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seniya Oct 14. 2023

과부 될 뻔한 날

날이 가을가을 하다.

이렇듯 계절은 소리 없이 어느새 바뀌어 있다.

낮의 온도는 아직도 더위로 한 여름의 날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 한 나와 달리 , 자연은 새벽녘 쌀쌀해진 계절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대낮의  불볕더위에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잃지 않았던  바질 잎들이  누렇게 변해있었다.

봄에 정신없이 여기저기 뿌려 놓았던 꽃씨들이  사방에  피어나 메리골드니 백일홍 같은  여름과 가을을 아우르는 꽃들 덕에 동네 나비와 꿀벌들이  꽃을 찾아 우리 집 정원을 정신없이 싸돌아 다니고 있었다.



초가을 햇빛의 이 화로운 광경 속에 아찔했던 그날도 가을 햇살은 너무나도 눈이 부시게 평화로웠다.

꿀을 따느라 정신없는 궁둥이가 빵빵하게 뒤뚱거리며 꽃 속에 파묻혀 있는  호박벌을 보고 있자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작년 여름 이맘때가 생각났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던가!!!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 가고 있어도 꼼짝을 하지 않던 집안에서 백수 노릇을 하던 남편을 대신해 바쁘게 가장역할을 하던 내가  점심시간을 틈 타 그 짧은 시간에 집에 들르던 날이었다.

지나고 나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을까?

집안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남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몇 달째 방치되어 있던 차 또한 자리를 비운 것을 보니 차를 타고 나간 모양이었다.

짧은 휴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한 손은 목덜미를 부여잡은 채 연신 긁적거리고 있는 모양새가 가을 모기에 한방 쏘였는지 항상 있는 일이라 그다지 신경이 쓰지 않았다.

그러나, 자리에 앉자마자 남편의 안색이 아무래도 평상시와는 달라 보였다,

계속 목덜미를 긁적거리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그제야 말벌에 쏘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미 목덜미는 시뻘겋게 빨간 눈꽃이 피어나듯 온몸으로 번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찬물에 샤워를 해보면 간지러움이 가라앉을 것 같다고 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욕실에서  물 받는 소리가 들렸다.

목욕탕에 물 받는 소리와 함께 아무래도 이상해 병원에 연락을 했다. 급하게 진료 예약을 하고 병원을 가려고 서두르니 방안 욕실에서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가슴에도 무언가 이상하게 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은 일이 일어난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끊고 달려가 보니 옷도 입지 않은 채 건장한 남편이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정신은 아직 있는지 괞찮다고 말하며 다시 일어나려 애를 쓰지만, 몸은 무겁고 정신이 혼미한 지 말도 어눌하게 변하고 있었다.

온몸은 이미 벌의 독이 퍼져 새빨간 눈꽃이 온몸에 번져 있었다.

옷이라도 입고 병원에 가자고 일으켜 세우니 실성한 사람처럼 혀가 꼬이고 눈이 풀려 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생긴 일이라 나는 놀랍지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그저 멍하기만 하였다.


이 급한 상황에 남편은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미소를 짓는다.

내 이쁜 와이프...

아! 실성한 게 맞는구나.. 이 사람 실성을 한 게 맞는구나 그 와중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다니...

마지막 유언인가 싶기도 하고 죽을라고 마음이 변한 건가 싶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오만가지 감정이 오고 갔다,

정신을 차리라고 남편의 빰을 후려쳤다.

나를 보고 말없이 씩 웃더니 그 건장한 남자가 퉁 하고 쓰러진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지난 1년간 너무나도 내 속을 섞였던 남자!!! 그 1년이란 세월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나는 고통 속에서 남편을 원망하며 이혼이라는 단어를 무수히 머릿속에 새기고 살았다. 일 년을 집안에서 꼼작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서 내 속을 썩이고 움직이지도 않았던 남편.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개한테나 줘 버렸는지 잊고 싶었던 건지 모든 가정의 경제권을 나에게 맡겨놓고 손 하나 가딱하지 않고 그 1년이란 세월을 나를 고통 속에서 겨우 버티고 살아가게 했던 남편이었다.

너무나 미워서 잔소리조차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나의 감정은 이미 차가운 돌덩이 같이 굳어 있었던 시기였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둬야 하나..'


. 내 마음속의 악마가 고개를 쳐들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밉고도 가여운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십 년의 결혼 생활동안 끝없는 한숨 소리만 나오게 만들었던 나의 결혼이 이렇게 종지부를 찍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혼이란 그렇게 간단한 감정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남편이 사라지는 것이지만 , 아이들에게는 아빠라는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원망과 안쓰러움이 공존하는 감정이 교차했다.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흔들어 깨워  병원에 가자고 입다 만 옷을 입히는 순간,  남편의 의식은 점점 흐려져 가고 가고 있었다,

그제야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과부가 되는 건가?

문을 열고 뛰쳐  사방의 이웃집들의 문을 두드리며 미친년처럼 외쳤다.


 HELP!!!!! HELP!!!!


다행히도 주변의 이웃들이 다들 집안에 있었는지 옆집 오드리가 달려 나왔다.

맞은편 간호사인 할머니도 달려 나왔다.

이머전시라고 말을 하고 난 뒤, 이웃집 여자가 주소를 물어보았는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얼마나 소리를 질러 외쳐댔는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상황이 급하다는 걸 인지한 이웃이 자기 집 주소를 대신해서 엠블런스를 불렀다. 엠블런스가 오기 전에 방에 널브러져 있는 남편을 이웃들이 합세해서 밖으로 끌어냈다,

옆집 간호사 할머니는 나와 남편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 주었다,

다행히도 오 분 안에 큰 대형병원이 있어 십 분이  채 안 돼서 엠블란스와 소방차가 도착했다.

남편을 구급차에 태우자마자 응급처치를 했는지 의료요원이  남편에게 계속 말을 시키고 있었다.


소방관은 나에게 돌아올 때를 샌각해서 따라오지 말고 내 차로 병원엔 가라고  남편을 싣고 떠났다.

이 모든 상황이 불과 이 십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너무나 쉽게 벌침 한방에도 이렇게 무기력하게 갈 수 있구나!!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라 라이드를 해야 했지만, 옆집 오드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와 주기로 했다.




학교 스쿨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막내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향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해독제를 맞고 나서 정신이 돌아왔지만, 혹시 모를 2차  쇼크가 올 수 있어 간호사가 계속 남편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병원에 누워 아무렇지도 않게 햄버거를 먹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다른 날처럼 내가 일하는 곳에서 점심시간에 오지 않았다면...

남편이 쓰러진 와중에도 고민을 하던 나의 사악함..

한 순간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 새 까마득하게 잊고 배가 고파 햄버거를 맛나게 먹고 있는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생리현상 앞에

인간은 동물이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반나절의 악몽 같지 않은 악몽은 그렇게 지나갔다.


남편과 집에 돌아오고 난 후,

나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이 많은 꽃들을 없애야 하는 고민이 생긴 것이다.

만약 남편이 벌침 알레르기가 있는 걸 알고도 꽃을 심는다면 나는 잠재적인 살인자가 되는 것인가?

그러나 남편은 꽃을 계속 심으라고 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여전히 살아있고, 나의 정원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그날 남편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 했던 말들이 남편의 속내였는지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작가의 이전글 그리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