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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국 Oct 19. 2022

왜 그 모든 과정의 불법엔
일언반구 말씀이 없으십니까

또다시 기사를 접하는 순간, 어딘가 헛헛한 감정이 몰려왔다. 

아니, 어쩌면 이제는 무뎌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예전에도 이런 글을 썼던 거 같은데?'

나의 예전 글에는 지난 며칠과 비슷한 사건이 피해자의 이름만 다른 채 존재한다. 

그들의 이름은 때론 구의역 김 군으로, 때론 화력발전소의 김용균 군으로, 때론 평택항의 이선호 씨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 이름 옆에 다시 또 다른 20대의 이름이 적혔다.


20대 여성 노동자가 SPC 계열의 SPL 공장에서 끼임 사고로 사망했다. 소식을 전하는 언론과 뉴스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회사는 사고 직후 2인 1조로 작업했다는 발표를 냈지만 동료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그들은 사측의 발표가 거짓말임을, 그날 현장에서 왜 자신들이 실질적인 2인 1조가 될 수 없었는지, 왜 그녀가 차가운 기계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외쳤다. '피 묻은 빵'과 '죽음으로 반죽한 빵'을 더 이상 만들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외침이었다. 그러나 잔인할 정도로 기업의 '이윤 추구'라는 목적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회사는 그녀가 사망한 이튿날, 다른 2대의 기계를 가동했다.


사고 이후 유족, 동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하고 있다 보니 불현듯 지난 7월 27일 국회 대정부 질문이 생각났다. 이탄희 의원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질의응답이었다. 당시 이탄희 의원은 대우조선해양의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정부의 태도와 강경한 접근을 두고 이상민 의원에게 질의했다.


이탄희 : 이것이 불법 점거다? 어떻게 수사와 재판도 안 하고 그렇게 확신하셨습니까?

이상민 : 그럼 불법 점거가 아니면 뭔가요?... 외견상 명백한 걸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이탄희 : 그럼 그 점거에 이르게 된 과정은요?

이상민 : 아니, 과정이 어찌 됐든 현재 불법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외견상 명백한 불법' 그게 정부의 논리였고 그로 인해 헌법이 보장한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잇따른 정부의 발언과 몇 언론들의 '불법 점거' 보도는 과정이야 어찌 됐든 하청 노조들이 사측과 합의하게 만들었다. 이탄희 의원은 이상민 의원에게 이야기했다. 


이탄희 : 하청 노동자 한 명을 100명이 몰려와서 에워싸고 끌어내립니다. 여성 노동자들 박스 밑에 숨어있는데 잡아 끌어내리고 물건 다 뜯어냅니다. 이거 다 집단 폭행, 집단 손괴 아닙니까?

이상민 : 사안을 이렇게 단기간에 영상만 보고 판단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이탄희 : 애초에 유최안씨가 왜 구조물에 들어가신지는 알고 계십니까?

이상민 : 자세한 사실 관계는 모르고 있습니다.

이탄희 : 그런 것도 모르시면서 '불법이다' 이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셨습니까?

이상민 : 불법은 불법이죠. 그게 불법이 아니면 뭡니까?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굳이 손 아프게 더 적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우리 사회는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노동자의 권리와 죽음에 대해서마저 이토록 불공평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어떤 사건은 사측의 명백한 불법 행위와 편법 행위가 있었다는 작업 당사자들의 증언이 있어도 처벌을 위해 꼼꼼한 수사를 요하면서, 사측이 받은 피해와 손해는 과정이야 어찌 됐든 노조의 명백한 불법 행위로 규정한다. 사람의 목숨 값이, 노동자의 목숨 값이 얼마나 가볍게 다뤄지면 우리는 매번 이런 상황을 보고서도 바뀌지 못하는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일까.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자유'를 외쳤다. 그가 말한 자유란 곧 자유 민주주의 국가와 시장 경제를 따르는 우리의 시스템에서 더 폭넓게 자유를 부여하겠다는 의미일 테다. 아마 그중의 핵심은 경제적 자유일 게 분명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는 자유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국가가 존속되고 국민이 최대의 행복을 누리는 우리 민주주의 시스템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의 바퀴로 굴러간다. 평등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참다운 의미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노동의 현장에서 죽어나간 20대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국가는 보장하고 인정해 주었는가? 그토록 외쳐대던 자유의 실천이 평등의 이행에서 온다는 걸 그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리고 그 외면이 20대 현장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이탄희 의원은 대정부 질문 마지막에 그런 말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모든 불법에 대해서는 왜 단 한마디 말씀도 없으십니까?
왜 그 모든 과정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씀이 없으십니까?


그때의 말이 고작 3개월 만에 다시 정부에게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와 지금이 무엇이 다르기에 외견상의 불법을 보고도 강하게 말하지 못하는지.

국가와 정부는 여전히 산업 현장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향해 왜 말이 없는지.

왜 불법이 아님을 규명하는 건 언제나 노조이고 위법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는 사측에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사족.

사건의 발생 이후 쏟아지는 보도 속에서도 말을 아끼는 어느 언론에게도 이 문장이 닿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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