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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Jun 25. 2022

지구에겐 미안하지만
오늘도 에어컨을 틀었다

여름마다 돌아오는...

여름이 돌아왔다.

그닥 싫어하는 계절은 아니지만 다른 계절과는 달리 유독 신경이 쓰이는 계절이다. 시작은 중2 무렵이었던 것 같다. 2차 성징이 시작되고 나서 내 피부는 급격히 습해지고 예민해졌다. 여름철만 되면 팔과 등에 열감이 느껴지고 간지러움을 느꼈다. 이게 적당한 정도면 괜찮은데 심할 적에는 밤마다 긁고 싶은 충동 때문에 고통스러워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어릴 때처럼 증상이 크진 않지만 여전히 팔에 남아있는 거뭇한 흉터들을 보자면 여간 신경 쓰이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 덕에 남들이 "팔에 뭐예요? 왜 그런 거예요?" 라며 툭 던지는 질문에 괜스레 팔을 쓸어내리며 내 얕은 콤플렉스라며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태도를 취하곤 한다. 


그래도 겨울은 견딜만하다. 습하고 더운 것만 피하면 그럭저럭 살 만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름은 얘기가 다르다. 가만있어도 습하고 덥다. 하물며 밖에 나가고 앉아서 집중하는 게 현대인의 필수 덕목이 된 세상에 내 피부는 여름이면 정말 최악의 환경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다행히 내게는 신의 선물과도 같은 에어컨이 있었다. 가장 증상이 심해지는 밤에는 에어컨과 서큘레이터를 동시에 틀고 잠에 든다. 그러지 않으면 피부가 남아나질 않는다. 물론 가뜩이나 공공요금이 오른다는데 내 피부를 위해 이렇게나 많은 전기요금을 지불하는 게 맞을까라는 서민적인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돈으로 정신 건강을 산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요금을 낸다. 



그런데 요즘은 에어컨을 틀면서 한 가지 생각을 덧붙이곤 한다.

좀 웃긴 문장일 수도 있지만 '북극곰에게 못할 짓'이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따지고 보면 북극곰 입장에선, 더 크게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내 행동은 어처구니가 없을 수 있다. 운 좋게 지구를 차지한 인간이라는 종족 주제에 게다가 그중에서도 한 개체밖에 안 되는 놈이 지(?) 피부 좀 편하게 하려고 북극곰의 터전을 빼앗았으니 말이다. 북극곰 입장에선 상당히 어이없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미안한 마음을 담아 에어컨을 틀긴 해도 되도록이면 오랜 시간을 틀기보단 시간을 정해놓고 틀고, 에어컨을 쓰는 대신 북극곰의 터전을 위해 텀블러를 쓰거나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일회용품을 줄이곤 한다. 흔하디 흔하게 쓰이는 나의 작은 한 걸음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고 말이다.


실제로 이런 흐름이 요즘은 크게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을 보면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쓰거나 플라스틱을 줄인다. 제로웨이스트를 도전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런 물품을 취급하는 매장들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당장 내가 지금 참여 중인 로컬 프로젝트 역시 리사이클링과 도시 재생을 위한 것이니 나 역시 환경 친화적 대열에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또 공장식 사육에 반대하며 비건이 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종종 기사로 접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팔로우하는 각종 단체들도 '탄소 중립',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 '에코'를 콘셉트로 내세우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환경보호주의자나 환경운동가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인물이 못 되는 것 같다.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데 인물이 어딨어! 작은 실천부터 하는 거지"

라며 누가 말할 수 있겠다. 동의한다. 나 역시 그렇기에 소소한 행동을 하긴 한다. 하지만 내가 그럴 인물이 못 된다는 건 내 솔직한 마음 때문이다. 에어컨을 틀면서 '북극곰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지만 에어컨을 틀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다음 달 청구될 내 전기요금이 얼마일까 하는 생각이다. 또 텀블러를 쓰긴 해도 종종 바쁘거나 귀찮은 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쿨하게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당장 오늘만 해도 썼던 플라스틱을 한 손으로 충분히 다 셀 수 있다.


애당초 마인드가 '적극적 환경 보전'보다는 '그래, 좀 줄이면 좋지' 정도에 있다 보니 언젠가는 참 유별난 세상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게 심해져 한껏 시니컬 해 질 적엔 정의롭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삶 중 친환경적인 모습 하나만을 부각해 개념 있는 척하는 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을 내가 감히 어떻게 무시하고 조롱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런 모습들을 내가 갖기에는 난 여전히 너무나 자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라는 느낌이 강할 뿐이었다.


환경과 '나'라는 인간을 볼 때 참으로 많은 생각이 오간다. 지구와 환경에 대한 개념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개념에 10%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게 위선을 느끼기도 하고 플라스틱을 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현실에선 굳이 이런 작은 일에까지 내가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나 짜증이 몰려오기도 한다. 어제는 분명 환경 보전에 힘썼다며 자랑스러워하지만 다시 오늘이 되자 아무 생각 없이 플라스틱을 쓰고 빵빵한 에어컨 속에서 지내는 내 모습이 과연 대체 무엇을 위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걸까 헷갈리기도 한다. 아무런 채무의식 없이 삶을 살아가는 것도 싫으면서 동시에 과한 도덕감에 사로잡히는 내 모습마저 위선이라는 생각에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행동합시다!'라고 하기에도

'너무 과한 PC주의 아냐? 좀 놓고 살아도 돼!'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누군가 해답을 주었으면 좋으련만 남들도 나와 같은 고민이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확실한 건 내일 역시 지구에게 미안하지만 피부 진정을 위해 에어컨을 틀 거라는 사실과 

반대급부로 카페에 나갈 때나 운동할 때 텀블러를 챙길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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