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5일
이제는 기대를 안 한다. 기대가 잘 없다. 정신 건강엔 해롭지 않은 현상일지도. 매일이 그냥 숫자만 바꿔서 나오는 수학 문제들 같다. 아주 사소한 디테일만 바뀐 채 거듭된다. 누군가 저 위에서 부감으로 내 일과를 관찰한다면 꼭 똑같은 마임을 반복하는 삐에로처럼 보이지 않을까.
누가 그랬더라. 소설가는 생애 동안 한 가지 이야기만 되풀이한다고, 사람은 일평생 똑같은 사랑만 할 수 있다고. 틀린 말이 아니라면 좋겠지만 어쩐지 맞는 말 같다. 차선 변경을 아주 예전부터 시도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같은 트랙에서 선회 중이다. 아무래도 태곳적부터 모든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팔자 도망은 무당도 못 친다던데. 그렇게 치면 나의 어떤 선택이나 의지도 무용할 지고. 게다가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없고 모든 게 허황이고 허물일지어니. 대단한 성취에 으쓱하는 일도, 형편없는 슬픔에 몰두하는 일도 전부 바보 같은 짓일 테지. 혹자에게는 우습게 들리겠지만 벌써 알아야 할 감정을 다 느껴봤을지도 모른다. 연거푸 이런 비관적인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 일기조차도 고등학생 시절부터의 동어반복이다.
근데 어떡해. 살아야지. 난 어떤 날엔 아는 음악을 수십 번 틀어놓기도 하잖아. 십 수년 전에 본 영화나 드라마에 다시 새로운 감명을 받기도 하고. 정해진 음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은 제법 할 만하다. 아니 즐겁고 감미롭기까지 하지. 헤질대로 헤진 고전들도 살짝씩 틀어놓는 각색을 거치면 완전히 다른 울림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니 리듬을 타며 삶을 걸어 나가는 내가 보인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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