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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선 썬 Dec 12. 2022

엄마의 다시 만난 세계

엄마와 페미니즘 하기(9)

엄마의 ()소리를 찾아서  

   

 “밤에 그렇게 늦게 자니까 아침에 못 일어나지! 일찍일찍이 자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이 소리는 서른 살 먹은 큰딸이 늦은 밤까지 책을 읽다 자서 아침이 되어도 제때 못 일어날 때 하는 엄마의 잔소리다. 본가에서 출퇴근을 할 때 종종 아니 자주 아침부터 들은 엄마의 잔소리. 1절로 끝나면 역시 우리의 소리가 아니지.     


 “책 읽고 싶은 건 알겠는데 잠을 자야지. 사람이 잠을 자야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맨날 그렇게 피곤해가지고 아침에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당신도 그림 그린다고 어제 늦게 잤잖아. 빨리 자라고 해도 마저 하고 잔다고 그랬잖아. 왜 큰딸한테만 그래…”

 “얘는 아침에 일어나서 빨리 출근해야 하니까 내가 하는 말이지! 그리고 나는 늦게 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잖아!”

 “(엄마아빠 사이에 앉아 말없이 밥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그렇다. 엄마의 잔소리대로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잠을 늦게 자더라도 하고야 만다. 늦은 밤, 내 방에 불이 켜져 있을 때 엄마와 아빠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아빠는 ‘큰딸 너무 늦게 자지 말고 일찍 주무세요’ 하고 나긋나긋하게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니 애초에 엄마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엄마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행동하지만, 들킨 순간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묘하게 억울하다.  

  

엄마의 유화 연작

 

엄마가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민화


하고재비’+‘-

 경상도 사투리로 무슨 일이든지 안 하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 무슨 일이든 하려고 덤비는 사람을 하고재비라고 한다. 나 스스로를 소개할 때도, 남들이 나를 이를 때도 하고재비라고 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이거 엄마아빠 닮은 거 아닌가? 특히나 엄마를 볼 때면 내가 하고재비인 게 유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어릴 때부터 여자는 손재주가 좋으면 팔자가 세다며 우리 자매가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만들면 너무 잘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손재주가 좋으면 좋은 거지 팔자와는 무슨 상관일까. 대대로 여성이 하는 일, 특히 손으로 하는 행위에는 접미사 ‘-질’이 붙었다. 바느질, 가위질, 걸레질 등등. 그 도구를 가지고 하는 행위나 그것과 관련된 행위를 이르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해당 행위를 비하하는 의미가 더해진다. 책을 읽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하물며 술을 마시는 일도 ‘-질’이 아닌데, 여성이 일상에서 하는 행위들은 다른 어떤 일보다 ‘낮은’ 일이 된다. 손재주 좋은 여자는 삯바느질이나 하며 살까봐 걱정한 엄마와 그 엄마의 걱정에서부터 나온 옛말이 아닐까.

 딸들이 손재주가 뛰어날까봐 걱정한 엄마는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다. 본인을 닮아 손재주 좋은 딸들의 팔자가 사나울까봐 어릴 때부터 그리도 걱정을 한 것이다. 엄마는 뜨개질이며 비즈공예, 꽃꽂이, 유화, 라탄공예, 민화까지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다. 우리 자매가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엄마가 코바늘로 떠서 만든 모자와 옷을 나란히 입고 있다. 식탁보며 티비 위, 화장대 등 집안 곳곳에 엄마가 뜨개질로 만든 보를 덮어두었다. 양쪽짜리 커튼을 짜서 여름 방 베란다에 걸어두기도 했다. 한번은 아빠가 엄마에게 문방사우를 선물해주었는데, 때때로 엄마가 서예를 하는 동안 나와 동생은 예쁜 연적에 물을 담아와 벼루에 따르고 먹을 갈았다.

 올해 봄 엄마가 코로나19 확진이 되어 일주일 동안 방에 격리가 되었었다. 엄마가 걱정되어 전화를 해보면 길게 통화도 하지 않고 긴 말도 하지 않기에 많이 아픈가 하고 걱정을 했다. 이어 아빠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엄마가 지금 음악 틀어놓고 라탄공예를 한다고 통화 오래 못 할 것이라고 했다. 라탄공예를 배우고 싶어서 동네 행정복지센터 수강 대기 명단에 이름을 몇 달째 올려두었다가 마침내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2주차에 코로나19에 걸려버린 것이다. 엄마는 일주일의 격리 기간 동안 첫 수업 때 사놓은 재료들을 가지고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 몇 십 개의 라탄공예 작품을 만들었다. 격리 기간이 끝나고 수업에 갔더니 강사가 더 놀라 고급기술을 따로 알려주었다고 한다.

엄마의 라탄공예 작품과 민화

 원고를 쓰고 있는 오늘 낮에도 엄마가 ‘자이언트 얀 가방’을 만들고 있다고 큰 크기와 작은 크기 중 어떤 걸 갖고 싶은지 물어보며 사진을 보내왔다. 나보고 쉴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엄마가 또 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새로운 ‘거리’를 찾은 것이다. 원고와 함께 실으면 딱이겠다 싶어 가방 만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 했더니 쌩얼이라 안 된다고 하여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엄마, 뭘 또 하는 거야?' - 자이언트 얀 가방 만들기


특명 엄마의 도전

 어릴 때 보던 티비 프로그램 중 <특명 아빠의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공식 소개는 다음과 같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소외되어만 가던 아버지들에게, 그리고 아버지의 자리를 잊어가던 가족들에게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증명하고 참다운 가족애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던 프로그램”  

   

 참으로 구구절절 감동적인 소개다. IMF 이후 직장을 잃고 가정 내에서 가부장으로서의 지위를 잃어가는 아빠들의 용기를 북돋우는 2000년대 초반 프로그램이었다. 오랜 연습을 해야만 할 수 있는 미션을 아빠가 연습하고 가족들-엄마와 자식들-이 아빠를 응원하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미션을 성공한 아빠는 본인의 존재가치, 아빠로서의 진정한 모습을 증명한 것에 기뻐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배제되고 가정에 얽매여 사는 엄마들의 도전은? 내가 아는 티비 프로그램어느 것에서도 본 적이 없다. 우리 엄마도, 내가 아는 엄마들도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엄마들에게 도전할 기회는 지금껏 주어졌을까?

 엄마는 역사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외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사범학교를 가지 못하고 일찍 외할아버지와 결혼하셨다. 외할아버지의 반대에도 엄마가 전문대학교 야간반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꿈을 펼쳐보기는커녕 제대로 꾸어보지도 못한 외할머니의 바람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어디를 가든 엄마는 그곳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해줬다. 자갈치시장을 가면 근대역사관에도 들르고 부산에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모두 다녔다. 지금도 엄마는 역사 다큐멘터리나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함께 사극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면 옆에서 자꾸 뒷이야기를 스포(?) 하는 바람에 주위 관객들에게 민폐가 될까 엄마한테 조용히 하라고 할 정도다.     


엄마의 다시 만난 세계

 그런 엄마가 역사 선생님의 꿈을 다시 꾸고 있다. 주말 본가에 갔다가 엄마가 또 이것저것 많이 싸주어서 혼자 집에 가기 힘들다고 하자 엄마가 집까지 차로 태워주었다. 나를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 엄마는 우연히 현수막 하나를 보았다. <근대문화자산 해설사 전문인력 양성과정>. 엄마는 집에 도착해 곧장 현수막에서 본 것을 검색해보았다. 부산시와 동아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주최, 주관하는 프로그램이었고 연수과정을 이수하면 근대문화자산안내전문가 2급 자격검정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자격검정시험도 통과하면 근대문화자산 해설사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바로 마음을 먹었다. 역사 교사는 못 되었지만 근대문화자산 해설사가 되어 딸들과 함께 다니며 역사를 설명해준 것처럼 아이들, 학생들에게 역사를 설명해주고 싶다고.

 엄마의 솔직한 마음과 바람을 담은 지원서를 제출했고 합격했다. 매주 월요일 저녁 백팩을 메고 학교를 오갔다. 과제와 실습을 위해 파워포인트도 배우고 아빠와 홍구리를 청중으로 두고 해설 연습도 했단다. 지금은 과정의 막바지인 12월 근대문화자산안내전문가 자격검정시험을 앞두고 공부하고 있다. 이 글이 실린 책이 나올 때쯤이면 엄마는 시험을 쳤을 것이다. <엄마와 페미니즘 하기> 연재를 시작하며 엄마에게 ‘엄마가 12월 시험에서 합격해야 내 글이 완성되는 거야’ 하고 말했지만,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 엄마가 못다 이룬 꿈을 다시 꾸며 한 도전이 내 글 몇 편보다 값지니까.      

<근대문화자산 해설사 전문인력 양성과정> 현장 실습(오른쪽에서 두 번째)


엄마와 페미니즘 하기 -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이번 원고를 쓰기 위해 엄마의 지원서를 보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있었다. 이력서에는 엄마의 경력사항이 적혀 있었다. 결혼하기 전, 나와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일했던 회사와 일한 기간이 적혀 있었다. 퇴직 사유에는 ‘결혼’, ‘육아’라고 적혀 있었다. 이전 글에서 엄마의 경력 단절을 썼지만 이력서에 적힌 것을 보니 더 마음이 착잡했다. 분명 30년 전, 40년 전, 10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 사회가 변한 게 맞을까 허탈하고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클라우디아 골딘은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여성이 퇴사를 더 많이 한다는 문제점에서 시작하여 지금에도 성에 따른 임금 격차가 존재함을 지적한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특히 코로나 위기의 와중에 더더욱) 불안해하고 걱정스러워하며, 이들의 불안과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 세대(윗세대 여성들도 대부분 불안해하고 걱정스러워했다)가 닦아 놓은 길을 밟아 가고는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시간과 에너지를 커리어에 바치느냐 가정에 바치느냐 사이에 끼어 있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고 교육, 전문 학위, 커리어 기회가 확대되면서 많은 장벽이 무너졌고, 여성이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차별적 장애물도 치워졌다. … 한 세기간의 여정을 통해 겹겹이 쌓여 있었던 성별 격차가 깨졌고 여성 고용을 가로막던 숱한 장애물이 철폐되었으며 수많은 시간 제약도 사라졌다. 먹구름이 갈라지고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으로 시야가 밝아지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성별 격차의 이유가 명료히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더 높은 수준의 성평등과 부부간 공평성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시스템’을 바꿀 것인지 질문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했다. … 내가 이 책에서 내놓고자 하는 답은, 노동이 구조화되어 있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마지막 장애물은 현재 우리가 가진 노동과 돌봄 제도의 구조에 놓여 있다.”   

클라우디아 골딘, 『커리어 그리고 가정』,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2021, 33-34p..  


 ‘페미니즘’을 제목으로 걸고 엄마와 아빠의 인생 이야기를 연재하는 동안 이런저런 공격도 많이 받았다. 이른바 ‘백래시(backlash)의 시대’. 내가 겪은 비아냥과 공격적인 댓글도 모두 백래시다. 평등(equality)과 공평(equity)의 차이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그림이 있다. 담장 너머의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3명의 다른 사람에게 동일하게 상자 1개씩을 주는 것을 평등, 3명의 특성에 맞게 상자를 다르게 주는 것을 공평이라고 설명하는 그림이다. 평등을 위한 불평등은 평등이 아니라는 것을,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찾기 위한 불평등은 불평등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다르게 상자를 주는 공평만으로 사회의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 상자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세 사람 앞에 놓인 담장을 허물면 어떨까? 말 그대로 담장이 없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환경을 만든다면 모두가 함께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은 그런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절대적인 균형을 찾는 것도 아니고 모두 동일한 출발선에 서는 기계적 공정을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담장이라는 성차별적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담장을 허물어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만드는 학문이자 운동이다.

 누군가는 실력만으로 따져야 한다고 한다. 여성이라고 우대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 실력을 키우고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얘기해야 한다. 엄마에게 청소년기 집안 경제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엄마에게 4년제 대학에 가서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엄마에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엄마의 ‘실력’은 과연 어땠을까.

 <엄마와 페미니즘 하기> 연재는 엄마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홍씨 집안의 살림 밑천 큰딸에서 공부 잘 하는 왕눈이, 일 잘하는 미스 홍을 거쳐 두 딸의 엄마가 된 사람, 우리집 홍여사 홍경애의 이름을 찾기 위한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홍경애의 다시 만난 세계에서는 이름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연재를 마친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가사 중


아빠 62살 생일 맞이 첫 인생 네 컷 가족사진



*이 글은 『함께가는 예술인』 13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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