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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민 Oct 18. 2024

일어날 일과 일어날 사람

이젠 나의 퇴사 이야기

 한 해 동안 적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업무는 사라졌고, 변화는 많은 그런 일과를 이어 붙여 보내고 있다. 의리나 정에 기대 원하는 것을 해주려 했지만 사람이란 게 종이 뒤집는다고 다른 장표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요즘의 사람들. 나라는 것은 디지털화되어 가는 문서들처럼 더 이상 다른 장을, 다음 표를 넘겨보지 않는다. 나열된 PDF로 스크롤로 내리듯 앞 페이지의 내용과 이어지며 새롭게 붙이는 과정의 연속성처럼 순서를 맞추어 서순으로 본 듯 나란 사람을 올려다보기도 내려다보기도 할 수 있는 것이겠다. 프로듀서라는 나의 멀쩡한 직무를 손바닥 뒤집듯 가소로운 일이라며 가스에 불 붙이듯 가벼운 언사로 나의 심기와 육보를 뒤틀어내며 바꿔놨던 그 결과는 TF팀으로써 전사 교육이란 명목으로 직원들의 시간을 빼앗는 사람이 되었다. 잘 쓰고 있는 사람, 생각이 바뀐 사람들이 있지만 결국 안 쓸 사람들은 안 쓰는 것에 줄 세워 꼬리표를 붙여가며 누구는 쓰고 누구는 안 쓰고 누구는 듣고 누구는 듣지도 않고 따위를 가위질 해댄다. 불편함과 날카롭게 찢기듯 들리는 키보드 소리 가득, 그 구석에서 나의 일 하나 없이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새로운 사업을 만들라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무슨 말일까? 나는 사업전략을 구상하던 사람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 또한 아니지만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다. 나가면 그만이었지만 내 옆에 앉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를 두고 갈 용기는 아직 모자랐다. 나는 AGI의 생성 개념, 구성하는 아키텍처, 쌓여있는 레이어의 존재만 알뿐 그것을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소위 말하는 비전문가인 전문가이다. 그런 내가 무엇을 응용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용기 내어 아이디어들을 구겨보지만 내 옆의 친구는 고개를 가로지을 뿐이다. 물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블루투스 샤워기를 만들려는 내 용기가 그 친구의 눈빛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유난히도 더웠던 9월 초, 내리쬐는 스트레스에 하염없이 물을 연거푸 삼키고 손바닥 한 뼘만 한 선풍기는 이런 내 기분을 아는지 그 작은 몸으로 연신 몸을 흔들며 바람을 내어주고 있었다. 이젠 물어보기도 민망한 내용들을 창피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쓴 맛에 담아 목구녕으로 넘기곤 이런 부분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체크해 가며 문서들을 정비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꽂힌 생각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인 생각들이었나 보다. 안 되는 것에 대한 다양한 근거와 비용 등을 제시해도 어떻게 이 회사를 일으켰는지 궁금할 정도로 아무런 비전을 내세울 수도 없는 상황에 투자받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에 문어발처럼 꼬인 내 뇌는 탈출을 꿈꾸는지 천장을 두들겨댔다. 멍청하게 빙글거리는 내 자리 의자에게 미안했다. 누군가의 무책임을 나의 무지함의 무게를 더해 엉덩이로 흠씬 깔고 앉아있었단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쏟아져내렸다. 한때는 나와 함께 작품에 열의를 가졌을 녀석이랴. 바쁘단 이유로 보지도 듣지도 않는 보고서와 새로운 아이디어, 밀고 있는 생각에 대한 반박 근거를 나열하던 가을이 오던 어느 날. 나의 1년은 색을 잃은 채 방치되고 나의 경력엔 빨간 줄이 그어질 것 같았다. 반복될 이 상황에 그제야 거울 앞에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일어날 일과 일어나야 할 사람을 알게 되었다. 




어젯밤 바라본 밤하늘의 달이 참 동그랗다 말았다. 밝은 빛 덕인지 그림자의 그라데이션이 부드럽게 보였다. 맨눈으로 그림자의 부드러운 이어짐과 달의 동그란 모양을 느껴보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걸어가는 건물 사이로 사라지는 달의 모습이 아직은 완전히 동그란 것은 아니었구나. 한때는 그저 #000000 같던, 구름이든 비든 눈이든 보고 싶으면 달을 볼 수 있었다. 이제 퇴사를 준비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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