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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KGEE Oct 09. 2020

그날의 주사(酒史)

놀라듯 눈이 번쩍 떠졌다. 악몽이라도 꾼 건가.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어젯밤 내 목소리가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설 연휴라고 친정에 와서는 와인과 소주를 연이어 섞어 마시고는 취해버렸다. 내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점점 커졌고, 술이 계속 들어갔다. 기억은 다 나는데 꽤 취했었는지 지난밤에는 못 느낀 민망함이 뒤늦게 밀려왔다. 40년이 넘도록 친정식구들 앞에서 내가 취한 모습을 처음 보인 날이었다. 술주정도, 먹은 것을 내보인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은 매듭 풀린 모습을 보여준 거라 당황스럽다. 친정 작은 방 침대와 바닥에 깔아 놓은 요 위로 남편과 두 아이들이 곤히 잠들어 있다. 벌떡 윗몸을 일으키니 내 뒤통수를 누가 잡아당기는 듯 머리가 띵하니 어지러웠다. 누워있을 때는 숙취가 없는 것 같았는데, 역시나 과일주는 뒤끝이 안 좋다. 거기에 마무리는 소주로 했으니 상태가 좋을 리는 없다. 이 방도 건넛방도 다들 기척이 없어 대강 겉옷만 걸쳐 입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이 몰골로 자다 일어나 다른 가족들 얼굴을 보는 것보다는 산책하고 들어오는 게 덜 민망할 것 같고, 차가운 공기에 머리가 맑아지길 바라며 나왔다. 아파트 밖으로 나오니 맑은 공기에 시원하기는 해도 머리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으... 이 놈의 숙취. 곧장 편의점으로 가서 헛개수 한 병을 사려다 그냥 생수로 고른다. 물 마시며 푸석한 몰골로 휴일 이른 아침 한적한 동네 길을 걸었다. 어젯밤에는 원래 와인 한잔 마시고 말 거였는데, 이게 다 이모부 때문이다.


친정식구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쉬고 있었는데, 부산에 있는 둘째 이모가 들린다고 연락이 왔다. 엄마는 이미 손님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이모까지 가세한다니 오지 말라고는 못해도 영 내키는 표정은 아니었다. 이모네 장가간 큰아들 네가 못 내려온 모양인지, 명절이라고 썰렁해서 언니 집으로 온다고 했단다. 그나마 이모는 반갑지만 예나 지금이나 영 반가워지지가 않는 이모부는 말 많고 목소리 큰 사람이었다. 내가 봐온 남자들은 어김없이 실속이 없어질수록, 내세울 것이 없어질수록 말과 술의 양이 는다. 집에 오면 술상부터 내라고 할 텐데, 지금 집에는 소주도 없고 이모부를 술로 상대할 남자도 없었다. 아빠는 간이식에 항암치료까지 마친 금주가 필수인 환자이고, 아까부터 조용한 제부는 연이은 야근으로 이미 아파 보이는 몰골이었다. 엄마는 처가에만 오면 저리 병든 닭 같다며 그의 생기 부족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편은 아직 도착 전이었다. 결국 나 밖에 없구나. 이모부는 우리 집에는 없을 것 같았다며 소주를 직접 사 들고 오는 성의를 보이셨고, 자리에 앉자마자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아빠에게 늘어놓았다. 이모부 오른쪽 옆으로 제부가 앉았고 나를 찾지도 않았지만 내가 알아서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그 외 엄마와 이모 아빠는 술상 옆으로 슬쩍 비켜 앉은 채로 상 앞으로 들락날락하는 형태였다. “형님, 우리 영재가 얼마 전에 딸내미를 낳았잖소. 며느리한테 애가 어리니 왔다 갔다 힘들 것 같아서 오지 말라 했어요. 연휴 시작 전에 우리가 올라가서 보고 왔다 아입미까.” 안 궁금했는데 왜 오늘 같은 명절 연휴에 안 오던 우리 집에 와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였다.


이모네는 아들 둘, 우리 집은 딸 둘. 두 아들들이 동생보다 다 아래다. 큰 사촌동생은 과학고와 과기대 조기 졸업한 수재로 이모네의 자랑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그 자랑스러운 아들이 중학교 교사 며느리를 만나 결혼했는데, 아이 엄마가 되고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단다. 그래서 그 친정엄마가 다 수발드는 식인데 이번에 올라가 보고 오니 난리도 아니더란다. 그래도 본인은 쿨한 시아버지라서 다 이해한다고 했다. ‘진짜 이해하시면 여기서 며느리 험담을 안 하셔야죠.’라는 말을 꿀꺽 삼켰다. 아들 자랑과 며느리 흉이 섞인 레퍼토리다. “이모부 손녀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사진 보니 엄마 닮아 이쁘던데요.” 손님 대접은 해야겠기에 싫은 티 팍팍 내 던 그 옛날 나 대신 이모부에게  접대성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무슨 소리고~ 완전 아빠 판박이 구만, 우리 영재 닮았다. 엄마 닮으면 못쓰게?” “결혼식 때 보니까 예쁘던데요, 날씬하고.” 이번에는 부엌 식탁에 엄마와 앉아 있던 이모가 거들었다. “그거 다 신부 화장발이다. 또 쌍꺼풀 한 거다. 비쩍 마르기만 했지, 영 파이다.” “아~~~~” 외모 비하까지... 이모 아들도 결혼식날 화장발, 머리발이었는데.... 더 이상 무슨 말로 반응을 해야 하나 하다가 그냥 술잔을 들었다. “이모부, 드시죠~” 나는 저녁식사 때 따 놓은 와인병을 이모부는 소주병을 각자 옆에 끼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모부의 며느리 흉보는 소리가 듣기 싫어질 때마다 술을 들이켜서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더 가져와야 했다. 두 번째 와인병까지 비워지자 나는 이모부 소주까지 마시고 있었다.


여기 남의 집 며느리들 밖에 없는 집에 와서 아들 자랑에 며느리 흉까지 봐야만 하는 저들의 심사가 뒤틀림도 돌봐야 했고, 친정에 앉아 내 시댁 식구들을 보고 있는 듯한 나도 돌봐야 해서 계속 술을 마시게 되었다. 술잔에 술이 계속 차고, 술병은 비어 가는 모양새에 엄마는 놀라 내 와인 병은 치워 버리셨다. 내 목소리가 한층 커졌을 때쯤 남편이 도착했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니 공기가 환기됨을 틈타 엄마와 이모가 서둘러 자리를 파하게 만들었다. 이모부는 아주 기분 좋게 돌아가셨고, 나는 양치질만 하고 방으로 들어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나는 원래 집에서는 과음을 하지 않는다. 술을 아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적당한 분위기와 사람이 좋다. 집에서는 보통 시원한 맥주 한 캔이면 충분하고, 가족과 외식을 하더라고 남편과 둘이서 소주 1병이면 충분하다. 그마저도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밖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 밖에서의 상황이라는 것이 대부분 회식인 경우가 많은데, 편한 지인들과의 회식인 경우에는 소주가 달게도 느껴진다. 20대 본격적으로 술을 배울 때부터 나에게는 즐거움이 아닌 생존의 문제인양 달려들었다. 체력이 안 되면 정신력은 저들보다 반드시 나아야 한다는 강박. 술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는 착각. 술로든지 뭐로든지 남자들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던 때였다. 다행히 타고나길 알코올에 민감한 체질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고3 대학가 주막에서 먹은 백일주로 알고 있었다.  20~30대 시절 나는 술자리에서 오히려 공격적이었다. 소주잔 7부는 정 없다며 찰랑찰랑 넘칠 듯 술을 따라주는 이들에게 잔 우기 무섭게 다시 잔을 채워주며 원샷을 했다. 보란 듯이 절대 나눠마시지 않았다. 나는 틈틈이 화장실로 가서 마신 술을 개워 내고 물로 입을 헹군 후 다시 들어가 또 그렇게 마셨다. 그들은 내가 취해서 흐트러진 모습을 결코 볼 수가 없었고, 내가 태워 보내는 택시에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술로도 이겨 먹어야 내 속이 편했던 시절이었다. 일로든 술로든 여자 핑계를 댈 수 없도록.


20대에 부리던 이 술 허세가 마흔에 갑자기 설 연휴 친정집에서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이모는 특히 큰아들 결혼시키고 나서부터 딸 하나 없는 게 정말 서럽다며 나를 볼 때마다 하소연을 한다. 서른이 넘어서 엄마 옆에 붙어 있는 딸 같은 둘째 아들이 있어도 아들은 아들이라며. 그래서 옛날부터 많은 조카들 중에 나에게 정말 많이 주었던 이모다. 덤덤하고 살가운 표현을 안 하는 친정엄마와는 사뭇 다른 유형의 사람인 이모는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는 할 수 없었던 시댁 흉을 대놓고 본 사람이다. 내 ‘시’ 쪽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모는 내 눈치가 보이는지 며느리를 대놓고 욕하지는 못했다. 기껏 “니처럼만 하면 좋겠는데, 니는 살림도 야무 딱지 게 알아서 잘하는 데 걔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친정엄마가 다~해주더라.” 나와 비교하는 식으로 흉을 본다. 이리 돌려 말해도 이쁜 손녀를 낳았어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아서 자신의 아들보다 한참이나 부족해 보이는 며느리가 못 마땅한 거다. 둘 다 일하는데 며느리가 잘 못하면 이모 아들이 하면 되는 건데 왜 항상 다른 방법에 대해서는 일체 이 없는지. 나에게는 내 시어머니가 못마땅한 모든 것에 내 탓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이모가 내 칭찬하며느리 흉보기나 이모부가 하는 내 아들만 잘났소나 다 거슬렸다.


그래서 술이나 마셨다. 나는 원래 집에서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이지만 지금 이 자리는 이모부를 술로 이겨야 하는 자리다. 나는 아빠를 대신해 우리 집을 대표하고 있었고, 며느리를 대표하고 있었다. 집에 아들이 없다고 손님 술 대작해 줄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었고, ‘그 흉보는 며느리가 여기도 있소.’라고 말하고도 싶었다. 결국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고 술만 마셨지만. 이모부는 내가 마주 앉아 이리 비장하게 술잔을 비우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겠지. 몰랐을 거다. 기분 좋게 술도 마시고, 음식도 얻어먹고, 손님 대접받다 웃으며 돌아간 이모 내외는 엄마, 아빠에게 연신 “부럽소.”라고 했다. 나와 내 동생이 지금 여기 친정집에 와 술잔을 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들에게 이기고 들어가는 게임인데, 뭐가 이리 혼자 심각했는지. 그 따위 술 먹는 걸로 말이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생수 2병을 들이켜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간 나는 어제 일을 모르는 척 엄마의 시선을 피하며 아침으로 식탁에 올라온 된장찌개 국물만 홀짝홀짝 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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