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UKGEE Oct 13. 2020

변화의 시작

이 글은 올해 3월 말 코로나 초기에 써 두었던 글입니다.

나는 요즘  별로 힘들지 않다. 정확히는 마음이 힘들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에 맞게 행동도 하고 있다. 아이들과 부모님 가족들의 건강도 심히 걱정이 된다.  안 그래도 월말 부부인데 남편은 상황이 좋지 않아 2달이 넘게 집에 오지 못하고 있다. 개학 연기로 긴 방학의 끝에 결국 온라인 개학을 하는 아이들을 일하는 엄마인 나 혼자서 케어하니 신경 써야 할 일도 더 많아졌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난리다. 어디도 안전하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대체 왜 나는 안 힘들다고 말하는 것일까? TV, 라디오 방송에도 온통 이 상황을 견뎌내고 있다고, 힘들다고, 힐링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강하지 않았다. 견딜만한 것인가, 안 힘든 것인가?


 굳이 비유하자면 풍이 왔을 때의 나와 비슷한 상태인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비바람에 천둥, 번개가 치면 집안에 있더라도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나는 그랬던 기억이 없다. 물론 그 위험성을 몸소 겪어 볼 일이 없이 안전한 집안에 있는 탓일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이불을 뒤집으 쓰거나 부모님 방으로 뛰어갔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나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뭔가가 벌어질 것 같이 하늘빛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왠지 설레었다. 번쩍거리는 번개에 내가 반응하는 듯하면 아빠는 내가 무서워할까 봐서였는지 줄곧 설명을 해주시곤 했다. 천둥과 번개는 같은 것이고, 빛과 소리의 속도차에 의하여 시간차로 우리에게 느껴진다고. 원리가 어쨌든 간에 번개가 더 환하고 화려할수록 천둥소리가 쩍 하며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클수록 나는 신이 났다.


보드게임에서 세우는 ‘말’은 바뀌지만 판은 변하지 않는다. 게임마다 여러 변수가 생기지만 그 게임판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게임을 하다 지겨워지면 게임판을 바꿀 수 없으니 아예 다른 보드게임으로 갈아탄다. 지금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 전 세계의 처한 상황이 게임 중에 보드판이 바뀌어버린 것 같았다. 평소 ‘코로나 19’ 전이라면 무엇하나 바꾸는 것이 정말 힘든  강력한 ‘관성’이 적용된 세상 속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불가항력적으로 모든 것들이 급변하고 있다. 나는 이런 ''이 아닌 ''이 바뀐 상황이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지만 한편으론 흥미롭고 기대된다. 오해할 수도 있겠다. 결코 코로나로 인한 피해와 희생과 같은 결과가 흥미롭다는 것이 아닌,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대표적인 상황이 ‘온라인 개학’이다. EBS 방송을 보는 보충 수업 형태가 아닌 전국의 모든 학교가 여러 방식으로 온라인 수업을 한다는 것은 IT강국-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우리나라이기에 단기간에 가능할 것이다. 물론 시행해 보면 미비한 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도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작되고 앞으로 보완되어 훨씬 효율적인 온라인 수업환경은 구축될 것이다. 그렇다면 추후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고 나서도 언제든지 다시 온라인 등교가 가능하다는 것. 아파서 학교에 나가지 못해도 집에서 수업을 듣고 졸업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아파서 병원에 있는 아이들이 학습을 하고 졸업을 위해 소아병동에 작은 학교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학년도 제각각 소수의 아이들을 위해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라면 병원에서 다니던 학교에 온라인으로 학습을 하고 출결을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이처럼 모든  상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같은 결과를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도 있고, 이번 재앙과 같은 코로나로 인해 생긴 상황이 의도치 않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천둥번개 치는 날을 좋아했던 나는 천둥과 번개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그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판을 뒤집을 수 없는 한낱 미물가 같은 어린 나에게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큰 변화에 기대감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안다. 한 발짝 물러난 상태로 판이 바뀌기만을 바란다는 것은 상당히 비겁한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단순히 세상의 변화에 무기력하게 나를 내맡기지 않는다. 새로운 판에서 나는 상황을 판단하고 어떻게 나아갈지를 고민하는 말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말들이 판을 바꿀 날도 곧  오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