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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wovewove Apr 14. 2021

오래된 일기 -5 (happily ever after)

2018년 10월 2일(에세이)

내가 좀처럼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나는 겁 많은 이상주의자다. 살면서 무수한 사랑들이 처절하게 깨어지는 전례들을 너무나 많이 봐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배운 사랑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일말의 미동도 없이 굳건한, 어떤 흠결도 존재하지 않는 구슬 같은 사랑. 아마 그림형제나 안데르센이 쓰고 디즈니에서 정제한 동화책에서 사랑을 배웠을 거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는 그들의 사랑. 그들은 대개 첫눈에 반하는 데다 태생적 순수함으로 감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부분 왕자나 공주였으므로 살림이나 육아 문제로 다투는 일도 없고, 젊고 예쁜 여후배나 잔디 깎는 근육남은 등장하지 않으니 한 눈 팔 일도 없을 거다. 그리하여 평생토록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 테지.


하지만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선물 같은 설정은 부여되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은 농담처럼 쉬이 때로는 비참하고 어렵게 부서지고 죽어버린다. 나에게 만나자마자 서로한테 사로잡히어 내내 영화를 누리다 이윽고 한날한시에 눈 감는 기적 같은 사랑은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두렵고 속이 상해서 당최 시작조차 하기 싫어진다. 이상주의자는 쉽게 염세주의자가 된다. 동화 밖 세상엔 아마 영영 ‘happily ever after...’ 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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