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이란 세상 속에서 유영하기
유유히 그리고 즐겁게
지인에게 디즈니랜드 스노볼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두어 번 이사를 하면서 잃어버려 유리구슬 안에 디즈니 성과 함께 공주들도 있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눈송이 대신 반짝이가 꽤 많이 들어있어서 흔들 때마다 엄청 화려했던 건 또렷이 기억난다.
가끔 아무 생각 없고 싶을 때면 스노볼을 뒤집었다 세워놓고 반짝이들이 우아하게 오르내리는 걸 바라보곤 했다. 반짝이들은 언젠가 가라앉을 걸 알면서 그렇게 잠깐 떠오르는 것이 자신의 일인걸 아는 것처럼 유영했다.
스노볼에서는 떠다니는 어떤 것들이 주인공이다. 공주든 화려한 성이든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는 그것들 앞에서는 그저 배경일뿐이었다.
지금 스노볼을 보고 있는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보고 있는 그 유리구슬 안에는 아주 작은 내가 있다. 마치 축소판 ‘트루먼쇼’ 같은 느낌이다.
스노볼 안에 있는 나는 아마 그 속에서 행복하고, 걱정하고, 좌절하고, 무언가를 포기하고 또 도전할 것이다. 스노볼 밖에 있는 나는 그런 나를 잘 지켜보다가 적당한 때가 오면 한번씩 흔들어 준다. 그건 ‘고생했으니 좀 쉬어’, ‘그만하면 됐어, 도망가’, ‘조금만 쉬다가 다시 해보자’의 의미일 것이다.
항상 가라앉아 있기만 하면 그건 스노볼이 아니다. 스노볼은 원래 흔들어보는 재미 아닌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해 흔들리더라도 그때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이리저리 떠다니면 되는 거다. 그게 스노볼의 역할이니까.
어렵지만 우리는 가까이서 보기와 멀리서 보기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스노볼 안에 있는 나와 스노볼을 지켜보는 나 사이의 간극을 적절히 이용하자는 말이다.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가장 깊숙이 이해하는 동시에 가장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세상에서 유일하고 특별한 나와 한낱 우주먼지로서의 나를 적당히 밀고 당기며 앞으로도 즐거운 인생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