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에세이
유비
‘상대적 박탈감’
한 한국인 대표가 4조 7천억에 자사를 매각한 기사를 보는 순간. 한 연예인의 으리으리한 펜트하우스 내부가 공개되는 순간. 그 연예인이 나보다 5살이나 어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연예인의 강아지가 롯데타워 시그니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세계적으로 유명한 CEO가 하루에 11조 원을 벌고 이혼한 전 아내에게 위자료로 76조를 지급했다는 사실을 안 순간. 6살 어린이 유튜버가 95억 강남 건물주라는 사실을 안 순간. 우리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난 것일까? 그들이 결코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열심히 살고 있다. 열심히 사는 삶의 모습은 이미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다. 오히려 세상에는 그들보다 더 큰 노력을 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들의 경제적 자유는 노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내가 앞서 나열한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그들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칼 융 ‘무의식이 정하는 삶의 방향이 운명이다.’
누군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 그 삶은 그 사람의 무의식이 그를 그리로 이끈 것이라고 칼 융은 말한다. 운이 좋은 삶이란 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자신의 무의식으로 삶을 정해가는 것이라고 본다. 한 마디로 운 좋은 삶을 얻어낼 만한 무의식(생각과 마음가짐 등)의 유무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어제 불행했다면 오늘 내 생각과 마음을 바꿔 내일 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은 단연코 우연이 아니고 무의식 때문이다. 무의식을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생각’ 정도가 되겠다.
‘생각’은 보고 듣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은 생각 하나로 살고 죽고, 성공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 생각이 고작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놀라야 할 것이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는 것은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운수 좋은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지 너무나 많은 사람이 불행하기를 선택한다. 우리가 보기 싫은 것을 보고 듣기 싫은 것을 들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 때문이다. 욕심으로 얻은들 평생 가지고 갈 수도 세상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그것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한다. 오늘의 내가 행복하지 못하고서 내일의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만한 용기가 있다면 차라리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될 것이라고 믿는 편이 낫다.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경쟁에서 이기고, 남들보다 더 고생하고, 처절하게 살아남는 자가 승리한다고 알려준다. 우리들은 승리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은 행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승자들의 노력에 동기부여를 받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운이 없는 인생이라고 좌절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들은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들이 어떻게 성공했을지나 궁금해하고 있다.
‘이소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성공을 목표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모두가 알았더라면 치열하게 경쟁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이 좋아하는가, 편안한가, 행복한가를 먼저 고민했을 것이다. 곧 추상적이던 ‘성공’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해지기 시작하고 이내 곧 자신은 이미 성공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기 시작하고 나는 이제 부러운 사람이 없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편안하고, 행복하다. 더는 그 누구의 성공도 궁금하지 않다. 성공의 모습보다는 그 사람의 모습에 더 눈길이 간다. 세상에 특별히 부러운 것이 없어서 나는 자유롭다. 그렇다고 #내려놓음 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좋은 차와 좋은 집 호화로운 여행 모두 좋아한다. 살아오다 보니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인생은 행복할 만하다는 것이다. 조건이 붙은 행복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니다. 조건부 무료배송이 무료배송이냐 유료배송이냐는 질문에 무료배송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조건부 행복 역시 행복하냐 행복하지 않냐는 질문에 결코 행복한 것이라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참 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 ‘운구기일’ 운이 90%였고 내 노력이 10%는 될까 싶다. 나는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참 운이 좋았다. 결혼을 위해서 서울로 왔을 때 보증금 400만 원이 부족해서 누나한테 바람을 넣어서 서울로 함께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짓인 게, 여자친구랑 결혼해서 살 집을 구하러 서울로 올라오면서도 돈 400만 원이 없어서 친누나와 함께 셋이서 신혼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3명 다 정상이 아닌 게 분명하다. 나는 결국 누나에게 보증금 400만 원을 빌리고 와이프한테 400만 원을 빌려서 1000/60 쓰리룸을 구했다.
쓰러져가는 쓰리룸 월세방에서는 귀여운 바퀴벌레 새끼도 발견하고, 세수할 때마다 하수구에서 욕창 냄새도 자주 올라왔다. 창문은 있으나 보이는 것은 옆 건물의 벽뿐이다. 매우 더러운 창문은 여닫을 때마다 나의 기분을 잡치곤 했다. 창문을 열 때 산뜻함을 경험하려면 돈을 좀 써야 한다. 그나마 평수가 넓었기에 망정이지 크기도 작았더라면 나는 신학원을 알아볼 뻔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는 웃으며 지내고 싶지 않았으니깐.
이곳에서 적응력이 좋은 아내 이설 씨는 서울에서 금방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설 씨가 직장을 잡은 것도 내가 사업적으로 조금이라도 수입이 있었다는 것도 그 돈에 쓰리룸을 구했다는 것도 모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운이 좋았던 일은 반년이 지나서 생긴 일인데, 누나가 집에서 나가기로 약속한 날을 한 달 정도 남긴 때였다. 누나는 다짜고짜 침대에 엎드려있던 나를 불렀다. 누나랑은 그동안 연인처럼 재밌게 지내던 사이였다. 누나 이름은 유지인데 나는 누나한테 뭘 잘못한 줄 알았다. 갑자기 누나가 차갑게 나를 불렀다.
유지: “야, 김유비.”
유비: “엉?”
유지: “니는 생각이 있나 없나. 설이도 나가서 일하는데 맨날 집에 쳐 박혀가지고 니도 일하러 나가라 뭐하노.”
유비: “아ㅡㅡ 나도 사업 잘해보려고 하고 있잖아ㅡ”
결핍이 없는 인간이 가장 결핍된 인간이다. 이설 씨도 직장을 다니고 나도 조금 벌고 나도 모르게 월세방에 안주해서 살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누나 말에 화가 났지만 한 편으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왔다. 핸드폰을 켜고 사람인 앱을 다운받았다. 영양? 통역? 편의점?.. 패션! 이설 씨가 좋아하는 패션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패션 회사를 검색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한 패션 회사가 경력 무관 신입 MD를 구하고 있었다. 아이폰에 있던 옛날 증명사진을 넣고 자기소개서를 4줄 정도 써서 제출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세상에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4줄 쓰는 미X놈은 없다고 했다. 나는 핸드폰으로 이력서 양식을 보니 그 칸의 넓이가 4줄 정도 분량이어서 그렇게 썼을 뿐이다.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못 써서 안 쓴 게 안다. 그냥 몰랐다.
참 운 좋게도 내가 지원한 회사의 대표님은 자기소개서 따위는 읽지 않는 분이었다. 그리고 면접을 5분 정도 봤고, 회사 밑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대표님께서 직접 전화를 해서 합격 통지를 해주셨다. 나중에 물어봤더니 경쟁률이 꽤 높았는데, 대표님은 직원 채용에 특별한 기준이 없으시고 면접할 때 느낌을 보고 뽑는다고 하셨다. 지금은 대표님께서 나를 많이 신임해주셔서 감사하다. 대표님은 여전히 면접 온 사람의 소개서 따위는 읽지 않으신다. 후의 일이지만 대표님께서 얹어주신 보너스까지 소득으로 잡혀서 전세 대출을 최대한도로 얻을 수 있었다. 경력이 없던 나로서는 다른 회사를 갔더라면 전셋집을 제대로 못 구해서 일이 많이 꼬일 뻔했다.
세상일은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이 필요하고 운은 사람을 통해서 들어온다. 누나가 나에게 방구석에 처박혀있지 말라고 욕했던 순간처럼 말이다. 누나의 잔소리가 내 삶에 행운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삶에 유연함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는 일에서부터 본래보다 더 큰 행운을 맞이하는 법이다. 집 가까운 패션 회사에서 좋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행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껏 많은 성공자를 만나며 보고 들은 것이 있었고 행운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무의식은 누나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순간 발휘되었다. 운수 좋은 인생을 사는 방법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오늘을 살면 행운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다. 내 인생을 바꿀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사람을 만나 내 생각을 바꾼다면. 내 생각이 바뀐다면 나는 오늘 당장 운수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
‘구장득주’
식초를 구하던 중에 술을 얻는다
-운이 좋은 상황을 일컫는 말-
본 에세이는 독자님의 관심을 받아 쓴 글입니다.
남은 하루, 한 편의 글로 영감을 얻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