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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Jul 01. 2024

솔직함은 미덕인가?

남에게 솔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신까지 속여선 안 된다.

"좀 말이 거칠어도 이해해. 나는 원래 빈 말은 못하는 성격이라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나는 관심 없는 놈한텐 싫은 소리도 안해."

"알지? 앞에서는 이렇게 해도 뒤 끝은 없는 거."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을 경멸해왔다.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대체로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과 무심함을 쿨함이나 솔직함으로 포장하는 부류들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거칠어도 이해하라고? 그런데 그 거친 말은 왜 너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만 나오는 거지?"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나는 잘 되게 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뒤 끝은 없다고? 맞은 놈이 괜찮아야지 때린 놈이 지 스스로 뒤 끝 없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정말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나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만 곁에 둘 것인가?"

"어디까지가 솔직함이고 어디부터가 무례함인 거지?"




그런데 최근 이에 대해 잠정적 결론을 내리는데 성공했다. 남에게는 꼭 솔직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꼭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순사에게 붙잡혔을 때 꼭 나는 대한의 자주 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사라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면 조국을 배신하는 걸까? 회식자리에서 48세 먹은 김부장이 32세 먹은 이대리랑 자기 중에 누가 젊어보이냐고 물을 때, 김부장이 이대리님 아버지 같다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그냥 김부장님 비위 맞춰드리면 안 되는 걸까?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때 꼭 네가 질렸다고, 너 매력없다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요즘 취업준비하느라 너무 바빠서 연애할 여력이 없다고 대충 둘러대면 안 되는 걸까?


된다.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쳐도 되고, 김부장님 오늘따라 20년은 젊어보인다며 딸랑딸랑해도 되고, 헤어지기 위한 적당한 구실을 찾아내도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한다고 하는 건 정직한 게 아니다. 눈치가 없고 사회성과 융통성이 떨어지는 거다.


다만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야 한다.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 친일파인 척을 하더라도 속으로는 자신이 독립운동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여자 친구에게는 상처주지 않기 위한 적당한 구실을 둘러대더라도 스스로는 헤어짐의 이유가 뭔지를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여자 친구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었다면 다음번에는 그런 단점이 없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돈이 없어서 결혼을 추진하지 못하는 거라면 돈을 열심히 모아야 한다. 그 이유를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 혼자 만들어낸 착한 사람이라는 가짜 이미지로 자신을 보호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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