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솔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신까지 속여선 안 된다.
"좀 말이 거칠어도 이해해. 나는 원래 빈 말은 못하는 성격이라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나는 관심 없는 놈한텐 싫은 소리도 안해."
"알지? 앞에서는 이렇게 해도 뒤 끝은 없는 거."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을 경멸해왔다.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대체로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과 무심함을 쿨함이나 솔직함으로 포장하는 부류들이었기 때문이다.
"말이 거칠어도 이해하라고? 그런데 그 거친 말은 왜 너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만 나오는 거지?"
"나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고? 나는 잘 되게 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뒤 끝은 없다고? 맞은 놈이 괜찮아야지 때린 놈이 지 스스로 뒤 끝 없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정말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나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만 곁에 둘 것인가?"
"어디까지가 솔직함이고 어디부터가 무례함인 거지?"
그런데 최근 이에 대해 잠정적 결론을 내리는데 성공했다. 남에게는 꼭 솔직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꼭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본 순사에게 붙잡혔을 때 꼭 나는 대한의 자주 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사라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면 조국을 배신하는 걸까? 회식자리에서 48세 먹은 김부장이 32세 먹은 이대리랑 자기 중에 누가 더 젊어보이냐고 물을 때, 꼭 김부장이 이대리님 아버지 같다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그냥 김부장님 비위 맞춰드리면 안 되는 걸까?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때 꼭 네가 질렸다고, 너 매력없다고 솔직히 말해야 할까? 요즘 취업준비하느라 너무 바빠서 연애할 여력이 없다고 대충 둘러대면 안 되는 걸까?
된다. "천황 폐하 만세!"를 외쳐도 되고, 김부장님 오늘따라 20년은 젊어보인다며 딸랑딸랑해도 되고, 헤어지기 위한 적당한 구실을 찾아내도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한다고 하는 건 정직한 게 아니다. 눈치가 없고 사회성과 융통성이 떨어지는 거다.
다만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야 한다.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 친일파인 척을 하더라도 속으로는 자신이 독립운동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여자 친구에게는 상처주지 않기 위한 적당한 구실을 둘러대더라도 스스로는 헤어짐의 이유가 뭔지를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여자 친구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었다면 다음번에는 그런 단점이 없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돈이 없어서 결혼을 추진하지 못하는 거라면 돈을 열심히 모아야 한다. 그 이유를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 혼자 만들어낸 착한 사람이라는 가짜 이미지로 자신을 보호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