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페미니즘 하기(2)
“어쩜 그렇게 누워서 TV 보는 자세도 김씨 셋이 똑같냐?”
아빠가 왼팔에 큰딸을, 오른팔에 작은딸을 끼고 셋이서 누워 티비를 보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 때 엄마가 한 말이다. 또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아빠와 나와 동생이 즐겁게 놀고 있을 때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당신은 좋겠다, 당신 딸이 둘이라서.”
“왜 내 딸이야, 홍여사랑 내 딸들이지.”
“딸 둘 다 당신 성 따르잖아. 왜 자식 중에 김씨만 있고 홍씨는 없는 거야! 김씨들끼리만 놀고 나는 혼자잖아. 나도 내 성 따르는 자식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이제부터 홍씨 해~”
엄마는 두 딸을 뱃속에서 키우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낳고서 먹이고 재우며 키워왔지만, 가족 4명 중 혼자만 성씨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21세기를 앞둔 어느 날 엄마의 신세한탄과 아빠의 쿨함이 더해져 우리 집에선 엄마 성 쓰기가 시작되었다. 두 딸이 이미 아빠 성을 따르고 있으니 이 다음부터는 엄마 성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살았던, 나의 첫 반려견 내 동생 바다는 홍바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김씨니 바다를 보고 김바다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 바다는 엄마 성 따라서 홍바다야’라고 답했다. 홍바다와 함께 산 지 십 년이 넘었을 때쯤 이전과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했더니 ‘너희 집 완전 멋있다’ 같은 대답을 들었다. 우리 집 셋째부터는 엄마 성을 쓰기로 한 것이 너무 익숙했던 나머지 엄마 성 쓰기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성(姓)이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에 따르면 성이란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인 칭호로 주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대로 계승되는 것이다. 처음 만난 사이에 통성명을 하고 나면 본적까지 묻는 곳이 한국 아닌가. 촌수와 항렬까지 따져가면서. 한국의 가부장제는 이토록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어릴 때 봤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뉴스 장면이 있다. 하얀 도포를 입고 갓을 쓴 할아버지들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며 호주제 폐지 반대를 외치던 장면. 유림의 입장이라는데 지금이 조선시대인가 싶었다. 호주제는 호주(戶主)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 혼인, 사망 등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제도로 부계혈통을 바탕으로 호적(戶籍)을 편제하는 것이다. 남성 우선적인 호주 승계 순위, 호적편제, 성씨제도 등 성차별적 조항에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이혼·재혼가정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2005년 2월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4편에 의한 제도인 호주제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각계의 폐지 요구를 받아왔던 호주제는 개정 민법인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되는 2008년 1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호주제 폐지에 여성계에서 오랫동안 큰 목소리를 내왔고 마침내 호주제는 폐지되었다.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이야기다. 암탉이 운다고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엄마 성을 따른다고?
호주제 폐지에 앞산 1990년대 말부터, 우리 집에도 영향을 준 ‘부모성함께쓰기운동’이 여성계를 중심으로 사회에 퍼지고 있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교수 부모성함께쓰기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7년 3월 8일 여성대회 이이효재 선생님을 비롯한 170여 명의 여성계 인사들이 부모성함께쓰기운동에 동참하며 호주제 철폐를 외쳤다. “호주제, 그거 사실 유명무실하고 상징일 뿐이다”라며 호주제를 존치하자고 하고 “동성동본금혼 역시 예외조항을 두어 해결할 수 있다”며 동성동본이 혼인하면 유전적 문제가 생긴다며 반대하던 유림들의 주장에 맞서,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가족 내 어머니의 위치를 가시화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동성동본금혼폐지, 호주제폐지가 운동의 목표였다. 동성동본금혼규정은 1999년에, 호주제는 2005년에 각각 폐지된다.” (권김현영(2019),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성을 함께 쓴다고 하면 늘 조롱이 따라붙는다. 부모 성씨를 이어 불렀을 때 우습거나 민망한 단어를 연상시킨다거나, 손자 세대에는 성씨만 4글자가 되느냐, 그 다음 세대는 성만 몇 글자냐 하는 것 등이다. 성을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설명해봐야 답변은 공기 중에 흩어질 뿐, 가닿지 않았다. 권김현영 교수는 동성동본금혼규정과 호주제가 폐지된 후에도 부모성을 함께 쓰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엄마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님 모두 김씨라 부모 성을 함께 쓰면 ‘김김현영’이 되어 사람들이 실수로 착각하는 일이 많아 부모 성을 함께 쓰지 않자, 그의 엄마는 ‘그럼 엄마의 엄마 성을 쓰면 되지’라고 말했단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성 ‘권’과 아버지의 성 ‘김’을 함께 쓰고 있다.
내가 네 엄마다
호주제가 폐지되기 전인 2005년 이전 민법은 자녀의 성에 대해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고 정하고 있었다. 호주제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2005년 3월 민법이 개정되어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문장 뒤에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조항이 붙었다.
현재 부부가 자녀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혼인신고를 할 때 혼인신고서 항목 중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항목에 ‘예’를 체크하고 별도의 협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혼인신고 시에 모성 따르기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자녀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2가지다. 서류상 아주 간편하게 이혼을 했다가 재혼하며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때 자녀에게 어머니 성을 주겠다고 체크를 하는 방법 하나, 가정법원에 성본변경신청을 해 재판을 거치는 경우 하나. 이때 왜 아이가 엄마의 성본을 따라야 하는지 청구서를 제출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든 자녀가 엄마의 성을 쓰기 위해서는 ‘내가 이 아이의 엄마요’라는 사실보다 더 많은 증명과 명분이 필요하다.
최근 혼인신고 시가 아니라 출생신고 시에 자녀의 성본을 부, 모의 성본으로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민법을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 여성가족부의 가족다양성국민인식조사(2020)에 따르면 “자녀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해 성과 본을 정할 수 있어야 한다”에 73.1%가 찬성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민법 제781조 제1항을 자녀의 성 결정을 ‘부성우선주의 원칙’에서 ‘부모협의 원칙’으로 전환하도록 법무부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법무부는 법 개정 필요성의 검토가 필요한 단계라고 하고 있다.
엄마 딸, 홍구리
홍바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멀리 떠난 후, 조그마한 장모치와와가 우리 집 막둥이가 되었다. 너구리를 닮아서 이름은 구리요 역시 성은 홍씨다. 동물등록법에 따라 동물등록을 할 때 반려동물 이름을 적는 칸에도 ‘홍구리’라고 적었다. 엄마 아빠는 동물등록을 하고 나면 가족관계증명서에 홍구리가 같이 적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엄마 아빠에게 홍구리를 동물등록하는 것은 홍씨 성을 따르는 엄마의 자식을 우리 집 ‘호적’에 올린다는 의미였고 국가가 그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엄마의 호적에 홍구리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홍구리는 동물성단백질에 알레르기가 있어 채식을 하는 비건 강아지다. 선천적슬개골탈구가 있었고 지금은 양 뒷다리 슬개골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한 상태다. 새끼 때부터 몸이 아팠기 때문인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에 예민하다. 몇 번의 파양 경험 때문에 분리불안이 심해 가족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큰소리로 낑낑거린다. 인간의 노리개 따위는 되지 않겠다는 굳은 심지를 가진 녀석이라 예쁜 인형처럼 굴지도 않는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도 내고 변덕도 심하다.
홍구리가 음식 투정을 하거나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릴 때면 가족들은 ‘홍구리는 역시 엄마 딸이야, 어쩜 저렇게 엄마랑 구리랑 똑같은지. 어휴 홍씨들 정말 못 말려.’ 하고 말한다. 그럴수록 엄마는 ‘우리 구리는 엄마 새끼니까~’ 하며 감싸고돈다. ‘개통령’ 강형욱이 봤으면 엄마는 호되게 혼났을 거라고 말할 수준이다.
바다와 구리가 반려견이라 해도 우리 집에선 나와 내 동생과 같은 엄마 아빠의 자식이다. 우리에겐 동생들이고. 홍바다도 홍구리도, 엄마 성을 따르는 자식이 있다는 건 엄마에게 든든함 그 이상을 주었다. 김씨 딸들이 엄마에게 줄 수 없는 무언가가 홍씨 딸들에겐 있다.
놀랍게도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는 오늘도 들은 질문.
“구리 이름이 왜 홍구리야?”
“나랑 동생은 아빠 성 따르고 구리는 엄마 성 따라서 홍구리야.”
엄마 딸 홍구리는 오늘도 동물권은 물론이요 비건 문화를 알리며 가부장제 인습 타파에서 앞장서고 있다. 그 엄마의 그 딸이다.
*이 글은 『함께가는 예술인』129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