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지만 어른들에게 더 매력적일
오랜만에 참여하는 비정기적 독서모임의 도서가 마거릿 와일드의 '여우'라서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일단 출판사의 소개글부터 가져와 보면
개와 까치는 친구였어.
개는 까치의 날개였고,
까치는 개의 눈이었지.
어느 날 붉은 여우가 나타났어.
그리고 모든 것이 변해 버렸지.
개는 산불로 새카맣게 타버린 숲에서 날개를 다친 까치를 발견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로 물고 온다. 날개를 잃은 까치는 이제 더 이상 날 수 없다는 상실감에 빠져 개의 보살핌을 거부한다. 개는 그런 까치를 안타까워하며 자신 역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까치를 위로한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눈과 날개가 되어 깊은 우정을 쌓아 나간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개와 까치 앞에 불쑥 나타난다. 개는 여우를 아무 의심 없이 반겨 주지만 까치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여우를 경계한다. 여우는 개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까치에게 속삭인다. 자신이 진짜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어떤 건지 경험하게 해 주겠다고. 그리고 함께 떠나자고. 까치는 여우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어느 순간 마음에 동요가 생기고 결국 개를 혼자 남겨 두고 여우와 함께 떠나 버리고 만다. 여우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하늘을 날듯이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 멈춰 선 여우는 그곳에 까치를 남겨 두고 떠나 버린다. 개와 까치가 함께 있는 것을 질투했던 여우는 둘을 갈라놓으려고 일부러 접근해 왔던 것이었다. 홀로 남겨진 까치는 두려움에 떨다 문득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개를 떠올린다. 그리고 까치는 두 발로 조심조심, 비틀비틀, 폴짝폴짝 개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먼 여행을 시작한다.
대략 이런 줄거리. 다소 어둡고 채도가 낮은 그림체도 그렇고,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른 취향에 좀 더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그림은 역시나 여우의 시선을 클로즈업한 이 장면일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인간관계 내에서 착한 개, 기회주의자 까치, 삐뚤어진 여우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책 자체를 그냥 인간의 보편적 내면으로 투영해서 이해해도 별 무리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가지 고통과 불행을 겪고 살아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삶의 본질은 우리가 그 안에서 크고 작은 고단함을 마주하는 방법을 천천히 배우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버티고 또 버티면 절망의 순간은 언젠가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것을 나 자신과의 타협이라 부르든 일상에의 안주라 생각하든 결국엔 안정이라는 것도 찾아온다. 그리고 마음의 풍랑이 비로소 고요해지게 되면 그것이 그대로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내 안의 뭔가가 완전히 충족되지 않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한다. 절망의 순간에는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장 절실했으므로 그동안 인식하지도 못했던 열망의 존재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삶의 여러 가지 유혹에 몸을 던질 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모든 유혹에 평생 초연할 수는 없다. 정도와 종류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가끔은 (혹은 자주) 내가 그의 눈이며 그가 나의 다리인 개를 저버리고, 여우의 등에 올라타는 선택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이미 잃어버린 날개를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간절함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날개를 되찾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욕망이 이끄는 길을 기꺼이 따라나선다.
사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후회다. 만약 여우를 따라가지 않았다고 해도 까치의 마음속에 싹튼 현실에 대한 불만 (= '이건 하늘을 나는 게 아니야.') 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우가 줄 수 있다고 약속한 것들, 바람보다도 빨리 달려 진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 주겠다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잊을 수는 없다. 개에 대한 신의를 지키며 곁에 남는 경우에도 '내가 그때 여우를 따라갔더라면'을 한동안 곱씹으며 사는 것은 피하지 못한다. 욕망은 항상 우리의 내면을 지켜보고 있고, 우리는 매 순간 그렇게 흔들리는 존재다.
결말에 이르러 까치는 개에게로 되돌아가기 위한 긴 여행을 시작한다. 과연 기다란 수풀과 울퉁불퉁한 바위와 먼지 날리는 평야와 소금밭과 이글거리는 붉은 사막을 모두 거슬러 개가 사는 동굴로 돌아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개가 그 자리에서 언제까지고 까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니 까치는 돌아가야 하고,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라는 여우의 주문은 사막의 모래처럼 공허하게 스러진다. 분노와 질투와 외로움에서 비롯된 감정은 매우 강렬하고 파괴적이지만 결국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돌아갈 곳이 있는 자와 기다릴 상대가 있는 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자보다 결코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