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피곤하더라니
드럼은 체육활동이다.
더 나아가 모든 악기 연주가들은 운동 선수들과 동일한 매커니즘으로 훈련한다. 나는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악기 연주는 귀로 듣는 부분이 크게 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매우 섬세한 육체노동이다. 가만히 한 자리에서 몸의 일부만 사용하는 이미지가 강해서 착각하기 쉽다. 나는 드럼을 치면서 내가 그동안 악기 연주를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내 몸을 내가 원하는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몸을 내가 조종한다는 말이 생경하게 들린다. 그러나 내 몸이지만 훈련하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악기 연주를 연습하는 것은 내 몸을, 내 폐나 숨, 손가락, 팔, 다리의 말단, 서거나 앉아 있는 자세를 구성하는 복부와 흉부를 좀 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운동 선수들의 훈련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근력을 사용한다지만 결국 본질은 동일하다. 내 몸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통해 물리적 통제력을 기르기 위한 연습인 것이다.
두드림의 미학
다른 모든 요소를 뺀 두드림 그 자체로 음악인 악기라니 새삼 경이롭다. (타악기가 아닌) 다른 악기에는 음정이라는 게 있다. 셈여림과 박자를 신경쓰는 동시에 정확한 음을 낼 수 있도록 알맞은 운지를 짚어야 한다. 항상 정확한 타이밍에 올바른 건반을 짚는 것과 올바른 구멍을 닫아 주는 것과 올바른 위치에 손가락을 대고 눌러 주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던 나는 이 부분이 해소되면 너무도 쉽게 힘들이지 않고 연주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드럼은 오히려 음정이 제외된 악기였기 때문에, 딱 음정의 중요성이 제외된 크기만큼 일정한 세기와 일정한 간격으로 북을 두드리는 것이 훨씬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북 사이즈에 따른 높낮이는 있지만,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없다는 의미에서.)
두드린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내 손에 쥐어진 스틱을 통해서 힘을 전달하고 그 힘을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각도로 도달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드럼에는 발을 구르는 행위도 들어있다. 지렛대와 발판을 이용해 발을 들었다 떼는 동작으로 큰 북을 두드릴 수 있다. 드럼을 치면서 4-way independence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알게 됐는데 간단히 말하면 네글자로 '사지분리'다. 그렇다. 나는 드럼을 치면서 사지를 분리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네 갈래의 근육 덩어리에 각각 자아를 부여하고 따로따로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두드림은 이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드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두드린다는 행동을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해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어떻게 힘을 주느냐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임을 역동적으로 느끼는 경험이 새롭고 즐겁다.
어쩐지 피곤하더라고
다시 돌아와, 드럼이 체육활동이라는 건 내가 피실험자인 생생한 임상 결과로도 증명된다. 처음 드럼을 배울 때는 그냥 일정한 속도로 매우 느리게 북을 치면서 드럼채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게 큰 동작을 한 것도 아니고 땀이 뻘뻘 날 정도로 격한 근육 사용을 한 것도 아닌데, 드럼을 배운 초반에는 왜 이렇게 집에만 오면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던지. 팔다리를 휘두르는 동작이 있기는 하지만 소모하는 칼로리 자체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드럼 치기가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활동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 원인이 '집중'와 '몰입'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정확히 떨어지는 박자 안에 내가 원하는 강도로 섬세하게 소리를 꽂아 넣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박자가 흐트러지면 연주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 확 티가 나는 냉정한 당신...
나는 드럼을 치는 동안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외부 자극에 정신을 뺏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에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마저 드럼을 치는 동안은 잠시 중단된다. 그리고 나의 몸 전체를 사용하는 체육활동이다 보니 다른 것도 아닌 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매우 예민해진다. 나는 발가락 끝에 이렇게 힘을 줘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언제 피곤을 느끼는지, 언제 다른 모든 것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눈 앞의 과제에만 집중하는 'Zone'에 들어가는지, 언제 다시 집중력이 떨어지는지 빠르게 알아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느끼는 이 감각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평상시 일상을 살면서는 도통 체험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어쩌면 내 뇌의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부분이 활성화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자면, 드럼 연주는 정신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고도의 체육-예술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내 하루 중 가장 강력히 몰입하는 시간, 내 몸에 대한 통제력을 얻는 시간, 거기에 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니까 재미있는 자극이 되는 시간. 이 체험이 좋아서 나는 오늘도 드럼을 치러 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