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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을 예쁘게 보정하는 게 잘못이야?

그런데 여동생이 읽어주니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by 김병섭

어제 집에 왔는데, 핸드폰을 보니 에스크 앱에 질문이 와 있었다. 클릭해서 보니 “사진이랑 실물이랑 다르던데?”라며 악의가 느껴지는 듯한 질문이었다. 내 실물을 아는 사람이 한 거라고 생각하니 앞에서 말하는 것도 아니라 뒤에서 말했다는 것에 대해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외모 콤플렉스가 정말 심해서 자존감이 낮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세상이 멈춰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외모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었고 다른 아이들보다 예민했던 나는 외모에 대한 평가를 들을 때마다 자신을 깎는 고통을 겪었다. 겨우 나를 지켜냈다고 생각했었는데,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속이 상하고 만다.


내가 내 마음에 들게 내 사진을 예쁘게 보정 하는 게 타인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보정을 해야만 내 얼굴에 겨우 만족하는 내 자신도 미웠다. 나라면 나를 제일 사랑하고 아껴줘야 하는 건데, 나조차 나의 외모를 외면하며 산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 질문을 거절하고 말았다. 솔직히 다른 것도 맞는 말이고 일부러 내 기분을 나쁘게 하려고 한 것 같아서 원하는 대로 해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상처 주려는 말들을 가슴 속에 담고 살기엔 인생은 짧고, 좋은 것만 눈에 담기도 아까운 시간이다. 이렇게 나는 애써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울고 싶지 않았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져서 일기장에 반성문을 적었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갔다.


여동생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며 감정이 다시 격해져 펑펑 울었다. 동생은 그런 나를 달래주고 내 일기장을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동생은 나를 웃겨주기 위해 오글거리게 쓴 부분들을 골라 나를 흉내 내었다. “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상처 주려는 말들을~여기서 울었다 백퍼 ” 동생은 내가 쓰면서 감정이 격해진 부분들을 찾아내 분명히 이 부분에서 울컥했을 거라며 웃었다. 나를 너무나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여동생이 읽어주니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할 정도로 홀가분하고 울면서 쓴 일기장의 내용이 웃기게 들렸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웃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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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일어나 보니 에스크 앱에서 알림이 와있었다. 살짝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무슨 내용일지 생각하며 클릭했다.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어제의 질문에서 물음표를 뺀 똑같은 질문이 와 있었다.


이렇게까지 나의 기분을 자극하려는 것이 퍽 우습게 느껴지고 괜히 웃음이 났다. 사실 어제 잠들기 전 나중에 이런 말이 또 듣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말할지 속으로 생각하며 잠들었었는데, 이렇게 빨리 질문을 할지는 몰랐었다. 어제 가슴 속에 담고 잠들었던 말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것 이다.


“거울이나 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간략하게 답장한 뒤 가방을 챙기고 학교로 향했다.

그 날 따라 등교하는 길이 가볍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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