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뜸 들어선 골목의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나의 용기는 내가 오른손잡이라서. 모퉁이 그림자 진 자리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근거 없는 확신과 자신감이 충만했다. 모래 바람이 입 안에서 딱딱 씹히고 각질처럼 말라비틀어진 낙엽가루가 입에 들어오던 시절. 이사를 가거든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나의 지표는 오른쪽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동그란 놈 정수리에서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도는 것은 이놈이 오른쪽으로 도는 까닭이요, 나의 오른쪽 다리가 짧은 까닭이고, 오른손이 더 작은 까닭이다. 이따금씩 왼쪽을 돌아보곤 하지만 공간(空間)만이 있을 것이라 다시금 오른쪽으로 돌아본다. 관성적으로 돌던 사이 갑작스레 마주친 돌 하나에 머리를 새게 맞는다. 핑그르르 핑그르르 세상이 돌아간다. 어느새 내게 오른쪽은 왼쪽이 되었다. 아니 혼미해진 탓일지 앞인지 뒤인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 발을 디뎠다. 가을은 봄이 되었고 겨울은 여름이 되었다. 거친 숨을 내뿜는 히터 탓이나 구멍 난 하늘에 온난화는 탓은 아닐 것이다.
이제 들어선 골목엔 기대감을 맞이할 수 있는 까닭은 내가 방향을 잊은 탓에. 모퉁이 가로등 빛 든 자리 어딘가로 들어서면 근거 없는 행복과 만족감이 충만했다. 벚나무 꽃잎이 폭신하게 깔리고 근사하게 물이 빠진 낙엽이 말린 김처럼 내리거든, 어디로 가든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빙글빙글 도는 동그란 놈 정수리에서 내가 밟아 굴리는 데로 굴러가는 것은 내가 혼미해진 까닭이요, 잊어버린 까닭이고, 생각지 않는 까닭이다. 이따금씩 여기가 어디인지 생각해 보곤 하지만 다시금 밟아 일어난 먼지처럼 기침 한 번에 없어지곤 했다. 생각 없는 돌이킴에 빠져있던 사이 갑작스레 떠오른 돌 하나에 머리가 깨어난다. 돌던 세상은 멈춰간다. 어느새 왼쪽은 오른쪽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걸어왔던 길에 누운 발자국을 담아다 물어본다. 잘게 밟힌 나의 발자국은 말을 잃었다. 치워버린 자리엔 녹아있는 눈 자욱만이 온기를 담고 있었다. 멍하니 온 길을 바라보고 나의 짧은 오른쪽 다리를 바라보다 다시금 뒤돌아 짧아 기울어진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나는 오른손잡이, 오른발잡이니까. 오랫동안 침묵했던 입을 떼어내곤 흐트러진 앞머리를 치워보았다. 한때는 이유 없던 것들에게 존재를 말해준다. 오른쪽. 아니 옳은 쪽으로 가야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