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출근. 영하의 추위에 만원 지하철. 현대인이 느끼는 10대 스트레스에 들어갈까요? 거기에 아침부터 사장이 출근길에 읽으라고 한 이메일까지 더하면 스트레스 요인 10위 안에 들어갈까요?
아쉽게도 창난젓 같은 현대 사회에는 더 막강한 스트레스들이 있다 보니 월요병에 사장의 꼰대 훈화말씀까지 얹어도 스트레스 원인 Top 10 안에 들지 못합니다. 10대 스트레스 요인에는 배우자 사망을 필두로 가족의 사망이 있고, 이혼, 배우자 외도, 육아 등 가족과 관련된 것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죽어도 스트레스 살아 있어도 스트레스입니다. 그다음으로 생계와 관련된 것들이 나옵니다. 미국의 경우 요즘 같이 빅테크 기업들이 통 크게 만 명 단위로 "you're fired!"를 외치고 있으니, 실직과 퇴직이 10위 안에 진입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판에서 망나니들이 칼춤을 추고, 부동산은 포커판이 된 지 오래고, 스타트업계는 메타버스에서 비트코인 세다가 실사판으로 돌아오니 돈줄이 말라 있어 뺑소니차에 치인 기분이 들 겁니다. (이 풍랑이 우리 회사를 빗겨 지나가고 있지만 이적의 '다행이다'는 1절만 부릅시다. 지금부터 윤상의 '달리기'를 부르기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스트레스 요인 Top 3에는 1위 배우자 사망, 2위 이혼, 그리고 3위 '이사'가 있었습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 뿐 아니라 낯선 환경으로 들어가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 '이사'는 스트레스 Top 10에 이름을 올리지 못합니다. 포장 이사가 아주 잘 되어 있고, 이 아파트 촌에서 저 아파트 촌으로 이사해 봐야 3D 프린터로 복붙 한 것처럼 비슷한 성냥갑이라 더 이상 낯선 환경도 아닙니다.
에이스를 보내주마
서론이 길었죠? 사실 주말에 이사를 했습니다. 결혼 24년. 이사 11번째.
Top 10에서는 밀려났지만 여전히 스트레스 충만한 이벤트입니다. 그중 한몫하는 게 포장이사 업체가 파견하는 팀입니다. 두목(팀장) 한 명에, 손 발 몇 명, 그리고 주방살림 담당 아줌마 1명. 팀장이 직원한테 일 똑바로 안 하냐고 윽박지르는 걸 볼 때도 있고, 옮기다 찍히고 깨진 물건, 눈 가리고 아웅 식 청소를 목격하고 나면 줄 돈이 아까울 때도 있습니다. 사실, 포장 이사 업체를 크게 운영하는 지인이 있지만 싫은 소리 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아는 사이라서 내색도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동안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지인 찬스로 할인도 받을 겸 이용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사장이,
"에이스 팀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에이스? 별 기대 없었습니다.
이사 당일 약속된 시간 아침 8시 정각. 1분의 오차도 없이 벨이 울렸습니다. 집으로 쳐들어오는 그들은 기세부터 달랐습니다. 업체 사장이 '에이스'라고 한 바로 그 팀이었습니다. 아파트라는 평면에 살다 보면 시야가 2D에 갇혀있는데, 이들은 우리 집을 3D 입체로 보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와이프와 나는 감탄하면서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보통은 팀장 하나에 부하직원들이 오는데, 이들은 다 팀장처럼 행동했습니다. 카리스마 쪄는 팀장급 여럿에 의견 충돌도 없이 손발도 잘 맞는다... 이건 뭐지?
별명이 '설명문'인 와이프는 과장법을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에이스'라는 말보다는 '어벤져스'가 더 어울린다고 했을 때 와이프는 고개를 크게 끄떡였습니다. 3D 마블 유니버스에서 2D (아)래미안* 아파트에 쳐들어 온 어벤져스. (*층간소음으로 인해 아래미안이라는 별명의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
이 업체 사장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선발했을까? 궁금하던 차에 기드온의 300 용사가 떠올랐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기드온이 300명의 용사를 데리고 13만이 넘는 미디안의 군대를 물리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물리친 순신 형님이 계시지만 상황이 좀 다릅니다. 우리의 적은 일한(이란)이라며 육지에서 싸우라는 얼빠진 선조에게 "짐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글을 올려 해전을 포기하지 않은 이순신과는 달리 기드온에게는 군인이 300명 밖에 없던 게 아니었습니다. 원래 3만 2천 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300명을 선발한 것입니다.
우선 "두려운 사람은 돌아가도 좋다"라고 했을 때 "아싸, 개꿀"하며 2만 2천 명이 돌아갔습니다. 1만 명 남았습니다. 이들은 사막에서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가로 데려가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물을 마시는 모습으로 300명을 추렸습니다. 물가에 무릎을 꿇고 마시는 사람들을 탈락시키고, 손으로 물을 움켜쥐고 '개처럼 핥아먹는' 용사 300명이 합격.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전시에 아무리 목이 마르다고 해도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셔대면 주변 경계를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그렇게 마시고 있을 때 300명은 주변을 경계하며 손으로 퍼 올려 핥았습니다. 기록된 표현대로라면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 300명이 관문을 통과하여 고액 연봉자가 됐습니다.
내용과 전혀 상관 없음
국가대표, 회사대표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을 구제할 국가대표를 선발한다면 우리회사가 뽑힐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연히 선발될 자신이 있습니다. 12척도 필요 없고, 300명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 회사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저는 고객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옥스포드대학에 "OLB와 ORC 프로젝트에 에이스들을 배치했으니 너네들이나 잘하세요",
메가스터디에 "엘리하이 프로젝트는 우리 에이스들에게 맡길 테니 걱정 마세요",
"사장이 안심하고 두 다리 뻗고 잠을 자게 하는 사람이 에이스다."
저한테 이 얘기 들어본 사람 많을 겁니다. 연봉은 사장 잠자게 하는 사람 순이다. 회사 초기에 자주 했던 말입니다. 회사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되어 주세요.
어벤져스 덕에 스트레스가 훨씬 덜한 이사를 했습니다. 영어가 우리나라에선 스트레스 Top 10에 들어갈 법한데 우리 고객도 아이포트폴리오 에이스 덕에 영어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면 미션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