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 부부네 집에 놀러갔다. 두 사람 모두 나와 친한 사이였고, 둘 사이에는 아기가 태어나 있었다. 5개월이었다. 같이 어울리던 몇몇 친구들도 모였다.
그런데 아기 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 친구도 있었고, 나랑 제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 중에 아기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통통한 손발이 꼼지락 거리는 걸 보는 것도 재밌었고, 딴 데 쳐다보다가 얼굴을 휙 돌리며 "까꿍!"하면 꺄르르 웃는 걸 보는 것도 재밌었고, 아기가 버둥거리다 내 얼굴을 만지는 것도 재밌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지난 추억을 돌이키는 것도, 근황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질 정도였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을까. 말도 못하고, 코인 노래방도 못 가고, 풋살장도 못 가는,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제 자리에 누워서 손발을 버둥거리고, 침을 흘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칭얼대는 것밖에 없는 이 작은 생명은 어떻게 우리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어른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다. 매일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나는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한다. ㅇㅇ제약의 영업사원으로서 고객인 의사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에게 신뢰를 얻고 우리 약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내가 만나는 원장님들 중에서는 좋은 분들이 많다. 동년배였더라면,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형, 동생하면서 지냈을지 모를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진짜로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의 기억 속에 그저 영업사원1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기억되려, 일 얘기만 하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그들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를 신경써야 한다. 매일 같이 달고 사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장염, 역류성 식도염은 아마도 거기서 오는 걸 거다.
물론 내게는 친구들이 있다. 연애가 너무 어렵다, 직장 생활이 힘들다 하는 나의 징징거림을 묵묵히 받아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다. 내 고민에 공감해주고, 함께 걱정해주고, 때로는 조언을 해주는 그들로부터 나는 많은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그런 그들 역시 사회인이다. 나처럼 그들도 지쳐있다. 근심과 피곤에 찌들어있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목소리 톤이 낮아졌고, 심장 박동수가 줄었고, 웃음이 줄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고민을 나누는 거지 고민을 없애주는 건 아니다.
애인이나 아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좋을 거다. 그들의 작은 행동 하나, 몸짓 하나가 우리를 설레고 들뜨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을 거다. 낭만의 시대는 잠시뿐,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과금 걱정, 대출 이자 걱정을 해야 하는 경제 공동체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 와중에도 행복한 순간들은 있겠지만, 그 행복은 그 전의 행복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안정감이나 신뢰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연애 초반에만 느낄 수 있는 도파민의 향연을 다시 겪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속아본 적도, 상처를 받아본 적도 없는 존재. 그래서 누군가에게 편견을 갖거나 누군가를 의심할 줄도 모르는 존재.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보며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존재. 그런 그들을 볼 때 우리는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속세에 찌들어버린 지금도 마음 한켠으로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수십 년도 더 전에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진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한 순간의 행복을 위해 부모는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그냥 딩크로 사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아이만 없다면, 내가 벌어서 내 한 몸 건사하는 것 쯤은 별로 어렵지도 않을 거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행복할까. 아이를 키울 돈으로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비싼 옷을 입으면, 해외 여행을 가면 그게 행복일까? 고급 호텔에서의 하룻밤이나 외제차는 나를 "진짜로" 웃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 예전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낳는 게 아니니까, 낳아줄 사람인 아내의 의견이 제일 중요할 거라 생각했다. 아내가 안 낳겠다고 한다면 나도 쉽게 단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꼭 아이를 낳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여자를 아이낳는 기계로 격하시키는 여성혐오적이며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은 다르다. 적어도 나는 낳고 싶다. 내가 낳고 싶다고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현실, 아내의 건강상태나 직장생활에 대한 의지 등 다양한 걸 고려해야겠지만 절충과 타협도 일단은 내 입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다. 같은 생각을 가진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도 내 가진 걸 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아 이 작은 행복을 지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