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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선 썬 May 11. 2022

흔들리는 몸짓 속에서 나의 정체성이 느껴진 거야

이진아, 『네이션과 무용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 읽기(3)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를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동일시 양식이라고 설명하며, 젠더는 무대 위에서 배우가 행하는 퍼포먼스처럼 언제나 행위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곧 젠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문화와 사회라는 무대에서 주체가 ‘수행’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북한이라는 네이션을 월경하며 최승희가 민족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상한 것처럼 그의 젠더 수행도 다채로웠다. 이진아는 ‘문화권력’ 개념으로 최승희라는 여성의 젠더 수행을 살펴본다.

  

 문화권력의 의미는 해방 이전/이후에 걸쳐 조선예술의 수용자이자 비평가 그리고 후원자로서 오랫동안 존재했던 남성 정치인과 문화 엘리트를 포괄적으로 지칭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193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관통하면서 예술장 혹은 조선예술과 연관되었던 조선인/일본인 남성이 모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문화권력이라는 프레임은 식민지 출신의 여성 예술가를 응시하고 평가하며 담론화하는 이들의 시선과 언어에 대해 역사적인 맥락에서 연속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다.1)      


식민지 조선의 여성 무용수

 126호 「민족적인, 너무나 민족적인」에서 최승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제국주의의 페티시즘, 이국취미, 오리엔탈리즘적인 것이 있다고 언급했다. 최승희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안 모던댄스부터 민족성이 드러나는 향토적인 춤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그가 어떤 춤을 추는 최승희의 춤은 식민지 무용수의 춤이고 근대 제국와 비교하면 전근대적인, 다시 말해 식민지의 토속적이고 원시적인 춤이었다. 일본에서 최승희의 이러한 춤을 원한 것은 문화권력을 지닌 일본 제국이 그를 타자화시킬수록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승희가 수행한 젠더란 식민지의 서정성과 함께 원시적 에로티시즘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진아는 이를 두고 ‘공적인 에로티시즘’이라고 명한다. 제국주의 시기 유럽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티프로 한 여성 누드화가 인기를 끌었던 것과 같다.       


 제국주의 문화권력의 입장에서, 최승희의 여성 신체를 통해 전시된 이러한 원시적인 이미지는 일종의 “공적인 에로티시즘(public eroticism)”이었다. 이는 식민지에 대한 제국이 가진 문명화 임무의 성공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식민지의 무희를 통해 표상된 타자성은 길들여지거나 문명화되어야 하는 인종적 차이를 드러내는 동시에 식민자가 포용하고 합병해야 하는 민족적 다양성과 지리적인 스펙트럼까지 함께 의미하기 때문이다.2) 

 일본에서 최승희의 신체와 춤을 통해 공적인 에로티시즘을 찾았다면 조선은 최승희가 ‘우리 가락’에 맞추어 추는 춤에서 빼앗긴 민족의 민족예술을 찾았다. 정리하자면, 제국 일본은 일본대로 식민지 조선은 조선대로 최승희에게 다른 젠더 수행을 요구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최승희가 조선무용을 추며 민족주의를 지탱해주기를 바랐고 일본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동일화된 황국신민으로서의 모습을 요구했다. 곧 두 개의 네이션이 바라는 두 개의 정체성이 최승희 한 명에게 투영되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여성 인민 무용수

 사회주의 체제의 북한은 최승희에게 여성 인민이라는 젠더 수행을 요구했다.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부인으로서 혹은 어머니로서 한 사람의 인민 전사로서의 역할을 부여했다. 여기서 섹슈얼리티는 드러나지 않는다. 최승희가 수행한 모성, 조선의 어머니라는 것은 미국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과거의 조선, 서양와 일본 문화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민성을 말하며, 이를 최승희라는 여성 신체를 통해 창안하고 보이고자 했다. 섹슈얼리티가 소거된 어머니라는 젠더 수행은 사실상 사회주체 체제 내 남성 젠더 수행에 가까웠다.


 최승희가 보여준 남성성 표상의 젠더 수행은 앞서 지적한 여성적 섹슈얼리티의 소거와 함께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봉건 질서와 미국/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투쟁하거나 혹은 평등하고 해방된 인민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자각하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에 가까운 수행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3)      


 그는 어머니 역할로 무대에 많이 섰는데 그가 표현한 어머니란 사회주의 체제에서 여성 영웅이 형상화된 것으로 지극히 애국적인 마음을 지닌 인물이었다. 사회주의 북한의 문화권력은 평범한 여성들이 혁명적으로 각성한 인민의 구성원이 되기를 바랐다.    

  

춤추듯 흔들리며 살아가기

 최승희는 자신만의 ‘조선무용’을 통해 1930년대부터 1960년에 걸쳐 제국 일본,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북한에서 ‘민족무용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그는 각 네이션에서 제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라는 문화권력이 요구한 민족과 젠더를 표상하고 재현하며 오히려 보편적이지 않은 그만의 예술을 창작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요구 즉, 호명기제가 고유한 자신이 아니라 문화권력의 판타지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최승희는 민족/젠더라는 이분법적인 호명기제에 대해, 유동적인 수행성으로 자신의 주체 위치를 항상 새롭게 생성해 내는 “과정중의 주체(subject-in-process)”였다(버틀러, 2008:245). 이는 그녀에게 다양한 네이션의 이름으로 존재했던 문화권력이라는 사회구조가 외재적이면서도 내재적인 방식으로 작동되었던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중략)그런 점에서 그녀는 무용가의 행적뿐 아니라 남성 권력이 상상했던 원본/판타지의 경계를 끊임없이 지워냈던 수행성을 통해 해방의 아이콘 혹은 질문하는 여성으로 새롭게 기억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의 행위자로서 최승희는 언제나 어떤 한계를 확인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역사와 사회구조를 향해 계속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4)      


어느 전시에서 만난 작품. 미러볼 속에 머리를 넣으면 작은 거울 조각들이 나를 비춘다. 조각난 '나' 중에 내 모습을 찾기란 어렵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최승희를 만날수록 내가 찾고 싶어진 것은 나 자신이었다.


 MBTI 테스트가 유행이다. 나의 성향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나, 가족과 있을 때의 나, 노동 현장에서, 홀로 있을 때의 나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다른 역할을 부여받고 이를 수행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자주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을 되뇐다. 최승희는 그 시절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자신에게 물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비운의 무용수’, ‘우리 민족 최고의 무희’ 같은 수식어로 최승희를 다 설명하기에는 그의 몸짓이 너무나도 힘차다.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의 수식어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려온 것만 같다. 최승희를 다시 춤추게 하는 『네이션과 무용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 읽기를 이로써 마친다.      


 최승희는 해방 이전과 이후에 걸쳐 조선성이라는 기표/담론을 반복하면서도, 외재적이고 내재적인 차원에서 주체 위치를 순차적으로 변경함으로써 문화권력에 의해 완전하게 종속되지 않는 자신의 주체성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권력에 의한 예속화는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주체의 등장으로 보증하는 것이기도 하다.5) 



1) 이진아, 『네이션과 무용 -최승희의 민족 표상과 젠더 수행』, 45쪽.

2) 같은 책, 89쪽.

3) 같은 책, 196쪽.

4) 같은 책, 221쪽.

5) 같은 책, 205쪽.


* 이 글은 『함께가는 예술인』127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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