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늦가을, 일 년 중 가장 바쁜 결산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불과 몇 달 전에 치료했던 왼쪽 어금니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결산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통증이라고 제멋대로 진단을 내린 뒤 그렇게 며칠을 버텼다. 그러다가 통증도 통증이지만 쓸데없이 아픈 걸 참고 있다가 치료 후에도 한참이나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버티는 걸 포기하고 부랴부랴 치과를 찾았다. 간만에 찾은 치과, 그 대기실 구석에 앉아 나는 ‘무섭다’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역시 치과는 언제 와도 무서운 곳이었다. 나는 죄지은 사람 마냥 마음을 졸이며 한쪽에 앉아, 나의 심판이 내려지길 기다렸다. 30분 정도 대기 후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치료실로 들어갔다. 원장 선생님은 문제의 어금니를 보시더니 인자한 미소와 함께 별다른 고민 없이 판결을 내리셨다.
“이건 못 살려. 빼야 해.”
예상치 못한 어금니 소식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빼는 거 ‘빼곤’ 다 하겠다고 사정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 나이에 벌써 임플란트라니, 임플란트 하나에 얼마더라, 많이 아픈가, 이런 생각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상하게도 ‘어금니를 빼도 되는가’였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말이 머릿속에 내재된 것인지, 내 어금니이지만 내 멋대로 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식간에 굳은 내 얼굴을 보며 치위생사 선생님이 웃으며 말을 건네셨다.
“보호자분께 연락하실래요?”
나는 말없이 동의의 고개를 끄덕인 뒤, 치료실 의자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 채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어금니 빼도 돼?”
보호자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힘은 컸다. ‘빼야 한다는 데 별 수 있냐, 빼도 괜찮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어금니와 작별할 결심이 들었다. 10분 후 어금니 하나가 뽀각, 소리를 내며 뽑혀 나갔다. 솜뭉치를 왼쪽 볼에 가득 문 채 치료실을 빠져나왔다. 대기실은 처음보다는 한산해져 백발의 할아버지, 50대 아저씨, 그리고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엄마와 여자아이 이렇게 4명뿐이었다. 나는 수납 데스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다음 판결을 받기 위해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혼자서 쓸데없이 추측을 시작했다. 누가 들어가든, 다들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저처럼 뽑고 나올 수 있다고요, 라고 속으로 진심 어린 경고를 함께 보내며. 잠시 후 내가 나왔던 치료실에서 ’00 보호자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나자,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제야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던 그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는 걸 알았다. 보호자로 온 아저씨를 할아버지가 느릿한 걸음으로 뒤따랐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 나는 아빠의 등이 떠올랐다.
몇 년 전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다. 우도로 들어간 날, 근처 카페에서 쉬고 있겠다는 엄마와 동생을 놔두고 아빠와 둘이서 우도 등대 공원으로 향했다. 어딘가를 올라간다는 것 자체에 익숙해 있지 않은, 한마디로 심각한 운동 부족인 나는 금세 뒤쳐졌다. 바람은 또 어찌나 세게 부는지, 숨 쉬는 것조차 두배로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다는 이유로 걷고 서고를 반복하다 보니 아빠와의 거리가 영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시야에서 아빠의 등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아빠는 중간중간에 멈춰 서 나를 기다려줬다. 그리고 다시 앞장서서 걸었다. 겨울이면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아빠의 황토색 패딩이 등대의 노란 불빛처럼, 산속의 노란색 리본처럼 보였다. 나는 저 등만 보고 걸으면 되는구나, 그런 안도감이 들었다. 그 안도감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사실 엄청난 거라는 걸 느끼자,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시큰거렸다. 나는 쑥스러워 괜히 코끝에 힘 한 번 준 뒤 아빠에게 뛰어갔다.
“수납 도와 드릴게요.”
수납 데스크 너머로 할아버지와 아저씨가 보였다. 나는 카드를 건네면서도 계속 그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저 아저씨처럼 나도 언젠가 엄마, 아빠의 보호자가 되겠지. 나의 말 한마디로 걱정이 사라질 수 있다면. 내 등을 보고 엄마와 아빠가 안심하고 걸어갈 수 있다면. 그런 보호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치과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몇 달간 임플란트 치료가 이어졌고, 이날 들었던 생각은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주에 드디어 길고 길었던 치료가 모두 끝이 났다. 내년에 보자는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홀가분하게 나가려던 때였다. ‘00보호자님’이라는 소리에 할아버지와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동시에 일어났다. 남자아이는 보호자인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 치료실로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아이도 언젠가 커서 할아버지의 든든한 보호자가 될 수 있겠지. 그 두 사람을 보고, 잊고 있던 이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보호자이다.
“The older I get the more that I see
My parents aren’t heroes
They’re just like me”
- Sasha Sloan <O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