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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 Mar 07. 2022

페페

3. 대여기간


“대여 기간 연장해 주세요. 2주 더요.”   

  

그 남자가 도서관에 또 왔다. 수영장에서 보았던 남자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환장한 듯 버터플라이를 해대던 남자. 남자의 대여 목록은 주로 대하소설이었다. 수윤은 그가 대여했던 소설의 이름만 보아도 물 한 방울 스며들지 않았을 건조함이 느껴져 온 몸의 털이 살짝 일으켜졌다. 남자는 스무 권의 대하소설 시리즈를 지난 이 년 동안 일 권부터 이십 권까지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대여했다. 이번에도 그는 같은 책을 연장 신청한 것이었다. 수윤은 대답 없이 남자의 대여 카드로 2주 연장을 처리해 주었다. 그러나 남자는 일이 끝났는데도 가지 않고 씩 웃으며 수윤을 바라보다 말을 시켰다.     


“저번에, 수영장에서 봤던 분 같은데. 기소 수영장, 맞죠?”     

“아니요. 저 수영 못해요.”     


수윤은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책을 정리해 자리를 떴다. 남자는 잠시 서서 수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도서관을 나갔다.

퇴근 후 수윤은 수영장으로 갔다. 삼십 분 정도 몸을 정성스럽게 씻고 난 뒤, 수영장으로 들어가 입수를 했다. 자궁을 들어낸 이후로 수윤은 몸이 가벼워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만일, 생리를 시작하자마자 아빠가 자궁을 먼저 없애주었다면 더 좋았을걸. 그랬다면 아빠를 더 사랑했을 텐데. 하고 수윤은 생각했다. 소중했던 친구 서희의 사고가 있고 한 달이 지나,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을 때 수윤은 자신의 삶에 대한 마지막 희망으로 자궁을 없애보기로 했다.      


“자궁을 들어내고 싶어서요. 생리하는 게 너무 귀찮고 번거로워요.”     


의사는 수윤의 자궁 적출 수술을 반대했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30대의 젊은 여자가 자궁을 적출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고 수윤은 인터넷을 뒤져서 방법을 궁리했다. 그러다 어느 월경 반대자들의 카페에서 수윤은 방법을 찾았다.   

   

‘모계 쪽에 지독한 자궁암 병력이 있어서 자궁 적출하고 싶다고 할 것. 00시의 00 병원으로 찾아가서 말하면 어렵지 않게 해 줌.’     


수술 후 일주일의 입원으로 수윤은 자궁을 들어냈다. 회복기를 거쳐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던 날, 수윤은 너무 좋아 비명 지를 뻔했다. 서희를 잃고 처음으로 짓는 웃음이었다. 웃을 수 없는 얼굴로 입안에 웃음을 머금고 물속에 있는 순간은 몹시도 짜릿했다.



남편 성규를 만난 것은 수영장에서였다. 새벽 수영반에서 같은 라인의 회원이었던 그는 수윤에게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 아침이면 집 앞으로 차를 가지고 와 수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함께 수영을 마치고 도서관에 수윤을 내려주고 퇴근 무렵이면 또 함께 수영을 마치고 밥을 먹었다. 그 무렵엔 수영도 지금처럼, 맹목적으로 목숨을 내 하지는 않았다. 새벽과 오후 두 타임을 하긴 했지만, 그냥 수영을 정말 좋아하는 정도라고 생각할만했다. 굳이 수영하지 않아도 집에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얼마든지 물을 묻힐 수가 있었다. 수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연애할 때만큼은 수윤도 수영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모텔에 들러 섹스를 마치면 성규가 타월에 따뜻한 물을 적셔와 수윤의 몸을 정성껏 닦아주었다. 굳이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도 촉촉한 수건이 몸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기분이 산뜻해진 수윤 성규에게 물었다.

     

“내가 왜 좋아? 자궁도 없애버린 나한테 왜 잘해줘?”     


성규는 대답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여자가 너였고 처음으로 끝까지 같이 하고 싶은 여자가 너야. 네가 수영을 하는 것도 좋고 자궁이 없어도 좋아.”     


평생 수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남자라니. 마음에 들었다.     


“나 결혼하려고.”     


수윤이 아빠에게 결혼을 말하던 날, 아빠는 일어나 말없이 물을 마셨다. 한 컵, 두 컵, 새 컵. 셀 수없이 많은 물을 마신 아빠가 오래된 본드에 붙어버린 것을 떼 내듯 입술을 열어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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