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새벽 4시, 나는 하루와 먼저 약속을 한다

by 마테호른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몸이 먼저 눈을 뜬다.

아직은 겨울이라 창밖은 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차가운 공기가 가만히 내려앉아 있고,

세상은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아기처럼 조용하다.


채 5시가 되기 전, 차에 오른다.

이 시간의 도시는 낮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서두르는 사람도 없고, 쫓기는 기색도 없다.

도시 전체가 깊은 숨을 고르고 있는 시간 같다.


그렇게 운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진다.

어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일, 오늘 해야 할 일, 그리고 아직 말로 꺼내지 않은 마음들까지.

차 안은 그저 떠올랐다가 사라져도 괜찮은 생각들로 채워진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생각들이다.


5시 40분쯤 회사에 도착한다.

건물은 아직 완전히 깨어 있지 않다.

불이 켜진 창보다 꺼진 창이 더 많고, 복도에도 사람 기척이 드물다.

하루가 막 시작되기 직전이라는 이 미묘한 공기가 나는 좋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내린다.

따뜻한 김이 천천히 올라오고, 손끝으로 온기가 전해진다.

그제야 비로소 오늘 하루와 마주 앉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지, 어디까지 힘을 써야 할지,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를 조용히 가늠해본다.


나는 이 시간에 오늘 하루를 계약한다.

무리하지 않겠다고, 필요한 만큼만 애쓰겠다고, 그래도 맡은 몫은 끝까지 다하겠다고.

이 약속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나 자신에게만 하는 약속이다.


그래서 이 시간이 좋다.

아직 아무도 요구하지 않고, 아직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시간.

하루가 나를 데려가기 전에, 내가 먼저 하루를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아마 그래서 이 새벽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둡지만 고요하고, 차갑지만 정직한 시간 속에서 나는 오늘의 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다.

그렇게 하루는, 아주 조용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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