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런콩 Feb 15. 2024

동물을 먹었던 기록을 지웠다

찰칵. 요즘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사진을 찍는다. 수저를 예쁘게 놓고 그릇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연속으로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맛깔스럽게 나온 건 때때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같은 SNS에 올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값비싼 스테이크나 근사한 초밥 정식 같은 것을 먹을 때면 열심히 핸드폰을 켰다. 지난달 다녀온 일본에서는 각종 해산물 튀김을 얹은 텐동과 소고기로 맛을 낸 스키야키, 규카츠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것을 먹게 된 과정과 에피소드를 덧붙여 블로그에 게시했다. 맛 표현이 굉장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느니 풍부한 맛이 미각을 자극한다느니 하는 오만가지 수식어를 갖다 붙였다.     


어제는 병아리콩에 물을 한가득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불려둔 콩을 불에 올렸다. 부드럽게 씹힐 정도까지 삶은 후 참깨소스, 레몬즙, 다진 마늘, 소금과 함께 믹서기에 갈았다. 중동에서 자주 먹는 후무스라고 했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네모나게 깊은 유리병 두 개가 가득 찼다. 점심엔 사비나 이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이모가 오기 전 영등포구청 역 앞에 있는 빵집에서 한가득 빵을 사 왔다. 계란, 우유, 버터가 들어가지 않아 조금 거칠었다. 그래도 만들어 둔 후무스에 발라 먹으니 기가 막혔다. 엄마는 마늘 맛이 너무 세다고 했지만 내 입맛에는 딱이었다. 이모도 맛있다고 했다. 이모 아이들은 한입 베어 물고 말았다. 이모가 집으로 돌아갈 때 엄마는 큰 종이봉투에 후무스 한 병과 갖가지 음식을 담아 보냈다. 내 손이 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건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나는 토마토, 브로콜리, 양배추, 당근, 버섯으로 끓인 야채수프가 떨어지지 않게 한다. 소금과 바질, 월계수 잎으로 맛을 낸 수프는 가족들도 좋아한다. 속이 편하다고 해서 고등학생인 막냇동생도 잘 먹는다. 며칠 전엔 시래깃국을 끓였다. 멸치 대신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된장에 버무려 밤새 묵혀 둔 시래기와 양파를 썰어 넣었다. 된장이 얼마나 짠지 모르고 간장을 넣는 바람에 좀 짜긴 했지만 괜찮았다. 저녁엔 콩나물 잡채를 할 참이다. 당면과 콩나물을 삶고 파기름을 내 양념과 살짝 볶으면 뚝딱 완성될 것이다. 저번엔 조금 싱거웠다. 엄마는 “참치액젓을 넣으면 훨씬 더 맛있겠지만 안 되잖아? 간장 조금만 더 넣으면 돼”라며 진간장 한 스푼을 둘러주었다. 이번엔 간을 맞출 자신이 있다.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비건 지향인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비건이 되고 싶었다. 내가 더 이상 동물을 먹지 않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들려오는 우려의 목소리는 비슷했다. “단백질은 어떻게 채우려고 그래?” “맛있는 거 먹는 게 낙 아니야?” “고기 없으면 뭘 먹어?” 같은 말들이었다. 먹을 게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그놈의 ‘단백질 신화’ 때문에 비건이 되기를 미뤄왔다. 막상 비건식을 시작하고 나니 소화만 잘 된다.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식곤증이 사라졌고 낮잠을 자지 않아도 하루 종일 팔팔하다. 밤에는 오히려 잘 잔다. 나는 동물을 먹었을 때와 다르지 않게 팔 굽혀 펴기를 한다. 철봉에 매달려 다리를 들어 올린다. 변함없이 뛰고 걷는다. 지난번 건강검진에서 공복 혈당이 높다고 나왔다. 이번엔 유의미한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 동물을 먹는 행위를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에서 동물을 먹었던 기록이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다 비공개로 돌렸다. 저품질 블로그가 된다고 해도 상관없다. 근사하게 꾸며진 말로 동물의 맛을 표현한 것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보단 낫다. 대신에 나는 동물 없는 식단을 올린다. 동물이 없이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음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내가 아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면 많은 사람에게 채식 식단이 얼마나 다채로우며 풍요로울 수 있는지 나눌 수 있었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좋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동물을 먹을 때 잠깐이라도 멈추게 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흔적을 남긴다. 족적 없이 사는 삶도 조금은 서글프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고 싶다. 아주 원대한 꿈일지라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 발견한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