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2019년 8월말
내 나이 서른두살에, 생애 처음으로 캐나다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기다리던 남편의 주정부 노미니 승인이 6월 중순에 나오자, 꿈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의 첫발을 내딛는 기분이 들었다. 이 노미니 승인을 받기 위해 얼마나 오래 기달렸으며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격었던가..... 당시 남편은 한국에 있었고 나는 미국 보스턴에 OPT 신분으로 일을 하며 장거리커플로 오랜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승인이 나오자 남편은 그 길로 바로 비행기표를 예약해 나와 우리 부모님이 계시는 보스턴에 3일 정도 머무르고 캐나다로 입국하는 일정을 짰다. 남편은 짐도 다 싸놓고 한국 생활도 어느정도 다 정리해놓고 캐나다에서 승인만 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캐나다 입국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캐나다로 입국한 남편이 본인의 직장에서 바로 일을 시작하는 동안, 나는 보스턴에서 일하고 있던 나의 일터와 마지막 근무일을 8월 중순으로 협의하고 천천히 보스턴 생활을 정리해나갔다. 바로 남편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것은 내가 일을 2월에 시작했기 때문에, 최소 6개월은 하고 그만둬야 이력서에도 쓸 수 있고 어디 가서도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 직장생활을 2개월 더 하고 나니 어느덧 정말로 보스턴 그리고 부모님을 떠나 캐나다로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날밤은 거의 한숨도 못잤다.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미국생활의 마침표를 찍음과 동시에 새로운 캐나다 생활로의 출발점에 서있는 순간 어찌 잠이 쉽게 왔겠는가. 20대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 그때의 내가 꿈꾸던 내 미래 인생계획에는 미국의 미 자도 없었지만, 갑자기 나에게 운명처럼 닥치며 나의 많은것을 바꿔놓고 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을 준, 3년 동안의 미국 대학원과 미국 직장 생활. 그 시간들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추억하며, 그래도 잘 살았노라며 감사했더라며 그 시간들에 인사를 하고 또 다가올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도를 하며 그렇게 떠나기 전날밤은 뜬눈으로 새웠다.
다음날 아침 9시 45분 비행기로 떠나는 나는 두개의 (매우 알차게 꽉찬) 이민가방과 한개의 큰 캐리어, 한개의 작은 캐리어 그리고 핸드백 이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공항으로 데려다 주시는 아버지에 차에 올랐다. 이별의 슬픔을 느낄새도 없이 공항 항공사 데스크에선 내 두개의 이민가방이 허용 무게를 초과하였음을 알렸고, 각 가방당 100불 정도의 즉 토탈 200불 정도의 초과요금을 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 때 나의 편도 비행기 값이 160불 정도였는데 비행기 값보다 더 오버되는 금액을 수화물 초과요금으로 내야한다는 사실에 깊은 빡침을 느끼는 나를 안쓰럽게 보셨던 아버지께서 자비롭게도 그 돈을 다 내주시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민폐쟁이 딸이었던 나는 무사히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보통 여행길이면 공항에서 이것저것 사먹을 법도 한데, 캐나다 입국에 엄청나게 긴장이 되었던 나는 집에서부터 무엇하나 입에 대고 싶지가 않았고 식욕이 전혀 돌질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달달한 커피라도 사서 주욱 들이킬법한데 비행기 안에서 화장실 가기가 싫었던 나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또 긴장하면 배가 자주 아픈 나는 차라리 공복이 더 내 몸을 더 편하게 해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보스턴에서 캐나다 H도시까지는 두시간 정도의 짧은 비행이었으며, 비행기는 내가 여태껏 타본 비행기 중 가장 조그만 기종이었다. 그 조그만 비행기는 온통 다 서양인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그 사이에 앉은 동양인은 나 혼자인듯 했다. 외국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새삼 철저히 이방인이 된 느낌에 살짝 움추러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나를 정말 놀라게 한건 비행 중간에 화장실을 한번 갔는데, 정말 한사람이 들어가면 꽈악 차는 좁디좁은 화장실에, 손닦는 세면대는 없고 손세정제 하나만 떡 올려져있는 그 모습! 이런저런 여행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비행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캐나다의 공항에 도착해 무사히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내 손에는 소중한 하지만 후에 나에게 작은 시련을 가져다줄 오픈 워크퍼밋이 들려있었으며, 출국장을 나오자 남편을 만날수 있었다. 남편과 공항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밖에 보이는건 온통 나무와 숲뿐... 불과 몇시간 전만 해도 대도시 보스턴에 있었는데 이제는 캐나다 시골로 이사옴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택시에 내려 마주한 남편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낡았고, 겉모습과 내부 복도서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낯설기만 했다. 남편이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과 동영상으로 많이 봤던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시간전에는 부모님의 깨끗하고 좋은 아파트에 있다가 이제 이런 낡은 아파트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참 철없게도 방에 올라와서 그대로 남편의 품에 안겨 엉엉 울고 말았다. 영주권 딸때까지 고생할 생각 하자고 함께 다짐하고 스스로도 수없이 각오하고 왔는데도, 처음 마주하는 곳에 대한 낯설음과 낡고 오래된 집에 대한 실망감은 그렇게 눈물로 펑펑 쏟아져나와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했다.
하지만 울고 있기만할 시간은 없었고 남편도 나를 첫날 울고 있게만 둘 생각도 없었다. 남편은 나름 해외 이곳저곳에서 많이 살아본 해외생활 레벨 만랩치였다. 또한 이미 두달전에 캐나다에 먼저 랜딩해서 살고 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입국하자마자 해야 할 일들 리스트를 만들어, 집에 짐을 어느정도 풀고 좀 쉬려하는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Service Canada에 가서 SIN 넘버를 신청하고, TD Bank에 들러 계좌를 오픈하고, Mall에 가서 Koodo 핸드폰을 개통하고, MSI에 가서 헬스 카드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간단한 식료품 장까지 보고 나니 나는 완전 녹초가 되어 죽을것 같았다. 뚜벅이족인 우리는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내리고 직접 발로 걸어다니면서 이 많은 일들을 보고 다녔다. 어젯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오늘하루 먹은것도 없는데 오자마자 남편손에 이리저리 끌려 다닐려니 너무 힘들고 머리가 핑핑돌고 이대로 길바닥에 쓰러져 잠들것만 같았다. 저녁시간이 되었을때 남편이 일하는 식당에서 사장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쉬는날인건 알지만 식당에 급한일이 생겼으니 잠깐 와서 일 좀 도와줄수 있겠냐는 전화였고 대신 부인인 나도 데리고 와서 공짜로 음식을 먹어도 좋다고 했다. 내 캐나다 입국 기념으로 자기가 쏜다며.... 그렇게 남편의 식당으로 향해 남편이 한시간정도 일하는 동안 식당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니 비로소 살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그릇 배불리 먹고 나자 비로서 인생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나였다.
그렇게 정신없던 하루를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집에 와 남편의 하우스메이트인 H군과 인사를 했다. 이제 정말 제대로 된 신혼생활의 시작 그것도 낯선 캐나다에서의 신혼생활의 시작이었다. 우리앞에 기다리고 있는 나날들이 비단길 꽃길만이 아니겠지만 일단 긴장이 풀린 그날 밤은 모든것을 뒤로한채 참 달콤한 잠을 잤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