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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Nov 02. 2022

구독자님들에게 바치는 글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정확히 말하면 옆동네다)



어느덧 올해의  10월도 다 지나갔다. 10월의 마지막 날 지나가는 비구름도 아쉬웠는지, 살포시 안개 낀 비를 내려주고 지나갔다. 이제  11월은 자연이 쉬기 위해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황홀했 자신을 버리고, 그 황홀함을 보존해 나가기 위해,  자신의 분신을 보이지 않는 작은 씨로 남기고 영원히 잠든 작은 자연들과,  많은 것을 내주고 탈진되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내년을 위해 긴 휴식기를 가지는  자연들이 조용히 자신의 숨터로 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세상은 그들이 돌아올 기다린다.

 


집 입구부터 펼쳐진 단풍들의 향연이 명산 입구부터 시작되는 단풍 부럽지 않다.


이곳에 살면서 이 가을의 사치를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고,  가을을 기다리는 일이 지겹지 않았다. 일 년 내내 같은 날씨의 건조하고 단순한 계절의 무료함이 삶조차도 의미 없이 만들었던 캘리포니아의 삶과는 대조되게 이곳에서는 창이 먼저 계절을 려주었다.


창을 해 보는 계절... 봄 여름 가을 이쁘지 않은 계절이 없지만,  그중에 가을은 백비중의 백미다. 창이란 창은 모조리 가을로 물든다. 자연이 선사하는 예술품이다. 창이 버스가 되고 자연이 물감이 되어 거대한  작품이 된다. 집안의 사방이 파노라마처럼 가을이 펼쳐진다. 화장실의 뚫려진 작은 창을 해서도 가을이 보인다. 이 호사스러움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다른 가을이 쳐진다.

뒷마당의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가을은,  마치 내가 아무도 모르는 숲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올해도 사람 마음을 황홀하게 쏙 빼놓고 지나간다.

이번 주에 내리는 비로 남아있던 가지들과 낙엽들이 떨어지면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겨울로 들어갈 채비를 하게 된다.



어느 순간 계절이 바뀌는 걸 눈치채게 되었다. 젊은 시절엔 시간에 쫓겨 계절이 바뀌는 것은 옷의 두께가 달라진다는 거 외엔 당연히 오고 당연히 가는 줄 알았다. 

이제는 절이 가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지금의 이 계절이 나의 마지막 계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쉽다. 나이가 들은 건가, 철이 들은 건가!

오늘도 나는 안간힘을 버티고 아직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피어있는  귀한 꽃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내년에도 너의 이쁜 자태를 감상할 수 있게 또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서리후에도 꼿꼿하게 피어있는 구절초와 핫립 세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지가 꽤 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내일이 마지막인 처럼 살지는 않는다. 여전히 죄를 짓고 여전히 탐욕스럽다. 그리고 여전히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사람은 가는 순간까지도 탐욕스러운 존재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 징그러운 탐욕과 욕심이 숨이 끊어져서야 비로소 멈출 수 있다는 걸 타인의 죽음으로 확인한다. 그 탐욕은 그들의 장례식에서 더 찬란하게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 또한 확인하고 돌아선다.


씁쓸하지만 이런 탐욕이 굴러다니고, 그 탐욕 속에 뒤엉켜 안타까운 희생이 보이는 것도 인생이다. 인생은 그렇게 굴러간다. 나의 탐욕과 나의 희생이 뒤엉켜 나의 인생 또한 그렇게 굴러간다. 그 탐욕을 멈출 수 있는 순간들이 찰나 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자연을 통해 작은 위로를 받고 사람을 통해 큰 위로를 받는다.


가을이라는 자연의 시간과 나의 인생의 시간도 지금 이 가을쯤에 와 있지 않을까! 돌아보는 시간을 주고, 준비하는 시간을 주는 이 가을에 멍한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이 글을 쓰고 나서  저의 글을 구독해 주시는 분이 300명이 넘어섰네요.


일 년이라는 시간을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글을 쓰지 못했어요. 글이란 게 참 이상해서 써질 땐,  개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글이 써지는가 하면,  한 줄의 문장도 써지지 않을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저는 그 시간 동안 오히려 구독자들이 꾸준히 제 글을 읽어 주셨더라고요. 처음부터 제가 정해둔 숫자에 불과하지만 300이라는 목표를 세웠었어요.


워낙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단지 내 인생을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는데,  작은 욕심들이 마구마구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 힘은 한 번씩 올라오는 댓글로 인해 더욱더 힘이 생겨나기 시작했답니다. 나의 볼품없는 글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는 구독자님들의 댓글은 정말이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뿌듯함을 저에게 선사했답니다.


제가 코비드 초기에 온 식구가 코비드에 걸려 아플 때, 제가 걱정이 되어 저의 브런치를 왔다 갔다 하셨다는 그레이스 강 님의 애정 어린 걱정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긴 휴식 끝에 올린 글이 올라가자마자,  달려온 바람마냥님과 젊은 글쟁이 학생 문필님 소중하고 고마운 글벗들입니다.


나의 글을 통해 나의 인생을 이해해 주시는 박정화 독자님 또한 감사드리고요


 작은 창에 비치는 계절의 변화들을 기록했던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사진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자신의 스케치에 옮겨 놓으셨다는 저의 구독자님 채은순 님께,  이 글을 통해 혹시나 또 다른 스케치가 될 수 있는 영감이 되길 위해 우리 동네와 옆동네의  가을을 담아 봤습니다.


그 외에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님들을 포함한 300명의 구독자님들에게도 감사하다는 글을 올립니다

이분들은  저에게 글을  써도 된다는 자부심입니다.

사실 저의 굴곡진 인생이 글감이고, 그 글감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답니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나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좋은 글감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 또한 감사해야 할 일이며,

인생의 쓸모없는 시간들은 없다는 걸  저는 글을 쓰면서 느낍니다.


구독자 한 분 한 분 감사하고 계속 좋은 인연으로 글을 통해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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