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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준 Nov 26. 2020

세계 최초 축구대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FIFA 월드컵.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AFC 아시안컵. 올림픽 축구 등등등. 

축구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살아가며 수 없이 많은 축구 대회를 보고,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축구 대회의 뿌리를 거슬러 거슬러 끝까지 올라가면 나타나는 대회가 있다.

잉글랜드의 'FA컵'이다.


FA컵(Football Association Cup)은 이름 그대로 '축구협회 컵'이다. 

잉글랜드 축구협회(The FA, Football Association)가 개최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 축구대회. 해서 이 대회를 살펴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즐기고 있는 오늘날 축구(Football)가 무엇인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 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1871년 11월 대회를 처음 개최했다. 창시자는 찰스 올콕(Charles W. Alcock).

자신이 공부한 해로우 스쿨(Harrow School)에서 대회 방식을 가져왔다.

해로우 스쿨은 잉글랜드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이다. 이름은 퍼블릭인데, 영국 엘리트를 교육하는 사립 기숙학교다. 웨스트민스터, 윈체스터, 이튼, 럭비, 해로우 등이 전통 있는 퍼블릭 스쿨로 꼽힌다.

해로우 스쿨은 일 년에 한 번 기숙사 컵 대회를 열고 우승팀은 두목 기숙사 호칭을 얻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선지 축구의 발상지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축구는 잉글랜드에서 탄생했다. 유래는 민중놀이 몹 풋볼(Mob Football)이다. 몹 풋볼은 마을과 마을 사람이 집단으로 겨루는 시합이었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축구라고 하기는 힘들고, 민중놀이라 부르자니 살벌하다. 당시를 묘사한 글을 보면 그냥 패싸움 아닌가 싶다...


'공을 이용한다. 그걸 발로 찬다.'는 방식에서 현대축구 기원을 찾고 있다.

지역마다 규칙이 달랐고 손을 사용하는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몹 풋볼 경기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
세계 최초 축구대회 FA컵 창시자 찰스 올콕. 세계 최초 A매치(잉글랜드 : 스코틀랜드)에서는 선수로 뛰었다.



근대 사회로 발전하면서 중세 몹 풋볼이 자취를 서서히 감춘다. 

이 와중에 앞서 언급한 퍼블릭 스쿨로 풋볼이 흘러 들어갔다. 각 학교는 나름대로 규칙을 다듬기 시작한다. 

해로우 풋볼, 이튼 풋볼, 럭비 풋볼 등 학교 이름을 딴 각종 풋볼이 탄생한다. 물론 이때도 규칙이 달랐다.



"모두 자기가 졸업한 퍼블릭 스쿨 규칙에 따라 경기를 했다. 나는 이튼 출신 남자가 럭비 출신 남자에게 고함을 지른 것을 기억한다. 이 사람이 공을 손에 들고 플레이했기 때문이다."



퍼블릭 스쿨 졸업생들은 풋볼을 즐길 때마다 규칙이 달라 애를 먹었다. 경기에 앞서 규칙을 합의한다지만, 각자의 몸에 익은 방식이 달라 곧장 문제가 생기곤 했다. 이런 와중에도 "어쨌든 풋볼은 하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풋볼 규칙을 통합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고 1863년 10월 26일,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창립됐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축구를 관장하는 최초의 조직체였다.


창립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은 '손을 사용할 것인가'였는데, 축구협회는 손을 배제하고 발만 이용해 공을 드리블링(Dribbling)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럭비 스쿨은 끝까지 손을 사용하는 규칙을 고수했고 1871년 럭비 풋볼 유니온(Rugby Football Union)을 창립하며 다른 길을 걷는다. 오늘날 풋볼(Football)이라는 단어가 축구와 럭비 모두를 뜻하는 배경이다.


축구협회는 런던 그레이트 퀸 거리에 있는 펍(Pub) 프리메이슨스 테이번(Freemason’s Tavern)에서 창립됐다.
축구협회 150주년을 기념하며 창립 장소에 세운 기념 표지석.   



축구와 럭비 분화가 보여주듯이 규칙을 통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런던에 기반해 탄생한 축구협회는 규칙을 관장하는 유일한 조직체가 되고자 했고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 생겨난 규칙도 필요하다면 적극 받아들인다. 

간접 프리킥, 코너킥, 크로스바를 통한 골대 규격 등이 중부 셰필드에서 생겨나 협회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런던과 셰필드는 부산과 원주 간 거리 정도로 이해해 볼 수 있겠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개방적인 태도로 '축구 규칙'을 점점 하나로 묶어내고 있었다. 이때 규칙을 통합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대회가 있었다. 찰스 올콕이 해로우 스쿨 기숙사 컵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FA컵'이다.


덧붙여, 해로우 스쿨 기숙사 컵은 각 기숙사가 한 팀으로 참가했다. 당시 기숙사 정원은 11명이었다.





오늘날 축구 대회의 기원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잉글랜드의 'FA컵'과 만나게 된다. 대회는 축구 규칙을 통합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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