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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r 19. 2024

광수는 왜 슬플까?

학력과 직업,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공허에 대하여

어벤져스에서 가장 약한 캐릭터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아이언맨의 하위 호환인 팔콘? 여성 특수요원 출신의 블랙 위도우? 헐크나 캡틴 아메리카가 보스급 빌런들과 싸울 때 활 쏘면서 잡몹들이나 처리하고 있는 호크 아이?


나는 아이언맨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아이언맨이 약체라고? 아이언맨이라면 헐크, 토르 등과 더불어 에이스급 캐릭터가 아닌가?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재력과 기술력을 총동원한 최첨단 수트를 입고 막강한 화력으로 빌런들을 몰살시키는 아이언맨이 어떻게 호크 아이나 팔콘 같은 쩌리 캐릭터들보다 약체일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언맨은 아이템빨이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그의 강함은 토니 스타크라는 인간 자체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다. 아이언맨이 강한 건 토니 스타크가 헐크와 같은 괴력을 가졌거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마법을 쓸 수 있어서가 아니다. 수트가 좋아서다. 수트를 벗고 싸운다면 그는 어벤저스는 커녕 동네 불량배 하나를 처리하기도 버거울 것이다.




나는 솔로 19기 모태 솔로 특집에서 광수(1985년생, 중소기업 관련 연구원)는 영숙(1989년생, 학원 강사)을 택했다. 영철(1987년생, 식품회사 생산직)도 영숙을 택해서 2 대 1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광수는 데이트하는 내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영숙이 영철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자기는 뒤로 물러나겠다며 데이트 하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영숙이 먼저 질문을 던져도 단답으로 일관했다.

나는 솔로 19기 광수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제작진과 인터뷰를 하는데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는지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정도가 아니라 대성통곡을 했다. 영숙이 그에게 해주었던 따뜻한 위로 때문이었다. 광수는 그 동안 자신이 너무나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설 때면 늘 가면을 썼다.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니라 남들 보기에 그럴싸해보이는 모습을 연기해온 것이다. 그런데 영숙은 그게 가면이 아니라 광수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고 했다. 자기 소개를 할 때 그랬던 것처럼 자기의 진짜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좋아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가족들이나 그를 오랫동안 봐온 친구들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봐주지 않았던 자기의 진짜 모습을 불과 만난지 며칠 밖에 되지 않은 영숙이라는 여자가 알아봐준 것이다. 그래서 광수는 감동을 받았고, 눈물까지 흘렸다.


시청자들은 의아해했다. 광수가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스스로를 깎아내리냐는 것이다. 광수는 서강대를 졸업했고, 고려대 법학과 박사 과정까지 수료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소기업 관련 연구 기관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전형적인 인텔리다. 특출나게 키가 크거나 잘생기진 않았지만 특별히 키가 작지도, 못생기지도 않았다. 인품 또한 훌륭하다. 방송에서는 지나치게 걱정이 많고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질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 역시 그가 순수하고 여리고 착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약삭 빠르고, 이기적인, 진짜 나쁜 사람들은 남들 눈에 자기가 어떻게 비칠지, 자기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안한다. 엠씨인 데프콘이 말하길 제작진들도 광수처럼 착한 사람을 적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광수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걸까?




광수의 장점들은, 광수라는 인간에게 온전히 귀속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광수는 결혼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은 외모나 체격, 공격성 같은 남자의 원초적 매력보다는 안정된 직장과 경제력 같은 것들을 더 따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광수는 원초적 남성성은 부족할지 모르나 남편이나 생계 부양자로서의 자질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수가 원하는 게 그걸까? 광수의 학벌과 직업, 연봉. 그리고 그걸로 누릴 수 있는 안락한 생활. 그런 것들을 보고 광수와 결혼한 여자가 언젠가 광수가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사고를 당해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하게 되더라도 광수 곁에 남아있을까? 광수보다 더 학벌 좋고 돈 많은 남자가 나타나더라도 광수의 옆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https://youtu.be/yCtitfFiTyc?si=U-B7UwjEldLbUqZH


"10분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라는 말만 믿고 열심히 공부하고 모아온 남자들의 말로란 결국 이런 것이다. 학력이나 직업, 돈으로 얻어낼 수 있는 여자의 마음은 결국 그 직업이나 돈을 잃으면, 혹은 더 잘난 놈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떠나가버릴 모래성 같은 것이다.


저토록 열심히 살아온, 그리고 그 노력을 통해 괄목할 성과를 얻어온 광수가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명문대 박사 학위, 연구원이라는 명망 있는 직업으로 중무장했지만 정작 광수가 원하는 건 그가 고려대 박사가 아니라도 그를 사랑해줄 사람이기 때문에, 박사 학위나 연구원 직함은 그가 스스로에 대해 프라이드를 갖게 하는데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수트를 입었을 때의 아이언맨은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지만 수트를 벗은 토니 스타크는 그냥 일반인에 불과하듯이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받아야 한다. 사실 광수의 학력이나 직업과 광수라는 인간 자체의 관계는 아이언맨 수트와 토니 스타크의 관계처럼 딱 떨어지는 건 아니다. 토니 스타크는 수트만 입으면 아이언맨이 될 수 있다. 똑같은 수트를 나한테 주면 나도 아이언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학력이나 직업은 그런 게 아니다. 오랜 시간 노력해야 얻어낼 수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광수의 학력과 직업은 껍데기가 아니다. 광수의 근면성실함과 지적 능력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걸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광수의 학력과 직업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걸 얻어내기 위해 인내하고 노력했던 광수라는 인간을 온전히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 광수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아, 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이 사람이라면 내가 가진 걸 잃어도 날 버리지 않겠구나."




그런데 문제는 여자는 스스로를 확신하지 못하는 남자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다.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여자의 뒷수발을 들어서라도 짝짓기를 하고 싶어할 만큼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자존감이 낮고, 우울한 성향을 갖고 있는 건 짝을 만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자들은 기꺼이 그녀들의 구원자가 되어줄 의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남자는 다르다. 여자들은 미완성의 남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완성된 남자가 아니면 굳이 안 만난다. 완성된 남자의 세컨드가 되거나, 아니면 차라리 혼자 지내길 택한다. 그래서 불안정한 성향을 지닌 남자는 구원받지 못한다. 자기의 마음 속에 휑하니 뚫린 구멍을 채워줄 짝을 찾지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거절과 모멸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 구멍은 점점 커진다.


그래서 광수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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