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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Feb 28. 2022

페페

2. 파동


아빠의 실망은 대단했다. 아, 너는 수영을 잘하는데, 아, 아쉽다. 이게 하필이면 왜 오늘. 그래. 앞으로 생리할 때만 빼고 물에 들어가면 되거든, 다른 언니들도 모두 그렇게 해 인마. 아빠는 수윤을 남자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 화장지를 돌돌 말아 흠뻑 젖은 다리와 수영복 사이로 밀어 넣었다. 잊고 싶었으나 잊히지 않았던 그 느낌은 나 오랫동안 지속이 됐다. 늘 나무를 깎느라 거칠 대로 거칠어진 아빠의 두꺼운 손이 자신의 아랫도리를 쑤시고 들어오던 기억.

주먹만큼 돌돌 말은 휴지 뭉텅이가 들어와 빡빡하게 피와 물을 흡수하던 순간.


수윤이 고등학생이 되어 머릿속에서 단어의 선택이 조금 자유로워졌을 무렵, 수치스러운 것이 만일 그날의 느낌이라면, 자신은 영원히 수치스러운 것을 경멸하겠다고 다짐했다. 열여덟의 소녀였던 수윤은 경멸의 뜻이 아주 자세하고 섬세하게 어떤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만일 상상으로라도 그 모양을 떠올릴 수만 있다면, 경멸이란 단어의 모양은 수영장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보던 코치의 눈과 얼굴을 닮았을 것만 같았다.


코치는 수윤을 경멸했고 아빠는 수윤을 수치스럽게 만들었고 수윤은 매달 생리를 할 때마다 끊임없이 자신을 매개로 하는 그 수치와 경멸의 끊어지지 않는 관계를 생각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진 듯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자신을 가운데에 놓고 마치 죽은 물고기를 서로의 책임으로 돌리며 가져가라는 시늉 대신 발로 차는 것 같았다. 아직 물고기가 숨이 붙어 있는 것 같았는데. 한 발에 비늘이 갈려 나갔고 한 발에 아가미가 터져 버렸다. 터져버린 내장에서 흘러나온 노란 액체와 빨간 피가 보였다. 초경을 했던 날 수윤 자신이 흘린 수영장 바닥의 피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수영장에서 나와 수윤은 고개를 저었다. 물을 저을 때 느꼈던 그 자유로움으로부터 이제 한 발자국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아빠와 코치가 서로 발로 찼던 물고기 한 마리가 떠올랐다. 누군가가 죽어버린 순간의 현장이 그런 느낌이었을까? 수윤은 마치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살인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입술이 새파래져 수윤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떨었다. 이대로 숨이 끊긴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5학년 소녀는 죽어가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열여덟이 되도록 숨이 붙어 있었다.


생리의 양이 많아지는 이틀 동안, 수윤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이 죽어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곧 내 온몸의 피가 다 스며 나와 침대가 흠뻑 젖어 피가 뚝뚝 떨어질 것이라고. 수윤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고작 침대 위에 얼룩진 한 방울의 핏자국이 전부였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침대 시트를 보며 수윤은 절망했다. 밤새 죽을 수 있었는데 또 살아있다는 것에.


수영을 그만둔 대신 수윤은 집 안 욕조에 물을 받고 오래도록 목욕을 했다. 생리하는 날엔 욕조가 핑크빛으로 물이 들었고 자궁에서 갓 떨어진 싱싱하고 연한 살덩어리들이 물 위를 둥둥 떠다녔지만, 누구도 자신을 내쫓을 사람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수윤 한번 씻으러 화장실을 들어가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나오지를 않았다. 아빠가 아무리 화장실 밖에서 수윤의 이름을 불러도, 문을 두드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수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수증기가 화장실 안에 가득 차고, 뽀얀 안개를 만들어 내 그 안에 갇히는 것을 수윤은 좋아했다. 그러나 아빠가 열쇠로 문을 열어버려 수증기가 윙 하고 밖으로 빠져나갈 때면 수윤은 자신의 몸에서도 무언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빠가 더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나가지 않을 텐데.


그러나 수윤을 나오게 하려는 아빠의 목소리가 만드는 파동은 대단했다. 아빠가 큰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화장실 공중에 떠 있던 수증기가 한꺼번에 떨리는 광경. 수윤은 입을 벌리고 화장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온 아빠와 수윤은 눈이 마주쳤다.

생선이 죽고 난 뒤의 눈을 본 적이 있는가? 아무것도 보지 않는 듯한 그 눈은 또 어떤 것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수윤은 아빠의 눈을 보고 죽은 생선의 눈을 떠올렸다. 엄마를 갑자기 잃어버린 아빠는 그렇게 죽은 눈에 사랑을 담아 수윤을 키웠다. 그래서 수윤은 아빠를 미워할 수가 없었고, 마음 편히 사랑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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