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반바퀴 더 바뀐 세월이 흘러서야 드디어 나는 내가 살던 나의 나라로 갈 결심을 했다.
사람은 바꿔 쓰지 않는다는 진리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난 후, 엄마는 바뀌지 않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다시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 나의 짐이 담긴 캐리어를 그대로 남긴 채 떠나온 지 약 15년 만의 일이다.
다행이라면 그때도 연로하셨던 부모님들이 아직도 살아계셔서 내가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숨을 쉬기도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나는, 공기와 같은 자연스러운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상황에 따라 숨을 쉬기 힘들어 공포스러운 상황에 닥치는 공황장애자다.
낯선 곳이나 불안이 엄습해 오면 당연한 숨조차 그 숨을 몰아쉬게 만들고 , 심할 때는 그 숨이 갑자기 멈춰질 수도 있다는 극도의 공포감을 가져다주는 무서운 두 얼굴의 주인공이다.
35년을 넘게 살았고 나의 부모님이 아직도 살고 있는 곳!
젊어서는 좁아터지고 희망 없어 보이는 한국이 답답하고 싫었다.
도망치듯 이곳만 아니면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의 나의 답답한 패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평범하지 못하게 흘러가는 삶을 대하며 마음이 답답하고 서럽게 그리운 나라가 되어 버렸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쓰라던 가요가 흘러나오던 시절도 아닌 만큼 옆집 동생이 아이들 방학만 되면 신나게 다녀올 수 있는 쉽게 갈 수 있는 내 나라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나아지지 않는 형편과 비행기를 탈 수 없는 병이 겹쳐 핑계 아닌 핑계로 그 그립고도 그리운 나의 고향을 15년이란 세월을 가 보지를 못했다.
이번에도 겉으로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방문하는 이유라고는 하지만 , 사실은 매일 아침마다 힘겹게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왼쪽 가슴의 원인 모를 통증으로 불안감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밤마다 쥐어짜듯 느껴지는 진통으로 인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갱년기에 접어든 나이인 만큼 세월의 흔적으로 치부하기엔 겁이 덜컥 났다.
살만큼 살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쉬운 나이...
아직도 눈에 밟히는 막내아들의 성장과정...
엄마를 바라보는 딸아이의 측은한 눈동자...
이쁘게 사랑을 하고 있는 큰 아들의 아직 소개받지 못한 어여쁘고 착한 여자친구...
아직까진 아니다. 그래서 큰 맘을 먹었다.
여전히 마음은 불안감과 공포심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변덕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갈 수 있을까?
너무 먼 거리라 가다가 비행기를 되돌려야 되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까?
실제로 아들 친구의 엄마는 공황장애인지 모르고 있다가 뉴욕행 비행기를 오르는 순간 공황 발작이 와서 비행기를 돌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지인도 그 이후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십 년이 넘는 시간을 한국을 가보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저런 고민으로 생각에 갈팡질팡 하고 있던 순간에
카카오톡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한국의 여고동창생인 친구의 연락이었다.
갑자기 내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카톡이 울렸다.
역시 한국에 있는 지인의 메시지다.
한국에 갈지도 모른다는 나의 메시지에 떨리는 음성이 전해져 온다.
들어오는 날짜만 이야기해 주면 시간을 비워서라도 마중을 나오겠단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어제 같은 마음들이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내겐 너무나 멋진 바로 그녀였다.
엄마는 하루라도 빨리 들어오라는 들뜬 목소리로 나의 결정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나의 아버지... 그 이름만 불러도 눈에 눈물이 고이는 나의 아버지.
사는데 지쳐 피부 한 번 가꾸지 못했을 딸을 위해 피부과를 알아놓았다는 구순이 넘은 아버지의 늙지 않은 세련된 배려
사랑하는 딸 때문에 정신을 놓지도 죽을 수도 없다는 아버지를 보러 가야 한다.
내가 한국을 가야 하는 결정적 이유다.
이제 비행기표를 끊을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