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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간인 박씨 Jan 01. 2020

어디서 살 것인가

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서울 at센터에서 하는 전국 귀농귀촌박람회에 참석해보고, 귀촌 카페에 가입해 게시글을 꼼꼼히 읽어보고, '리틀포레스트'도 수 없이 돌려봤지만 사실 시골살이는 여전히 나에게 추상적이고 아득하게 보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는 박람회에서 귀농귀촌지원금 상담을 받는다고 해결될 고민은 아니었다.


시골살이를 시작하는 사과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사과군의 청년귀농귀촌 교육에서였다. 대부분 50대 은퇴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들 사이에서 흔치 않게 '청년'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지자체였고 그래서 청년들의 시골살이를 더 반겨주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또 구체적이고 다양한 시골살이의 방식이나 삶의 모습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원론적인 얘기다.


나는 과군에서 먼저 시골살이를 시작한 청년들이  만족한다는 얘기에 큰 장고없이 살 곳으로 결정했다. 단 두 번 방문으로 결정했다. 어차피 나에게 연고가 있는 시골은 없었고, 떤 시골이 살기 좋은 곳인지에 기준도 없었다. 농사를 지을 게 아니니까 작물이 뭐가 유명한 지도 중요하지 않았고, 땅 값이 비싼 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사무직 일거리는 일단 오면 지천에 널렸다 말에 솔깃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청년들의 얼굴이 밝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그저 마음이 동했다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나와 친구들의 얼굴에서는 보기 힘든 말간 얼굴이었다.




사과군은 인구 순으로 뒤에서 전국 10등 안에 드는 작은 지자체인데, 간혹 나중에 공시 다시 봐서 임용됐는데 소멸되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될 만큼 작은 시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표정에서 느껴진다. 행복감과 여유가.

도시에서보다 거리의 속도감이 현저히 낮고 천천히 흘려간다. 차에게 맞춰진 속도감이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도시를 떠나기 전 친구들과 만나 대화 중에 우리의 고향이자 내가 공직 생활을 한 지자체의 시민들이 대체로 화가 많다는 점에 대해 진지하게 토의한 적이 있었다. 타 시에 비해 면적은 작고, 인구는 폭발적으로 많은 반면 기업이나 회사가 많지 않고 토착 재산가보다 노동자 계급의 이주민들이 많다는 점이 특징으로 거론됐다. 마치 시험 쥐처럼 좁은 공간에 과도한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많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경쟁에 내몰려 분노의 제어가 어렵다는 우리들만의 결론이 나왔다. 시골은 보기에는 허름하지만 분명 내 땅, 내 집, 내 논인 반면에 도시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해 집 한 채 같은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집 한 채는 무슨 방 한 칸 갖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반면에 사과군의 사람들은 부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하나같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시골살이를 먼저 시작한 남자친구(시골살이 계획에 합류한 그는 이직을 했던 나를 대신해 먼저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는 한 달 동안 임시로 거주한 황토집에서 사과 총 5박스를 얻었는데 알고보니  뒷집 할아버지가 툇마루에 툭 놓고 가고, 주인집 할머니가 갖다주고, 일하는 곳에서 선물 받았단다. 또 당분간 혼자 산다니까 참기름부터 비누까지, 생필품을 여기저기서 품앗이해주는 바람에 직접 돈주고 살 일이 없었다.

도시에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가진 재화를 이유 없이 제공한다는 건 굉장히 이상적인 일이 아닌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파트 옆 집 이웃에게 부침개나 사과를 들고 가 나눠주던 일조차 없어진 도시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누군가는 아직 시골 오지랖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다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아직까지는 인정이 넘치는 곳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나는 어디서 시골살이를 하며 살지를 '사람'을 보고 결정한 것이다. 필요한 요건에 맞춰 구겨넣 듯 살 곳을 정하는게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어디서 살 것인지 정한 것이다. 직장까지 얼마나 소요되는 지, 전세로 들어가려면 대출은 얼마나 받아야하는지, 역세권인지, 땅 값이 오름세인지, 학군이 좋은지 같은 기준 대신에. 물론 지금까지 오로지 엄마가 제공하던 따듯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던 내가 어디서 살건지 주체적으로 선택한 첫 경험이기도 하다.




시골살이를 결정한 후 다시 둘러본 사과군 읍내에는 기대한 적도 없던  파리바게트와 다이소, 파스타집, 초밥집, 24시간 순댓국집, 이디야 등등 있다. 좀 더 가면 인스타 감성의 카페와 수제 크래프트 맥주집이 나온다. 물론 마트와 5일장도 있다. 영화 '집으로'의 오지를 생각한 나에게는 되려 컬처쇼크였다. 자차가 있으니 10-30분 이내로 언제든 '속세'를 만나러 갈 수 있는 것이다.

법무사, 세무사, 행정사, 소방서, 경찰서, 한전, kt지사 등
정말로 있을 건 다 있다.

'삼시세끼' 같은 미디어가 오히려 농촌에 대한 일종의 스트레오 타입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마당에 아궁이에 불을 피워 가마솥에 매끼 밥을 하는 게 시골살이라고. 창 문살에는 창호지가 발라져 있고, 장판은 노란색에, 농은 자개장. 거실에는 유행이 지나 두꺼운 TV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을 것 같은 레트로한 풍경. 외부에 있는 화장실 때문에 밤에는 신발을 신고 볼 일을 가야할 것 같은 불편함. 시골살이를 꿈꾸던 나조차도 그게 농촌 생활의 전부인 줄 알았다. 20년 전 돌아가신 시골 할머니의 집이 딱 그러했으니까. 그렇지만 도시의 시간이 지나고 생활이 바뀐 만큼, 시골 역시 시간과 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받는다.

* 사실 삼시세끼는 도시에 살던 나의 최애 프로그램이었고 지금도 VOD로 다시본다.


아궁이는 무슨, 실제로 와보니 인덕션 사용한다.

사과군에서 10만원에 빌려줬던 귀농인의 집: 황토집마저도 리모델링이 전부 되어 있는 기름보일러에 타일이 깔끔하게 깔린 욕실이었다. 현재 완전히 자리를 잡은 벽돌집 역시 전기밥솥을 쓰고, 인덕션으로 찌개를 끓이며 거실에는 빈 백이 놓여있다. 농촌 사람들이 도시민의 일상 생활 수준에 못 미칠 거라는, 이 무지한 착각은 또 이렇게 와서 내 눈으로 보고 체험해보고서야 수정되어 간다. 더 건강한 먹거리로 요리하고, 채광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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