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기고글
(본 글은 2024.3.25 한국대학신문에 게재되었던 기고문의 압축 버전이다.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60976)
우리의 음식, 드라마, 음악이 K푸드, K드라마, K팝 등의 이름으로 전세계에 퍼지고 있는 현재, 우리의 교육기술도 K-에듀테크로 수출할 수 있을까?
우리의 에듀테크 수출은 걸음마 단계다. 2022년도 기준 총 수출액 152억 2000만 달러 중 에듀테크 분야는 5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ODA(공적개발원조) 금액을 제외하면 필자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의 수출액이 국가 에듀테크 수출액의 10%에 근접할 정도다. 수출 에듀테크 기업체 수가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에듀테크는 K-컬처만큼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출을 지원하고 있는 이 시점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10년 넘게 수출을 하며 깨달은 시장의 흐름을 바탕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한계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의 에듀테크가 세계 시장에서 통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세계는 우리의 ‘기술’을 원할지언정 우리의 ‘교육’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높이 평가하며 한국의 교육열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이 뉴스에 보도가 되면서 소위 말하는 ‘국뽕(과도한 애국주의)’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오바마 대통령은 전세계 기자들 앞에서, “훌륭한 개최국 역할을 한 한국을 위해 한국 기자에게 질문 하나를 받겠습니다”라고 했다. 침묵이 흘렀다. “질문 없어요?”라고 재차 기회를 줬으나 20여 초간 침묵이 지속됐다. 어색한 나머지 “아마 통역이 필요할 겁니다”라고 오바마가 적막을 깨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손을 드는 기자가 없었다. 그러자 누군가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대통령님, 실망스럽겠지만 저는 중국인입니다.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우리 교육을 칭송해 어깨가 으쓱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머리를 긁으며 머쓱해지는 이 장면은 전 세계로 방송을 탔다.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그렇다, 우리의 수업 시간에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우리의 에듀테크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맞춰 개발됐다. ‘진단평가’와 ‘주입’으로 요약되는 기승전 ‘입시’ 중심의 교육 시스템. ‘시험공부’와 ‘공부’는 다른 개념이다. 암기와 문제풀이 훈련이 아닌 ‘사고(思考)’하고 ‘질문’하는 행위가 공부인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교육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거꾸로 교실(Flipped Classroom)이 현장에서 실험되고, 독서와 토론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의 초점은 내신과 수능이라는 ‘평가’에 집중돼 있다. 물론 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돼 있다. 학생의 자기주도성을 키우기보다 학습행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지적하는 소위 ‘타이거 맘(Tiger Mom)’형 학습관리시스템(LMS)을 가져다 쓸 나라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사교육에서는 초등학교 때 수능 영어를 끝내고 고등학교 수학을 가르친다. 선행학습으로 답을 다 알아간 후 수업 현장에서 무슨 질문을 하고 토론을 하겠는가? 우리에게 수출할 교육 시스템이 있는지 곰곰이 고민해 볼 일이다.
둘째, 사교육과 공교육의 대립구도로 인해 한국의 에듀테크 기업은 공교육 레퍼런스가 매우 적다. 공교육은 교육 이론과 여론을 저울질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연속성을 가지며 발달했다. 거기에 사교육 죽이기가 정책의 중요 고려 사항으로 늘 따라붙었다. ‘사교육 카르텔’이란 신조어가 생겨난 것이 한 예다.
한편, 한국의 에듀테크 기업들은 학부모들의 ‘좋은 (의과) 대학 보내줘’ 요구에 맞추어 최고 효율의 고득점 설루션을 구현해 왔다. 사교육 시장에 뿌리를 내린 ‘입시테크’가 수출이 될 리 만무하고, 공교육에서의 사용 사례가 없다 보니 해외 학교의 선택을 받을 리 없다.
반면, 영국의 각 학교들은 자율적으로 필요한 교육 기자재와 기술 설루션을 채택한다. 그러다 보니 영국의 교육기자재공급협회(BESA)가 1985년부터 주도적으로 학교를 대상으로 전시회를 개최했고 지금의 BETT Show로 성장했다. 세계 최대 교육기술 박람회가 영국에서 시작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로써 공교육과 사교육의 경계 없이 모범적 생태계가 조성됐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각 학교로 에듀테크 구매 예산이 배정돼 선도학교를 중심으로 필요한 에듀테크 설루션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에듀테크 회사들이 공교육 레퍼런스를 쌓고 있다. 그러나 사교육용으로 설계된 설루션들이 급하게 공교육용으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AI 에듀테크 설루션들이 ‘진단평가’ 후 ‘주입’으로 대표되는 맞춤형 입시 교육 강화 시스템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넘어야 할 두 개의 산에 대해 짚어 봤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단숨에 바꿀 수는 없지만 나아갈 방향은 정확히 제시할 수 있다.
먼저, 교육 정책 입안자들께 당부드리고자 한다. 교육을 국가 주도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찬성한다. 그래야 속도감 있게 정책을 펼치고 교육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솔루션이라도 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외면하면 사장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반드시 교사에게 일꾼을 보낸다는 심정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해야 한다. 그동안 일꾼이 아니라 일감을 내려보낸 사례가 있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최초로 AI 디지털 교과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반드시 교사와 학생을 도와주는 일꾼이 됐으면 한다. AI 맞춤형 교육이 학생의 ‘시험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를 도와주는 것인지 신중한 점검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학계에 계신 분들께 기업인으로서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 적중률 높기로 유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 갈등은 속도의 비동기화로 야기된다. 대표적 예로,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학교는 시속 10마일로 변화에 대응한다.’ 사태의 심각성은, 학교에서 배출한 학생을 10배 속도로 가고 있는 기업으로 보낸다는 데 있다. 동시에 사범대와 교원대에서 배출한 교사들은 학교 현장으로 투입된다. 어느 때보다도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바뀜에 따라 그에 발맞춰 대학이 변하고, 대학이 선발하는 학생의 기준이 변하면서 공교육이 바뀐다. 기업과 맞닿아 있는 대학이 발 빠르게 변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에듀테크 기업들은 국가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에듀테크’라는 말에 ‘에듀’가 ‘테크’에 앞서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교육에 대한 깊이가 기술의 첨단성을 능가해야 한다. AI 기술을 잘못된 교육 방법론에 그대로 입히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해당 기술이 학생의 자기주도성을 어떻게 지원하고 교사의 업무를 얼마나 가볍게 해 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에듀테크가 각광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간 교육계가 풀지 못했던 ‘개인형 맞춤 학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기대에 부응하고자 기술뿐 아니라 교육 연구에 더 투자해야 한다.
최근에 수출한 영어 AI 튜터 솔루션 ‘로라(LAURA, Language Assistant Utilizing Reading Analytics)’를 예로 들겠다. 학생은 ‘로라’와 맞춤형 영어 회화 연습을 할 수 있다. 로라는 학생의 수준에 따라 말하는 속도, 사용하는 어휘, 문장의 길이를 조절한다. 이건 기술적 측면이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학적 방법론(Pedagogy)이다. 책을 읽은 후 흔히 있는 ‘질문에 답하는 독후 활동’이 아니라 학생이 책 속 주인공을 불러내 인터뷰하듯 ‘질문하는’ 프로그램이다. 언어는 암기한 것을 기억해 내는 것(recall)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발화(produce)하는 것이라는 언어 습득의 기본 원리를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구현한 것이다. 이런 AI 튜터와 연습한 아이가 커서 기자가 된다면 미국 대통령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멋들어지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