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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May 27. 2022

패스츄리 같은 경험이 모여서

인생은 늘 고민과 선택이다

오글거리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말하자면, 모든 사람에게 인생은 늘 고민과 선택이다.

한번뿐인 내 인생이기에 허투루 낭비하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마냥 게임 속 캐릭터처럼 무모하게 살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선택마다 내 안에 있는 가치관 중 무엇을 앞세울지를 고민하고 또 다른 때에는 전에 선택했던 것과는 다른 가치관을 내세우기도 한다. 한없이 현실적인 가치관이 앞서 나갈 때도 있고 그 사람 마음에 자리 잡은 양심과 도덕의 가치관이 우선일 때도 있다. 모든 이의 과정과 이유, 결과를 알 순 없지만 순간순간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또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최근 들어 영상 일을 하면서 한 판사님과 일을 할 일이 있었다. 정확히는 교수님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학회 행사 영상을 짤막하게 제작하는 일이었는데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일과 페이 그 이상으로 내가 얻었던 건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과 판사님 사이에 덩그러니 앉아 모종의 지혜를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제자의 행동과 말을 관찰하신 교수님은 언제나 그렇듯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늘 생각하지만 결단코 제자가 먼저 묻기 전까지 이러쿵저러쿵 말씀하시는 법이 없다. 가만히 들어주시고 그 눈빛에 늘 나에 대한 믿음을 주신다. 잠깐 교수님과 독대를 할 수 있던 시간이 있어 용기를 내어 물었다. (여기서부턴 교수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표현해야겠다. 차마 마주하고서는 그렇게 부르지 못하지만, 교수님께서 '선생님'으로 불리시길 원하니까)


"교수님께선 저를 보시면 무엇을 알려주고 싶으세요?"


어쩌면 참으로 궁금할 만한,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내 진로에 대한 조언이었다.


"오랜 시간 제자들을 보다 보면 궁금하기도 합니다. 수업에서 보여주었던 학생들의 역량과 모습이 과연 시간이 흘러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예상한 것처럼 풍부한 역량을 발휘하고 살고 있을까 아니면 현실의 어떤 이유로 인해 꿈꾸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어떤 일이든 각자의 선택이니 잘하고 있겠죠. 진국 씨를 보면 공인된 곳에서 경력을 쌓았으면 합니다. 능력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그 능력을 짧게 이용만 하고 진국 씨를 더 이상 안 찾을 경우가 종종 있을 겁니다. 그래서 진국 씨의 능력을 인정하고 책임져 줄 수 있는 곳에서 경력을 쌓아 나갔으면 합니다."


사실 머리를 한 대 쳤다거나 할 힌트를 얻은 건 아니었다. 선생님이 전달해주신 말은 내가 계획해 놓은 올해와 내년의 모습과도 결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신 저 말은 용기를 주었다. 당연히 해 줄 수 있는 말이지만 요즘 시대 누가 저리 당연한 말을 따듯한 어조로 말해 줄 수 있을까. 깊은 관찰과 애정을 담은 고언을 유려하고 따뜻한 문장으로 듣는 순간, 비록 내가 지금 갖는 불안이 올해 안에 사라지지 않을지언정 평생 나를 따라다니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만 들어도 좋은 조언을 판사님으로부터도 들었다. 처음은 진로나 고민에 대한 조언을 들으러 갈 생각은 아니었다. 비즈니스 적으로는(?) 클라이언트와의 만남이었기에 제작한 영상의 수정사항이 있는지 그러면서 만들었던 영상을 전달해주기 위해 간 것이었다.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판사님들은 법복을 입고 무시무시(?)할 것만 같지만, 의외로 판사님은 소탈했고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내게 존댓말을 해주셨다. 한참 영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끝마치고 소박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왠지 선택을 업으로 하시는 분에게 내 선택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니 인생은 겹겹이 쌓아 올린 패스츄리 같아요.

작고 짧은 수많은 경력과 경험들 위에서 진짜 결실을 맺게 되는 것 같아요."


경험을 중시하며 많은 걸 경험해보고 부딪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아가며 나름의 결과를 만들고 스스로도 뿌듯할만한 성과를 쥐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소소함들 사이 드문드문 있는 꽤 괜찮은 성과와 경험들이 진짜 나를 더 좋은 곳으로 이끌어줄까 하는 불안도 있었다. 나와 먼 사람들이 무턱대고 하는 말들은 무시했지만, 가까운 이들이 말하는 '옳은 곳으로의 취업'은 내가 하는 행위를 부정당하는 듯하기도 했다. 어쩌면 변명이 될지도 모를 말이지만 판사님의 말은 내 삶의 경험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내 이 다양한 모습의 경험들은 결코 나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인물 곳곳에 박혀 크고 작은 파도가 나를 휩쓰려고 할 때에도 나를 지지해주는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인생은 늘 선택과 고민의 반복이다. 오늘 내가 하는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난 내 경험과 선택 중에서 결코 무의미하게 흘러간 것은 없다. 설령 그 순간에는 그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을지라도 지금의, 또 미래의 내게는 반짝이는 과거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무엇을 선택한다는 건 고민하던 또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결단코 다시 할 수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수많은 선택이 모여 이뤄지는 하루의 삶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나를 믿고 나아갈 용기를 가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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