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에세이
유비
우르르.
‘띡’ ‘띡’ ‘띠딕’.
지하철 출구 앞. 퇴근한 사람이 카드를 찍고 바를 밀치며 나온다. 흰색 와이셔츠,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낡은 구두를 신은 저 남성분은 나오자마자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섰다. 양손으로 엉덩이를 툭툭 치더니 양쪽 앞주머니를 살짝 만지고는 다시 가방 어깨끈을 잡았다. 정말이지 그는 그 자세로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다.
1초
2초
3초
움찔. 남자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솔직히 사람을 이렇게 궁금하게 했다면 다시 걸음을 걷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잠깐 멈춰 섰던 간단한 이유라도 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앗! 죄송합니다. 제가 회사에 지갑을 놔두고 온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지갑이 없었으면 이렇게 지하철을 탈 수도 없었겠죠? 지갑을 가방 안에 두었다는 게 떠올라서 다시 갈 길을 가려고 합니다.”라던지 말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방식은 영유아 시기 다음으로 가장 개인적일 것이다. 모두 출퇴근하느라 바쁜 데다 이제는 가정도 꾸리지 않겠다고 주변에 선언하고, 자기 자신만을 돌보기 위해서 버는 대로 자신에게 모두 투자하는 게 2020년 유행이 되었다. 언젠가 유행은 다시 변하겠지만 그때만큼은 자기 자신은 자기 혼자 돌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를 사랑하는 배우자와 나의 가정만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혼자 벌고 혼자 쓰는 게 금전적으로 훨씬 이득이라는 아무런 경제적,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몇몇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번 돈을 자기 혼자서 다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쓰는 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인데 말이다. 그러한 감정의 출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번 돈을 쓸 때 그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지질한 사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히려 둘이서 중복되는 지출 항목을 하나로 줄일 수 있어서 혼자 쓸 수 있는 돈도 더 많아진다. 그리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부부간에 (긍정적인 측면에서) 서로 삶의 부지런함을 비교하는 행동 때문에 혼자일 때보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일을 그만두거나, 몇 달이나 일을 쉬면서 놀러 다니기가 쉽지 않다. 쉽게 이야기하면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덜 쓰고 더 벌게 된다는 뜻이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부부 2명이 솔로 3명의 수입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
커플이라서 음식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먹어야 하고, 꼭 좋은 곳을 가야 하며 품위 유지에 더 큰 비용이 들어서 결국 돈을 더 낭비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그런 핑계들은 자신의 연인과는 속궁합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도 서로의 경제 관념에서는 궁합이 아주 박살 났음을 주변에 떠들고 다니는 꼴에 불과하다. 자신과 경제 관념이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나면 그만인 것이다. 남들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경제력과 한 인생보다 한순간의 욕망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더 이른 나이에 인생의 짝을 만날수록 더 많은 돈을 벌고 모으고 쓸 수 있게 된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동기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배우자에게서부터 나올 것이다.
내가 일찍 결혼하게 된 이유가 그렇다. 돈을 모아서 결혼하는 것보다는 둘이 모여서 돈을 버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위해서 각자 열심히 돈을 모으면 그 시절들은 각자의 기억이 될 뿐이지만, 같은 노력이지만 결혼해서 같이 돈을 모으면 더 이상 개인적인 일이 아닌, 둘의 추억이 된다. 나는 어차피 고생할 것 함께 힘내며 그 나날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기로 했다. 일찍 결혼하는 것을 실수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수로 보이는 일들도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지금 내 앞에서 필라테스 전단을 나누어주고 있는 저 학생도 마찬가지로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이유가 있다. 짧은 단발에 평범한 가로줄무늬 티셔츠, 검정 반바지를 입고 있다. 아마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인 것 같다.
(하)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