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06
잡글이다.
2021년 지역 방송국에서 일을 할 때의 일이다. 보도국에서 일을 했었다. 어느 회사가 안 그렇겠냐만은 휴학생 신분의 계약직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다. (물론 중요하지 않을 뿐, 힘든 건 개힘들다)
차츰 적응이 될 무렵, 팀장이었던 기자가 내 전공을 듣고는 말을 붙였다.
"너도 신방과야? 진짜 쓸데없는 학과 나왔다~"
팀장 자신은 영문과를 나왔는데 전공이 기자 생활하면서 큰 도움이 안 됐다고 말했다. 발에 차이는 게 영문과이기도 하고, 요즘은 원체 영어 잘하는 애들이 많다 보니 자신의 전공이 딱히 매력이 없었다는 말이었다.
저널리즘대학원에 와서도 출신 전공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 전공을 했어? 메리트 있겠는데?"
이런 말들이 오갔다. 대개의 경우 언론과 전혀 상관없는 이공계나 아주 본질적인 걸 다루는 철학, 인문학 전공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전공이 특색 있게 느껴지는 건 해당 전공들이 서류 전형에, 필기 전형에, 또는 입사 이후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일 테다. 나 역시 그런 기대가 실제로 맞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론학, 사회학과 같은 사회과학과 경영학 같은 '사람 많은' 전공이 쓸데없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아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쓸데없다는 건 대체 무엇에 어떻게 쓸데없다는 걸까? 팀장이었던 기자가 말한 전공의 용이함이 취재 아이템을 찾는 거라고 치자. 영문학은 취재 아이템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분야인가? 공학을 전공하지 못해서 그가 취재를 못 했던 걸까? 자신의 모자람을 두고 과거의 선택과 몇 년의 배움이 쓸데없다며 불평만 늘어놓는 것만큼 꼴불견이 없다고 생각한다.
더 빠르고 쉽게 취재 분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래 그건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알고 취재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자와 PD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공부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달리 말하면 매번 공부해야지만 그 직업이 가진 정수에 도달한다. 세상만사를 안 채로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듯이,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가지고 취재 제작을 할 순 없다. 갑자기 등장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니, 의사 파업에 따른 의료법이니, 기자와 PD가 어떻게 처음부터 알고 접근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자신의 게으름을 두고 불평하는 꼴이다.
이른바 '문송하다'는 말이 오랜 밈이 된 지 오래다. 취업이 안 된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공대를 나온 친구들을 보면 웬만해선 취업이 잘 된다. 그 친구들의 노력과 별개로 실제로 시장의 문은 이공계에게 더 열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공계가 혜택을 보고 있다느니, 사회과학이 쓸데가 없다느니 하는 말은 핀트가 어긋난 것이라 생각한다. 이공계의 공부는 따라가기 벅차다. 대신에 실제 산업의 수요를 담당한다. 사회과학은 생각하는 공부다. 그 자체로 실질적인 생산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끊임없이 정하고 체크하는 부분을 담당한다. 개인의 삶이 어떨지는 몰라도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면,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될 리 없다.
그래서 그 기자의 '쓸데없는 전공'이란 말은 '당장의 돈벌이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 정도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공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 전공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하지 않으려는 멍청한 학생들이 문제다. 필요한 게 있으면서도 교수님, 학장님한테 가서 요구하지 않는다. 이해나 행동 없이 거저먹으려는 무지랭이들 투성이다.
최소한 나를 언론이라는 세상으로 이끈 은사님은 수업 전체를 학생들의 질문으로 구성하고자 했다.
"오늘 제가 준비해 온 것들을 하나도 이야기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질문과 대답으로 이 수업을 끌어갈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수업이겠죠?"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은사님의 말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얻어가는 게 없는 수업이었다. 나는 그분의 수업이 적어도 언론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방향성만큼은 잡아주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솔직히 또 그 기자에게 물어보고 싶다(실제론 보고 싶지도 않지만). 이공계 나왔으면 돈은 적게 받고 들어가긴 어려운데, 들어와서도 힘든 이 일을 했을 거냐고. 과연 현대와 삼성이 기다리는 고연봉을 뿌리치고 이 직업에 도전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