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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런콩 Jan 23. 2024

커피의 맛

커피는 현대인의 필수템이다. 인생보단 조금 덜 쓴 이 검은 물은 어느새 우리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나는 하루에 커피를 두세 잔도 더 마신다. 웬만하면 설탕이나 프리마 없이 마시지만 달달한 게 당기면 믹스커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커피를 몸에 때려 붓는데도 아직까지 카페인에 중독된 것 같진 않다. 사무실에선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섭취하기 전까지 머리가 아프다고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커피 좀 줄여야지' 생각하지만 이내 잊어버린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오늘 밤 잠은 어떻게 자나 걱정한다. 머리와는 달리 손은 커피 탄 물을 휘휘 젓고 있고 입은 그 물을 홀짝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커피 끊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동기 오빠가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오빠는 그 먼 곳까지 가서 동기들 선물을 사 왔다. 커피콩을 간 것이었다. 하와이산 커피는 향이 좋았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 커피 필터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오빠가 준 선물을 묵혀놓았다. 며칠 전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갔는데 커피 필터가 보였다. 400장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대용량 박스를 카트에 담았다. 엄마는 이렇게 많은 걸 사 오면 어쩌냐고 나를 타박했다. "다 쓸모가 있겠지, 앞으로는 커피 내려먹자." 나는 반품하려는 엄마를 말렸다. 쓰다 보면 또 금방 써지는 게 그런 소모품 아니던가. 우리 집엔 다행히 커피 메이커가 있다. 기계 씻는 게 귀찮아 오랫동안 싱크대 밑 깊숙한 곳에 넣어놓았는데 드디어 꺼낼 때가 됐다. 커피 메이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생각에 나는 괜히 신이 났다.


커피 메이커 쓰는 법은 간단하다. 필터에 커피가루를 한 스푼이나 두 스푼 넣고 물통에 물을 채워 넣으면 끝이다. 전원 버튼을 누르면 물이 알아서 뜨거운 커피가 되어 똑똑 떨어진다. 1L를 내리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커피 메이커로 내려 마시는 커피는 향긋하고 부드러웠다. 탄 맛이 없었다. 캡슐로 내리는 커피나 시중에 파는 커피는 쓴맛과 탄 맛이 묘하게 섞여 난다. 커피 거품으로도 불리는 크레마는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고 한다. 출근하기 전 집에서 내린 커피를 보온병에 담으면서 나는 새삼 놀랐다. 무디디 무딘 내가 커피 맛을 다 구분하다니. 아무래도 커피는 현대인의 필수품이 아닌 나의 필수품이 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커피를 내린다. 차가워진 날씨에 얼음을 타지 않고 뜨거운 그대로 커피를 컵에 담는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커피를 홀짝거린다. 참으로 여유롭고 평화로운 아침이다. 커피가 좋다. 나는 그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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