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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y 20. 2023

나는 솔로 14기, 광수는 호구인가?

전 출연자가 본 나는 솔로 14기


요즘 유튜브를 열심히 하고 있다. 주된 콘텐츠는 나는 솔로 리뷰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지만 구독자가 적은 상황에서 최대한 조회수를 높이고, 구독자를 확보해보기로 했다.


나는 솔로 리뷰 콘텐츠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경쟁(?) 채널들 모니터링도 하게 되는데, 항상 비슷하게 나오는 패턴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최선을 다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노력해봐야 호구될 뿐이다, 하는 식의 냉소적인 태도다. 지난 13기에서는 영식(37세, 역도선수)이, 이번 기수에서는 광수(42세, 공인노무사)가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 13기 영식은 영숙(34세, 약사)의 마음을 얻기 위해 꽃다발도 선물하고 손편지도 써줬지만 영숙은 시종일관 다른 남자들 사이에서 간을 보는 스탠스로 일관했고, 결국 두 사람은 최종 선택은 했지만 방송 이후까지 관계를 이어나가지는 못했다.(촬영 끝나고 1주일 내로 헤어지지 않았을지 짐작해본다.)


그리고 이번 주 방송분, 14기에서 광수는 영숙에게 방한부츠를 선물해줬다. 평창까지 퀵 서비스까지 써가며 어렵게 공수해온 선물이었다. 그리고 어렵게 따낸 슈퍼데이트권도 그녀를 위해 썼다. 하지만 영숙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광수에게는 관심없다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나에게 궁금한 거 없냐는 광수의 말에조차 "상철님은..." 하며 자기가 관심있는 다른 남자 이야기로 대꾸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리뷰 유튜버들은 광수를 비웃었다. 내게 마음이 없는 여자에게 돈 쓰고 시간 써봤자 이용만 당한다는 것이다. 광수는 영숙에게 비싼 돈 써가며 방한부츠까지 선물해줬지만 영숙은 자기가 이 정도로 인기있는 여자라며 자랑할 생각밖엔 안 하고 있을 거다, 마흔 살이 넘었으면 돈 많은 호구들에게 명품 부츠 선물도 많이 받아봤을테니 이런 싸구려 부츠 따위는 촬영 끝나자마자 의류수거함에 버렸을 거다, 하는 말들을 했다.


맞는 말이긴 하다. 여자들은 흔히 자기한테 잘해주면 마음이 움직인다, 내게 헌신하는 착한 남자가 좋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저 말에는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날 기회를 포기하고 올인해도 될 만큼 잘 생기고 키 크고 능력있고 센스 있는 남자"라는 전제가 붙는다.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남자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남자의 호의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게 여자라는 존재다.


그런데 광수가 그걸 몰랐을까? 광수는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다. 1년 만에 노무사 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머리가 좋고, 상황 판단도 빠르다. 데이트 이후에 했던 인터뷰에서도 영숙이 자기한테 관심이 없을 거라는 걸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고 했다. 중간 중간에 하는 말들을 들어봐도 순발력과 재치가 나쁘지 않다. 결코 눈치 없고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광수가 왜 호구가 되길 자처했을까?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본인도 알기 때문이다. 자기한테 호감을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면 굳이 광수도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영숙의 마음을 돌리기위해 썼던 돈과 시간, 데이트 기회를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에게 썼을 것이다. 그랬으면 커플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이다. 방송에도 더 그럴싸한 이미지로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없었다. 그는 첫인상 선택에서도, 데이트 선택에서도 0표를 받았다.


광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영숙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분투하거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물론 여기가 사회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걸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시간에 다른 취미 활동을 하던지, 돈을 벌던지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솔로 나라다. 전 국민에게 품평당할 걸 각오해가며, 직장에 5일씩 연차를 써가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드러누워야 하겠는가? 그렇게 했더라면 저 리뷰 유튜버들이 역시 광수는 눈치와 센스가 남다르다, 자기한테 마음 없는 여자에게 호구짓하느니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진짜 쿨하고 남자다운 거다, 하며 칭찬해줬을까?


이건 광수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다 이렇다. 여자들이 먼저 관심을 가질만한 남자라는 건 극소수다. 정말 잘 생겼거나, 정말 체격과 스타일, 비율이 좋거나, 정말 돈이 많거나, 정말 웃기거나, 뭐라도 있어야 한다. 내가 출연했던 나는 솔로 4기에서도 훤칠한 키와 비율을 가진 영식(초등교사) 외에는 다들 찬밥신세였다.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여기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분투해야 하는 게 남자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꽁무니에서 불빛을 반짝거리며 구애의 춤을 추는 개똥벌레도, 뿔을 부딪히며 싸우는 사슴도, 교미를 하고 파트너에게 잡혀 먹히는 것도, 다 수컷이다. 호구짓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방한부츠 값 버린 셈칠 정도로 돈이 있어야 하고, 시청자들 앞에서 손가락질 당할 걸 감수할 정도로 배포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짓이다. 그것도 못하면서 비웃기나 하는 놈들보다는 호구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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