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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wovewove Nov 11. 2022

테일러 스위프트를 어떻게 좋아하게 됐냐면.

2022년 11월 11일

내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듣는다면 혹자는 조금 으스스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단 난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다. 영미권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수 중 하나이지만 이상하리만치 한국에서는 소구력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 가늠하자면 아마 멜로디나 보컬 스킬보다 가사와 앨범의 흐름이 중요한 테일러의 디스코그래피에 영향이 있는듯 하다. 어찌됐던 동시대 여가수인 아리아나 그란데나 레이디가가에 비해 한국 매체에서의 노출 빈도도 떨어지고 찾아 들을 흥미도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그냥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아주 우연히 테일러 스위프트가 13일에 태어났고 13이라는 숫자를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접했다. 일부러 앨범 발매일이나 트랙리스트를 그 숫자에 맞추기도 할 정도로.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숫자강박증이 있다. 정확한 신경정신의학적 병명은 잘 모르지만 그냥 내 정서불안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 시작된 버릇같은 거겠지. 어떤거냐면 일단 ‘13’이라는 숫자를 싫어했다. 13은 12처럼 수학적으로 예쁜 숫자도 아니고, 전세계 최대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종교에서 불길하다 말하는 숫자니까 응당 불길하게 느껴졌다. 카발라나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그래서 도로에 돌아다니는 차량번호라던지.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숫자라던지 13의 표식들은 전부 불안의 원인이 됐다. 그 증상이 심해지면서 눈에 보이는 숫자들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면서 13이나 6,4같은 숫자를 찾아내서 기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해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예를 들자면 10월 21일은 10과 2와 1을 더하면 13이 되니까 그날은 내게 불길한 날이었던 것이다. 굳이 찾아내서 피하려는 싸이코틱한 심리 알고리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게다가 이런 상태로 살다보면 숫자들의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세상이 초록색 숫자로 가득한 영화 매트릭스처럼 보이고 매일 내가 가정한 불운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모델처럼 생긴 백인 여자애가 13일에 나고 13을 좋아한다니. 내게는 거대한 불안이었던 숫자를 끌어안고 매만지면서 잘먹고 잘살다니. 13에 대한 내 처절한 고정관념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13을 극복하고 세계를 장악한 팝스타가 존재한다니. 맞다. 애초에 13은 극복해야 마땅한 대상조차 아니었잖아. 그냥 숫자에 불과한 것을. 왜 13의 입장은 헤아려주지 못한거지. 강박증을 간단히 해소하는 사고 매커니즘을 깨닫게 해준 구원자에게 나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보은 차원에서 나는 그녀의 음악을 스트리밍하기 시작하였다.


예쁜 백인 마네킹에 대한 내 선입견과는 다르게 그녀는 실패와 불안,결핍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고의 가수이면서 감히 나 따위가 공감할 수 있는 기분을 솔직하고 근사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게 얼마나 큰 심적 치료가 되는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단거 알잖아 (우리의 사랑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잖아)” 같은 멋진 문장과 “꿈에서 넌 인터넷에서 만난 여자를 집에 데리고 갔어” 같은 창피할정도로 생생한 감정의 노랫말을 한 곡에 묘사하는데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 아무튼 여기까지가 내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하게 된 기나긴 여정이었다. 좋아해봤자 앨범이 나오면 노래를 듣고 가사를 찾아보는 정도지만, 나중에라도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내 미국인 오은영 박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본인도 모르게 내 퍼스널 테라피스트가 되어준 테일러에게 땡큐를 날리며.


instagram.com/weAknd

painting by @heonynyc writing by @wovem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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