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현병 삼촌』이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의 외삼촌은 40여 년간 조현병을 앓고 있다.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도 오랫동안 병에 대해 쉬쉬했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족들의 우려가 잇따랐다고 한다. 삼촌의 병이 밝혀지는 것보다 저자가 조현병 당사자의 가족이라는 게 밝혀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단다. 짧은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입되는 부분이 많았다. 정신질환의 당사자이면서도 병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구나, 그동안 병을 부정하려고만 했지 제대로 마주하려 한 적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식’이라는 말도 입원의 종류에 자의입원, 비자의입원, 응급입원이 있다는 사실도 생소했다. 도파민 관련 약물을 오래 복용하면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은 기억할 만했다. 몇 해 전 병원에서 나는 의사로부터 어떤 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피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 병이 파킨슨병인지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8년 동안 나는 병에서 벗어나려고 아등바등했다. 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궁리하진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병을 부정하는 것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가서 해야 할 질문이 떠올랐다. 정확한 진단명과 약을 장기로 복용했을 때의 부작용 같은 것들.
며칠 전 칼럼 쓰기 수업에서 정신질환 당사자로서 쓴 글을 발표했다. 『나의 조현병 삼촌』을 읽으면서 ‘책 한 권만 읽어봤더라도 그렇게 부끄러운 수준의 글을 쓰진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나의 사회적 기능은 꽤 괜찮은 편이다. 나는 썩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회사에선 3교대로 일하고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나쁘지 않게 감당하고 있다. 일은 내게 구원이었다. 내 질환이 취업 스트레스로 인한 게 아니었을까 의심할 만큼 직장을 구하기 전과 후의 상태가 다르다. 언젠가 정신질환을 가진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아주 많이 읽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언급한 책을 모조리 주문했다. 내게도 병식이 생긴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자의 입원을 당했을 때 나는 엄마를 매우 원망했다. 그 정신 없는 와중에도 엄마가 쏟아냈던 말들은 들렸다. 원망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달 동안 감당할 수 없을만큼 부풀었다. 그때는 내게 병이 없다고 생각했다. 원치 않는데도 나를 입원시킨 가족들에 대한 분노가 가장 만만한 엄마를 향했다. 퇴원하고 다시 큰 병원으로 옮겼을 때 의사는 엄마와 나에게 사회복지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상담사는 엄마 역시도 감정을 쌓아놓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언성을 높였다. 엄마는 결국 내게 “너 미친 게 내 탓이야?”라며 소리를 질렀다.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약 타령 좀 그만하라며 엄마는 나를 쉽게 다루려고 약을 먹이려고 하는 것 같다는 모진 말을 쏟아냈다. 지난번 내원했을 때 의사가 내게 쪽지를 건네주었던 건 그가 엄마와 나 사이의 묵은 갈등을 알고 있어서일 테다. 우리는 서로를 할퀴었다. 아직도 그 상처가 따끔하지만 얼마나 답답하면 엄마가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멀쩡하던 딸을 폐쇄병동에 강제 입원시켜야 하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병의 나쁜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도 병이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환청을 듣거나 환시를 본 적이 없다. 망상에 빠진 적은 있다. 의사는 내가 조현병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엄마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잘 치료받아서 사회에 잘 융화되고 싶다. 튕겨 나가고 싶지 않다. 『나의 조현병 삼촌』 표지에 “돈은 숨기고 병은 소문내야 하니까”라고 적혀있다. 거리낌 없이 병을 밝히기 위해선 일단 당사자의 마음이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