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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ul 13. 2022

산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_1

영남알프스 완등 도전기_01

2022년 7월, 남편이 황금 같은 금, 토요일에 1박 2일로 회사 워크숍을 간단다. 남편 없는 동안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 딱 맞춤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토요일은 아이들과 영남알프스 9봉 중 하나인 가지산 등산을 가야지!     


영남(울산, 양산, 밀양)권에서 해발 1,000m 이상 되는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고헌산(1,034m), 운문산(1,188m), 문복산(1,015m) 이렇게 9개 산을 일컬어 영남알프스 9봉이라 한다. 2019년부터 시작한 <영남알프스 인증사업>은 2022년부터 ‘영남알프스 완등 인증’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9개 산의 정상석과 함께 얼굴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 등산 인증을 하면 울산 울주군에서 완등 인증서와 함께 완등 기념 순은 메달을 주는 이벤트이다. 2022년 1월 영축산을 등반하며 시작한 우리 가족의 영남알프스 9봉 완등 도전이 천황산과 재약산, 운문산 등 4봉 등산 이후 남편의 무릎 부상으로 일시 휴업 상태였다. 매년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던 이 사업에 올해는 7만 명이 도전 중인데 최근 업데이트된 공지사항에 의하면 2022. 7. 10. 17시 기준 22,023명이 완등 했다고 한다. 완등 기념 메달은 3만 개 한정인데 벌써 2만 2천 명이 미션을 완수했다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여름이라 너무 더운 덕에 등산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지금이 다른 도전자들을 따라잡기에 적기였다. 아직 무릎이 온전치 않아 해발 1,000m 이상의 등산은 무리인 남편이 없는 이번 주말에 후딱 제일 높은 가지산에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아직 오르지 못한 영남알프스 5봉 중 가지산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가지 산장’ 때문이다. 정상 바로 1m 아래에 있다는 가지 산장은 황태 등을 넣어 끓인 맛있는 라면과 순희 막걸리가 유명했다. 아이들과 등산을 할 때는 먹거리가 주요한 유인 수단이 되기 때문에 산장이 있는 산이 선택의 우선순위가 된다. 아이들은 산행에서 처음으로 먹었던 영축산의 취서산장 라면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종종 이야기한다. 그때 먹었던 라면이 ‘진라면 매운맛’으로 끓인 거여서 그날 이후로 우리 집 부식 창고에 진라면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주 일요일 오전에 가덕도 연대봉에 올랐다가 내리쬐는 땡볕에다 흙길에서 올라오는 지열이 더해져서 더위 먹을 뻔했던 경험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새벽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미리 이온음료를 냉동실에 채워 얼려 놓고 내일의 등산을 위해 혼자만의 불금을 불태우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 아침 5시 15분, 잠이 덜 깨 무거운 몸으로 좀비같이 흐느적흐느적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평소 아침을 아주 간단히 먹는데 오늘은 산도 높고 더운데 배고파 기운 빠져 퍼지면 안 되니까 든든하게 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사탕, 껌, 단백질 바, 텀블러에 넣은 물과 얼린 이온음료 2통을 챙겨 모두 내 배낭에 넣었더니 제법 무거웠다. 여름이라 물과 음료수를 많이 챙긴 탓이다. 그래도 부족한 것보단 넉넉한 게 낫다. 여기서 팁을 하나 주자면, 물은 보냉 기능이 있는 스텐 텀블러에 각얼음을 넣고 물을 담아가는 게 좋다. 페트병째 얼리면 녹는 시간 맞추기가 어렵고 녹으면서 페트병이 땀을 너무 흘려 가방이나 옷이 젖기도 한다. 스텐 텀블러는 미리 얼려 놓지 않아도 되는  데다 꽤나 기능이 좋아서 각얼음이 빨리 녹지도 않고 산행 내내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어 좋다. 그리고 텀블러는 땀도 흘리지 않아서 쾌적하게 들고 다닐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오전 6시, 가지산 최단코스로 다녀올 수 있는 석남터널로 목적지를 검색하고 출발한다. 아이들과 갈 때는 최단코스로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 등산이라는 게 꼭 정상을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목적의식과 성취감을 주려면 정성을 찍는 게 좋다. 부산에서 석남터널까지 차로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따로 주차장 없이 터널 입구 근처부터 도로 가장자리에 다들 주차하기에 뜨악했었는데, 가서 보니 산 중에 있는 터널이라 통행량이 많지 않아 그렇게 길가에 주차해도 큰 염려는 없어 보였다. 터널 입구에 화장실이 있는데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화장실이므로(가지 산장에 화장실 없음) 다녀오는 게 좋다. 그리고 허름한 외관에 비해 산에서 가본 화장실 중 손에 꼽히게 깨끗하고 휴지도 비치되어 있는 좋은 화장실이었다. 또 터널 옆에 있는 난데없는 들머리치곤 에어건도 구비되어 있었다. 참고로 앞서 갔던 영남알프스 4봉에는 에어건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오전 7시 15분, 등산을 시작한다. 오늘 코스는 석남터널-중봉-가지산 정상-원점으로 회귀하는 단순한 코스이다. 최단 코스답게 들머리 초입부터 바로 가파른 계단이 등장한다. 보통 최단코스인 경우는 차나 케이블카 등으로 고도를 많이 높여서 시작하거나 가파른 경사로를 쭉쭉 올라가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곳은 후자에 가까운 듯했다. 계단 지옥을 내리 15분쯤 걸으면 능선길이 나타난다. 능선길은 자갈이 많이 깔려있어 미끄러운 탓에 편안하진 않지만 계단 초입부터 내내 그늘 길이라 덥지 않아서 좋았다. 또 아침이라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도 없었다. 확실히 여름에는 새벽이나 야간 산행이 좋을 것 같다. 

어느 산에 가더라도 부모와 같이 산에 오는 어린이들이 한 두 명쯤 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무더운 여름, 이른 아침, 높은 산’이라는 어른들도 꺼리는 조합 덕에 산에서 좀체 어린이들을 만날 수가 없다. 덕분에 등산객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 집중이다. 특히 둘째 녀석은 9살인데 미취학 아동인 7살 정도로 보이는 절대 동안의 소유자인지라 더 사람들이 대견해하고 간식도 잘 나눠주신다. 걸인들이 강아지나 고양이 데리고 다니면 성과(?)가 좋다더니 왜 그런 건지 나도 알 것 같다. 인간은 어리고 귀여운 것에 약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가파른 바위 길이 자주 등장한다. 손을 써야 오를 수 있는 길이다. 방심하면 손이 긁히기 쉽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가다가 결국 액정 필름을 긁어먹고 말았다. 핸드폰을 살펴보다 새끼손가락이 바위에 긁혀 피가 철철 났다. 등산용 장갑을 챙기면 좋았을 뻔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가방 어깨끈에 다는 핸드폰 가방과 여름용 등산 장갑, 등산 스틱을 쇼핑 목록에 올려놓았다. 튼튼한 몸만 있으면 어느 산이든 다닐 수 있어서 가볍게 시작한 등산인데 산에 다니다 보니 자꾸 용품이 눈에 들어온다. 취미는 장비빨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나 같이 물욕 많은 사람에겐 특히 그렇다.

등산 루트 내내 그늘이 적당하여 좋았다. 산이 높고 깊을수록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을 더 많이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조망이 터져 있어 답답하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멋진 바위가 저 멀리 보여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쌀바위라고 한다. 오늘은 원점회귀 코스지만 쌀바위 쪽으로 하산 가능하다고 하니 다음번엔 쌀바위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정상에 거의 다 올라왔다 싶더니 중봉(1167m)에 도착했다. 여기서 바라보는 가지산 정상은 꽤 멀어 보여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실은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가파른 바위길을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정상이 나왔다. 사방이 터져있어 주변 경관이 시원하게 보인다. 새로 만든 것 같은 큰 정상석과 낙동정맥 표지석과 함께 작은 정상석이 있다. 여름이어서 그런 건지 정상석 사진은 줄 서지 않고 빠르게 찍을 수 있었다. 지난 2월 재약산에 갔다가 길이 좁고 줄이 너무 길어서 결국 인증사진을 못 찍고 아쉽게 돌아섰는데...... 정상석 사진 찍으려고 줄 서는 것도 번거로웠는데, 요번 여름 중에 반드시 영남알프스 완등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은 데다 더운 날씨에 물과 음료수를 많이 마셨더니 전혀 배고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가기 아쉬우니 가지 산장에 들렀다. 라면 두 개와 순희 막걸리를 주문했다. 과연 듣던 대로 황태와 어묵을 넣어 끓인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라면 국물을 안주삼아 순희 막걸리를 비워내고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하산했다.

가지산장의 맛있는 라면과 막걸리. 산에서 먹으면 특별한 맛이 난다.

빠른 하산이 우리 아이들의 주특기인데 가파른 돌길 탓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둘째 녀석은 두어 번 미끄러지더니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신발을 살펴보니 밑창이 너덜너덜하다. 나는 중등산화 신고 왔는데, 아이들은 평소 신는 운동화를 신고 왔더니 미끄러운 모양이었다. 얼마 못 신고 발이 커버릴까 봐 등산화 사주는 것을 미루고 있었는데, 다음번 등산 전에는 등산화를 사줘야겠다.

예전엔 산에 오르는 내내 불평불만이 많았는데 가지산에선 하산길에 이르러서야 피곤이 몰려오는 모양인지 내려가는 길에 자꾸만 징징댄다. 처음 갔던 영축산 정상에선 첫째 녀석이 너무 힘들다고 울고불고 사진 찍기도 거부해서 정상석에서 같이 찍은 사진 하나 없는데, 가지산에서는 각종 포즈로 사진을 찍어댄 것만 봐도 정상까지는 컨디션이 제법 괜찮았던 것 같다. 해발 1200m의 산은 어른들에게도 만만치 않은데 꿋꿋하게 완등 한 아이들이 대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 녀석 모두 힘들었지만 예상보다 엄청 많이 힘든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오늘도 아이들은 ‘체력 +1’의 신체 능력 포인트를 올리며 핸드폰 게임도 +1시간 얻어냈다. 덕분에 나의 엄마력도 +1 된 것 같다.      


tip) 여름 등산은...

여름에 등산을 한다면 아침 일찍 시작하세요. 새벽 5시면 이미 날이 밝아오고 공기는 선선해서 등산하기 딱 좋아요. 물과 이온음료는 넉넉히 준비하고, 자주 마셔주는 게 좋아요. 더워서 간식은 잘 안 먹히고 물만 찾게 되더라고요. 땡볕의 등산은 2배는 더 힘들고 무리하면 빨리 지치고 더위 먹을 수 있으니 페이스가 너무 빨라지지 않게 천천히 다니는 게 핵심입니다.


가지산은...

가지산은 스틱을 가져가면 훨씬 편할 것 같아요. 등산장갑도 있다면 챙겨주세요.      

가지 산장 라면 꼭 드셔 보세요. 강추합니다! 들머리인 석남터널 인근에도 식당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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