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고 있는 거니?’, ‘이해하고 있는 건가요?’ 나는 언제나 이 질문이 무섭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문장에 있는 ’이해’ 라는 단어가 무서운 거다. 내게 이해란 정말 흔히 쓰이지만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며 가장 모순된 단어다.
나는 ‘이해’ 라는 단어를 아버지의 꾸짖음으로부터 알게 되었다. 책은 열심히 읽고 공부는 나름 잘 했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나를 아버지는 탐탁치 않아하셨다. 아버지가 원하는 ‘자립적이고 밝고 명랑하면서 이성적인 아이’ 가 아닌 ‘예민하고 우울하며 외곬수인 아이’ 였던 나는 아버지의 뜻대로 가정생활이나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감정 조절을 ‘오로지 참는 것‘ 으로만 할 줄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참아왔던 감정과 분노가 터지면 눈앞에 있는 것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참아왔던 감정과 분노를 드러낼 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싸웠고 그럴때마다 아버지는 ‘너는 너밖에 모른다. 비논리적이다.‘ 라고 화를 내시며 한참동안 ‘너의 결점은 이러하니 그러면 안된다. 생각을 넓게 할 줄 알아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항상 그런 이야기의 끝에 이런 질문을 하셨다. ’내 말 이해하고 있는 거니?’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는 아버지의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대략 알고 있었지만 분노에 찬, 약하고 여린 내 감정을 공감받지 못한 내 가슴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내게 ‘이해’ 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의 양도 많아지고 그 난이도도 올라가면서 각 과목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입에서도 ‘이해’ 라는 단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제 이거 이해했죠?‘ 라는 질문이 들려오면 나는 그 내용을 이해를 했든, 못했든 간에 나도 모르게 내 주위 친구들의 표정을 보곤 했다. 알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표정, 아무 생각 없다는 표정, 뭔가 시무룩해하는 각자의 표정을 보며 나는 내가 그 내용을 이해한 것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이해를 하지 못했어도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와의 논쟁과 달리 공부에 있어서는 ‘이해‘ 라는 단어가 내게 그렇게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고 수학과 물리(문과라 수학은 수1, 물리는 공통과학 부분까지만 배웠지만)가 점점 어려워지자 나는 공부에 있어서 ‘이해‘ 라는 단어가 다시 폭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수업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선생님들은 ’자 이해했죠? 그럼 다음 페이지.’ 라는 말로 계속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중학교 때는 그런 질문에 대해 주위를 살펴 볼 여유가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 ’이해하지 못함‘ 은 수업시간이 끝나도 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고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다른 과목들보다 수학과 물리를 더 열심히 공부해보았지만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내가 아무리 공부해보아도 조금만 문제가 어렵게 나오거나 꼬아서 나오면 시험점수는 바로 급추락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공부에 있어서도 ‘이해’ 라는 말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분명히 그 개념에 관련된 쉬운 문제는 풀고 그 내용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는데 조금만 문제가 어렵게 나와도 왜 나는 아무것도 손을 대지 못하는가, 내용을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는 것이 ‘이해‘ 가 아니라는 건 분명 알겠는데 그럼 내가 그걸 어느정도까지 알아야 ’이해‘ 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행히 고3이 되었을 때, 나는 ‘이해’ 에 도달한 건 아니지만 공통과학 물리에서 나오는 대략의 개념은 파악하게 되었고 재수 생활을 거치면서 수학에 대해서도 ‘이해‘ 를 제대로 한 건 아니지만(특히 도형이나 삼각함수) 그동안 미친듯이 반복적으로 했던 문제풀이의 효과가 조금은 있었는지 어느정도의 점수가 나와 원하는 대학에는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 생활, 시차가 컸지만 첫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들어간 대학원 생활을 거치면서 나는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부에 대한 ‘이해’ 의 벽을 맛보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해는 하지 못해도 문제를 계속 풀다보면 어떠한 요령 같은 것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요령이 객관식 시험 문제에서는 통했다. 하지만 대학교나 대학원의 시험과 과제는 그런 요령이 통하지 않았다. 내가 배운 개념에 대한 ‘이해‘ 를 통해 나온 내 생각을 글로 풀어야 하는 그 시험은 문제풀이나 요령 같은 걸로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이해’ 를 통해 나온 나의 생각과 내가 이해한 개념을 시험지 안에 가득히 채워도 그것들은 교수님이 내게 도출하고 싶어했던 생각이나 개념이 아닐 때도 있었다. 대학원 수업은 더했다. 교수님이 지정한 책과 논문을 밤을 새다시피 읽고 가도 교수님의 질문은 내 이해의 수준을 넘거나 아니면 내 이해를 비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경험들을 겪으며 나는 ‘이해‘ 라는 말에 대해 더더욱 어렵고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이해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나의 이해는 무엇이고 당신의 이해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내게 정말로 어려운 것은 이런 공부에 대한 이해가 아닌 사람과 감정에 대한 ‘이해‘ 였다. 공부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래도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면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긴 해도‘ 공부에 대한 개념들은 어떻게든간에 내 안에 어떤 형태가 잡히긴 했다. 그러나 사람과 감정에 대한 이해는 그렇지 않았다. 좁은 폭의 인생을 살고 인간관계에서든 사랑에서든 어떻게든 위험과 갈등을 피하기에만 급급했던 내게는 사람과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과 경험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러했기에 나는 내 삶 속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이해‘ 하려고 했지만 사실은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그들에 대해 찬란한 ’오해’ 를 하고 있었다. 그런 ‘이해와 오해‘ 로 인해 나는 내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다투면서 그 사람들과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렇게 다투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이해와 오해가 겹쳐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서히 멀어져 이제는 더 이상 만남을 이어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와 제일 가깝게 지내는 부모와 가족에 대해서도 나는 ‘이해‘ 가 아닌 ’오해‘를 하면서 지냈고 그런 오해 속에서 나는 지금까지도 어릴 때처럼 부모, 특히 아버지와 계속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마다 여전히 아버지는 내게 물으셨다. ’이해하고 있는 거니?‘ 라고.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말에 ‘이해했다’ 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더 이상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입으로는 ‘이해했다’ 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할지라도 나의 이해와 아버지의 이해는 다를 것이며 그런 나의 이해는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찬란한 오해’ 일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내 주위의 모든 것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해’ 했다라고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공부에 있어서도, 사람과 감정에 있어서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 자‘ 이며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다른 이의 시각에 보면 나의 그런 이해는 ‘오해’ 며 ‘착각’ 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어떠한 개념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내 주위의 누군가의 감정과 마음에 대한 무언가를 나 역시 느끼고 있고 그 느낌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 ‘이해’ 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보이는, 매일 쓰이는 단어지만 나는, 우리는 정말 ‘이해‘ 하고 있는가? 나와 당신 모두 이해를 말하고 있지만 정말 나의 이해와 당신의 이해는 같은 곳을 보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이해‘ 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