추나, 파를 텃밭처럼

키우신 건가 싶은 생김새라

일단 뽑지 말고 기다려보자 하던 차에

하얗고, 노란색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다.


수선화도 이름만 많이 들었지, 막상 도심에서는 

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렇게 운명같이 화단에 입성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 전 주인분이 여기저기 심어놓으셨는지

아침 출근길,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색감에 잠시나마 상큼한 기분이 든다. 





그다음은 부추, 꽃은 아니지만 봄이 되니 뒤쪽 텃밭에 예쁘게 자리 잡고 알아서 자라나고 있었다.

휘휘 뒷밭 정찰을 나가던 중 발견했다. 몇 번 베어 먹어도 금세 다시 자라 연한 부추를 맛있게도 먹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자라는 걸 기다리는 차에 몽땅하게 잘려있어 어리둥절한 일이 있기도 했다.

바닥 쪽에 바짝 잘린 게 가위 같은 도구로 잘린 듯한데, 요 며칠 우리 집은 바빠 수확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지만,

나와 남편은 아까운 부추를 젊은이들이 안 잘라먹으니 동네 어르신이 잘라 드신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살짝 귀엽게도 어르신들은 땅에서 나는 것들을 제때 안 챙겨 먹으면 그렇게 아까워들 하신다.


그럼에도 괜찮은 건 이웃 어르신들이 평소에 우리를 보이지 않게 챙겨주고 계신다는 걸 체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어난 나의 정원 컬렉션 :) 

타샤의 정원까지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얼레벌레 화단이 화려하게 꾸며졌다.

지금도 창문 밖은 작년에 심은 땅장미들이 색색별로 흐드러지게 피다 못해 

꽃 머리가 무거운지 땅까지 닿고 있다.


많은 애정과 관심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나는 꽃들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집 안에 화분에 쓰이는 마음을 1/100이나 주었을까,

그럼에도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계절과 온도의 변화에 따라 피고 지고 건강하게 자란다.




사람도 이렇게 조금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게 몸과 정신에 모두 이롭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매번 생화를 주문하기도 하고, 꽃 집에서 사는 꽃바구니와 꽃다발 모두 다 너무나 좋아하지만

꽃이 주는 생동감과 감동은 흙 위에, 줄기와 잎들이 함께 있는 이 모습이 내겐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한편 50평쯤 되는 우리 집 뒷밭은 추가로 딸린 텃밭과 마당 옆면, 

그리고 화단까지 있어 체감 상 제법 규모가 크다.


딱 로망을 실현하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라고 생각했었지만

9 to 6 직장인 둘이 운용하기에는 사실 녹록지가 않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이사 온 지 반년이 넘었지만 수국을 심고 싶었던 마당 옆면은 아직도 땅을 정리 중이고,

뒷밭에는 우당탕탕 엉망진창으로 참깨와 고구마를 심어놨다.


그런 뒷밭에는 겨우내 죽은 고목들인 줄 알았던 나무 네다섯 그루가 심어져 있는 데,

주말에서야 밭을 둘러보러 가니, 소리 없이 새하얀 꽃이 피었다. 

배꽃, 사과꽃, 체리나무까지. 집주인은 바뀌어도 밭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은 여전히 꽃을 피운다.


꽃을 보고도 우리는 나무 관리까지 할 여력은 없었는 데, 

본인 댁에 약을 치다 남아 우리 집까지 쳐주신다며 아랫집 아주머니께서 훌쩍 약을 쳐주시고 가셨다고 한다.


이런 조용한, 그렇지만 큰 친절과 정에 나는 종종 시골을 선택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다.


집이 단순히 밥을 먹고, 잠들고, 다시 출근하기 위해 사는 곳이 아닌 

살아가는데 든든한 터전이기에 내가 너무 좋아서 남들에게 추천하고 싶지만,

그러면 또 오지랖과 강요가 되는 걸 알기에 이렇게 오늘도 이 마음을 글로나마 남겨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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