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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May 09. 2024

6기 미군 영수는 여미새인가?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느끼는 질투심에 대하여

나솔사계 초반부, 6기 미군 영수는 여자 출연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6기 방송 출연 당시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여자, 옥순만 바라봤던 진정성에 여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런데 촬영장에서 마주한 영수의 모습은 기대와 달랐다. 15기 현숙과 17기 영숙 두 명의 여자에게 선택받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보여주지 않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였다. 특히 지난주, 17기 영숙을 선택해서 데이트를 하러 가는 도중, 15기 현숙에게 인스타 DM을 보내는 장면에서 민심은 나락을 찍었다. 여미새다, 가볍고 진정성 없다, 하는 악플이 줄을 이었다. 어느 쪽일까? 6기에 나왔던 순정남, 나솔사계에 나오는 바람둥이. 뭐가 영수의 진짜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도 모른다. 나는 6기 영수를 모른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사석에서 같이 식사를 하거나 말을 섞은 적은 없다. 그래서 그가 정말 여미새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설령 안다고 해도 방송에 공개되지 않은 남의 사생활을 이런 공개적인 플랫폼에서 떠벌리진 않을 거다. 나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그래서 이건 영수에 대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에 대한 글이다. 우리는 왜 6기 영수가 여미새일 거라고 쉽게 단정짓는지에 대한 글이다.




화냥년이라는 말이 있다. 환향녀. 고향으로 귀환한 여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욕으로 쓰인다. 아무 남자에게나 몸과 마음을 허락하는 지조 없고 헤픈 여자를 가리켜 흔히 화냥년이라고 부른다.


이 말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병자호란 때 조선은 청나라에 패했다. 임금이었던 인조가 직접 청나라 황제 앞에 나가 삼궤구고두례를 했다.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국가적 굴욕이었다. 하지만 청나라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여자들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부터 평민, 계집종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자들이 청나라에 끌려갔다. 그들 중 일부는 긴 여정길에 낙오되어 죽었고, 일부는 청나라에 정착했다. 그리고 일부는 조선으로 돌아왔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하기도 했고, 지체 높은 집 여자들은 몸값을 주고 풀려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환향녀, 화냥년이 되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그게 여자들의 잘못인가? 병자호란은 남자들끼리의 일이었다. 조선에 침략한 청나라 군인들도, 청나라 황제 앞에 무릎을 꿇은 조선 임금도, 모두 남자였다. 여자들은 그저 희생양일 뿐이었다. 자기들이 청나라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었다. 조선이 청나라에 졌으니까 공물처럼, 가축처럼 끌려갔을 뿐이다. 물론 죽음을 택함으로써 절개를 지킬 수는 있었다. 실제로 환향녀들이 제일 많이 들은 욕이 그거였다. 몸을 더럽힌 주제에 감히 낯짝 두껍게 살아돌아온 년. 그런데 그렇게 말한 놈들 중에 진짜로 절개를 지키기 위해 죽을 수 있는 놈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럴 깡다구가 있었다면 인조 임금이 청나라 황제 앞에서 고개 숙일 때 청나라 황제한테 돌맹이 하나라도 던졌어야지. 그런데 왜 여자들을 욕하는가? 환향녀라는 말은 왜 욕이 되었는가?


남자들이 찌질해서 그렇다. 당시 청나라는 강대국이었다. 조선보다 훨씬 강력한 군대와 풍족한 물자, 그리고 신식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청나라에 거역하는 건 자살행위였을 것이다. 청나라가 여자를 내놓으라면 조선 남자들은 내놓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탓할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으로 여겨온 사회에서 우리 남자들이 힘이 없어서 너희 여자들을 만리타국에 볼모로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여자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남자들은 쉬운 길을 택한다. 약자인 여자들을 탓하는 것. 청나라가 너무 세서도 아니고, 우리가 너무 약해서도 아니고, 여자들이 헤프고 지조 없어서 지아비를 버리고 청나라로 가버렸다고 믿어버리는 것.


옛날에만 그랬던 게 아니다. 1960년대엔 양공주라는 말이 있었다. 미군 부대 앞에서 몸을 팔던 여자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양공주, 양공주 거리던 남자들은 그녀들이 벌어온 돈으로 밥을 먹고, 집세를 내고, 옷을 사 입었다. 여자를 먹여살릴 능력도, 우리 나라 여자들을 왜 건드리냐며 미군과 맞짱뜰 용기도 없어서 애꿎은 여자들을 탓했다.




다시 6기 영수로 돌아와보자. 6기 영수는 왜 여자에게 인기가 많을까? 물론 그는 매력적인 남자다. 외모도 훤칠하고, 말투도 젠틀하다. 군인답게,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균형잡힌 몸매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미국인이라는 그의 신분은 그의 인기에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않았을까? 그가 주한미군이 아니라 한국에서 사관학교를 나온 "군바리"였어도 여자들이 이 정도 관심을 가졌을까? 아닐 것이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자 선진국인 미국에 대한 선망, 미국시민권, 우리가 초중고 12년을 몽땅 갈아넣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영어를 우리말처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것. 이런 것들은 영수에게 아우라를 불어넣었을 것이다. 왠지 있어보이는, 캡틴 아메리카처럼 평소에는 다정다감하면서도 내 여자를 지키기 위해선 야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아우라. 여자들은 분명 영수라는 인간 자체를 좋아했지만, 어느 정도는 영수의 '미국 간지'에 이끌린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여자들이 아니라 미군 영수를 탓하는 걸까? 병자호란 때 여자들은 강제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60년대 양공주들은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지촌 미군들과 어울렸다. 그런데도 그녀들은 화냥년이네, 양공주네 하며 욕을 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강제성이 없다. 여자들이 영수가 좋다며 선택한 거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영수더러 여미새라고 하는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인들에게는, 기지촌 미군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했던 주제에 세계 최강 미 육군의 소령인 영수는 왜 그렇게 만만하게들 생각하는 걸까? 


그건 영수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은 한국인과 다르게 생겼다. 키도 더 크고, 어깨도 넓고, 팔뚝도 두껍고, 고추도 더 크다. 그리고 영어를 쓴다. 우리가 평생 배워왔으면서 막상 한 마디 해보라고 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그 말을 쓴다. 그래서 만만치 않아 보인다. 시비가 붙었다가는 1분 내로 강냉이가 털려버릴 것만 같다. 아마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인들에게서도 그런 위압감이 풍겼을 것이다. 그런데 영수는 다르다. 사회적으로는 미국인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한국인이다. 우리 같은 외모에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체격을 가졌다. 그리고 한국말을 쓴다. 물론 영어도 잘하겠지만 적어도 이 방송에서는 한국어로 말한다. 그래서 왠지 해볼만해 보인다. 만약 영수가 밥샙처럼 2m에 150kg나가는, 3대 700정도 치는 근육 돼지였더라도 그를 여미새라 할 수 있었을까?




6기 영수가 여자들한테 인기 많은 걸 볼 때 왠지 배가 아프고 아니꼽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질투라는 감정은 무엇일까. 내가 누렸어야 마땅한 걸 그만한 자격을 갖지 못한 누군가가 누리는 걸 볼 때 느끼는 감정이다. 상대방이 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아무리 많은 걸 누린다해도 우리는 질투심을 느끼지 않는다. 지드래곤이나 차은우가 여자한테 인기가 많다고, 이재용이 돈이 많다고 질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옆자리 대리나 과장이 비트코인이 떡상해서 몇 억을 벌었다고 하면, 나보다 키 작고 못생긴 것 같은 친구가 여자들 후리는 걸 보면 질투가 난다. 6기 영수도 마찬가지다. 미국인 같이 안 생겼는데 미국인처럼 구니까, 여자들이 거기에 이끌리니까 왠지 재수없어 보이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보자. 요즘 한국 남자들 사이에서는 국결이 이슈다. 한국 여자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할 바에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생활 수준이 낮은 동남아 여자들과 결혼을 하자는 것이다. 이 전략은 꽤나 유효하다. 젊은 여자들이 없는 농촌에 살거나, 여자를 대하는 게 서툴러서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남자들이 국결로 예쁘고 어린 여자들을 만나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꽤나 흔히 들을 수 있다. 여기엔 분명 한국인이라는 신분이 작용했을 것이다. 동남아 남자들보다 큰 체격, 높은 생활 수준, K-드라마의 인기. 그런 게 없었더라면 20대 초반 여자들이 40대 노총각들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남아 남자들이 딱히 한국 남자들을 질투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만만치 않아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인을 볼 때 그렇게 느끼듯이 말이다.


그런데 만약, 공장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 3세가 그 동안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아둔 돈으로 고국에 돌아가서 비싼 차를 타고 비싼 술을 마시며 여자들을 후리고 다닌다면 그 나라 남자들이 보기에 얼마나 아니꼬워 보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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