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얼숲 Apr 21. 2023

공부는 평생 한다

언론인을 길러내던 생각쪽지 교수님

언론정보학과로 전과를 하고 첫 해, 나는 언론법제 수업에서 ‘생각쪽지’라는 과제를 받았다. A4 1페이지에 자신의 생각을 써 오는 낯설지만 흥미로운 과제였다. 생각쪽지의 내용은 꼭 수업과 관련이 없어도 좋았다. 어떤 생각이라도 구체화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 통찰이 있다면 적을 수 있었다. 핵심은 ‘자신의 생각’을, ‘A4 1장 이내’에, ‘매 수업마다’ 제출한다는 점이었다. 돌이켜 보면 많은 학생들이 생각쪽지에 부담을 가진 것 같다. 다른 많은 수업처럼 ‘과제’로서 생각쪽지를 여겼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글쓰기에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생각쪽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흰 페이지에 무엇이든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건, 어떤 데스킹과 설득 작업 없이 내 마음대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PD가 된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학기를 위해 대학으로 돌아왔을 때다. 나는 지역 방송국에서 프리랜서를 마치고 친한 동생들과 로컬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내 대학생활을 나의 은사님의 수업을 들으며 끝내고 싶었다. 남들은 과제로 힘들다는데 건방지게도 생각쪽지를 남기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학교를 떠난 지 약 2년 동안 생각쪽지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매 수업 제출해야 했던 생각쪽지는 학생들의 고충으로 일주일에 한 편으로 바뀌었다. 매 수업에서 매주로 바뀐 과제로 인해 나 역시 한결 부담을 덜 순 있었지만, 어딘가 씁쓸했다. 주어지는 수동적인 과제가 아닌 표현하고픈 능동적인 과제가 줄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론 ‘아니, 이 좋은 걸 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학기가 마무리될 즈음, 나는 한 지역 방송국 채용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최종 면접까지 도달했다. 내 은사님은 과정마다 전화로 또 직접 만나서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 주셨다. 당시 나는 엄청난 압박과 긴장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전까지 있던 두세 번의 채용과정에선 서류에서 탈락했는데 갑자기 최종면접이라니, 이 하나만 넘으면 그토록 원하던 PD라는 직함을 명함에 달 수 있었다. 최종면접은 야속하게도 대학 졸업식 날과 겹쳤다. 졸업이라는 들뜨고 속 시원한 마음과 최종면접이라는 무게감 속에 나는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은사님은 함께 사진을 남기며 ‘잘 될 거다’라는 말을 남겨 주셨다. 확신이 없으셨을 거다. 내 선배이자 당신의 옛 제자들도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긴장으로 초조해하는 어린 제자를 위해 스승님은 의심을 지우고 확신을 마음에 심어 주셨다.


스승님의 응원과 격려, 그리고 훌륭했던 배움에도 나는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사실 채용 과정에서부터 의심이 들었다. ‘이렇게 쉽게 PD가 돼도 되는 건가?’, ‘뭘 알고는 기획안을 쓰고 작문을 한 건가?’, ‘나는 저널리즘을, 취재를, 방송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요즘은 일 하면서 배운다지만, 이렇게 얼렁뚱땅 일 하는 게 과연 내가 바라던 꿈과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저널리즘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20대의 그 어떤 시간보다 많은 공부를 하며 취재의 기본, 기획안의 작성,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수없이 날아오는 데스킹 과정의 질문과 피드백 속에서 명확성을 갖기 위해, 또 그런 PD가 되기 위해 나를 세공하고 있다.


지금을 과거와 비교하는 게 마냥 온당치는 않다. 하지만 대학 시절 내 영상 작업을 떠올리면 주먹구구식이 많았던 것 같다. 흐지부지 내린 결론부터 어쭙잖게 구현해 본 현장과 그럴 듯 해 보이는 아는 척까지. 지금의 배움과 고뇌에 비하면 적당히 배워 많이 아는 척하는 게 꼭 소인배의 행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쪽지만큼은 지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과제이자 훈련이었다. 단지 방송사 입사 과정의 작문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관점을 가져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한 명의 언론 지망생이자 시민으로서 성장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공부가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래 공부라는 것의 속성이 그러한 듯하다. 다만 나도, 또 나와 비슷한 길을 가려는 대학의 후배들도 그 어려운 과정에서 게을러지거나 불평에 찌들지 않았으면 한다. 과제를 쳐내는 것만으로 대학을 다니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건 제자들을 끊임없이 생각한 스승님이 만들어 낸 반짝이는 과정이다. 그저 그런 PD나 기자가 되게끔 우리를 가르치신 게 아니다. 전문적인 기사 쓰기와 프로그램 기획을 언론정보학과에서 다 가르쳐줄 순 없지만 적어도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나의 시선은 무엇인지, 무엇을 놓치면 안 되는지는 꾸준히 성찰하며 대학에서 배울 수 있다. 매번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하고 취업을 위해서만 과정을 걸어간다면 저널리스트를 꿈꿨던 우리의 처음이 한없이 초라하고 덧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졸업식 날, 은사님은 마이크를 잡고 참석한 부모님들을 향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모두 저와 비슷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조급하시겠지만 그 역량이 빛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고 지원해 주시며 이 사회에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에 알맹이를 채우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동기' 부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