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든, 다 괜찮아
겨우 아물어가는 상처를 다시 들추고
옛 기억을 마주 앉아 글로 써 내려가는 일,
생각보다 아팠다.
쓰는 내내 그때의 나를 다시 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너 뭐가 그렇게 힘들었니?"
그 질문에 제대로 답조차 못했던 나.
매일을 버티기에 급급했기에, 정작 왜 힘든지도 몰랐다.
글을 쓰며 기억을 꺼내고,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흩어지고 엉켜버린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실체를 마주하고 싶었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은 나아지길 바랐다.
그 시절, 주변엔 나 같은 사람이 없었다.
세상에 나만 이렇게 힘든 줄 알았고, 그래서 더 외롭고 괴로웠다.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 커뮤니티를 밤새 뒤졌다.
사막 속 오아시스처럼 마음을 건드리는 글 한 편에 숨통이 트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살아갈 힘이 났다.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
포기하고 싶었던 날도, 중간에 덮어버리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지금 나는 이 마지막 문장을 쓰고 있다. 조금은 더 단단해진 내 마음을 바라며...
이 글을 나 자신에게, 그리고 어딘가에서 아파하고 있을 당신에게 조심스럽지만, 용기 내어 건넨다.
# 근황
복직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초과근무와 주말근무로 정신없이 일했던 시기도 있었고,
예전처럼 화장실로 뛰어가 울었던 날도,
일을 그만두고 싶던 날들도 있었다.
큰 행사가 끝나고 현타가 와서 한두 달 현상유지만 하며 쉬엄쉬엄 일해본 적도 있었다.
지금은 사업 업무에 서무·회계 업무까지 겹쳐 바쁘게 지낸다.
그런데… 의외로 괜찮다.
사업을 하며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실적에 쫓기는 것보다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아 조금은 귀찮지만 틀이 정해진 일들을 하는 것이,
막연히 겁이 나 피했던 서무회계 업무가 힘든 것도 있지만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일이 바쁘니 사람들이 전보다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느낌이다.
일은 많은데, 일을 쳐내는 나름의 성취감도 있고 가끔은 이대로라면 다닐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나는 일이 싫었던 게 아니라, 사람에 지쳐 있었던 거였다.
‘공무원 일은 대충 해도 된다’는 말도 들었지만, 해보니 그건 나랑은 안 맞았다.
열심히 해야 스스로 떳떳하고, 관계도 훨씬 편해진다.
최근 인사이동으로 함께 일하게 된 선배 주사님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라 많이 배우고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
지금은 그저,
직장에서 사내 정치니, 정보수집이니, 인맥 관리니 등 다른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내게 주어진 업무만을 해내며 지내고 있다.
# 인간관계
이전 글에선 ‘마이웨이’를 외쳤는데,
이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공무원 조직 안에서 '마이웨이'는
웬만한 멘탈이 아니고서는
솔직히, 버티기 어렵다.
잠시나마 시도해 봤던 내 입장에선
혼자 다녀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았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입조심하고, 거리도 살짝 두며...
오버하며 억지로 말하진 않지만,
어울리는 시늉이라도 하며
조직에서는 불편해도 함께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게 내 결론이다.
# 우울증 치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아쉬움이 하나 있다.
우울증 치료를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
나는 스트레스에 유난히 취약한 편이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무너졌고, 늘 완벽을 향해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이런 내 성향과 공무원 조직의 환경이 맞물리며, 우울은 아주 조용히, 천천히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우울증’인지조차 모른 채, 그저 ‘내가 약한가 보다’ 하고 스스로를 탓하며
결국 버티지 못하고 1년간 ‘질병휴직’을 하게 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다른 지병이었지만, 실은 우울이 진짜 이유였다.
다행히 휴직기간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짜증, 분노, 감정 기복, 무기력함은 여전히 남아 나를 괴롭혔다.
예전에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울증 약 먹어가며 직장 다니느니 차라리 그만두고 말지.”
지금은 그 말을 번복한다.
공무원이 된 이후 자라난 이 우울은 되돌릴 수 없다. 이 직장을 그만둔다고 해서 우울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도망이 아니라 마주하고 살아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치료를 시작했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초록색 약 한 알을 복용한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고, 삶에도 여유가 생겼다.
일도 예전보다 훨씬 덜 힘들다.
이제는 분명히 안다.
결국 나를 덜 힘들게 하는 방법은, 치료였다는 것을.
# 위기는 또 온다
복직 후, 나를 챙겨주시던 타 팀의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위기는 또 올 거야' 그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안다.
앞서 말했듯 본래 하고 있던 사업 업무에 회계, 서무 업무까지 추가되며 너무나 바빠졌다.
열몇 명의 업무를 취합한다는 건, 각각의 개인을 하나하나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공지해도 사람들은 읽지 않고, 알려줘도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처리한다.
결국 내가 다 수습하는 일의 반복.
이미 알려준 일도, 사람들은 당시에 귀담아듣지 않다가 다시 묻는다.
한 사람씩만 응대해도, 열댓 명의 말을 상대해야 한다.
기한을 맞춰 제출하지 않는 사람들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
사람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내가 마치 ‘해결사’인 양, 모든 일에 나서주길 기대한다. 사실 나도 모든 업무를 다 알진 않는다. 나도 찾아보고 알아가봐며 하는 것이다. 그 일들은 굳이 서무가 아니어도 스스로 해결 가능한 일도 많다. 그렇게 업무의 한계 없이 애써 도와줘도, ‘당연한 일’로 여긴다. 반면, 몇 달 전 내가 조심스럽게 협조 요청을 부탁한 일은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나 혼자 처리할 방법을 고심 중이다.
급박하게 제출해야 하는 자료 때문에 연가나 휴가자에게 연락을 하면, 미안하고 자책감이 든다.
서무가 아니면 겪지 않을 감정이다.
사무실의 잡다한 일은 모두 내 몫이다. 그 누구도 ‘잡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예전의 나는 전임 서무를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에 손님 차 대접이나 설거지, 과장님의 쓰레기통 비우기 같은 일 정도는 선뜻 도왔었다. 하지만 내가 서무가 된 지금,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허탈하고, 서운하고, 서럽다.
지쳐간다.
바쁜 업무 탓에 여름휴가도 쓰지 못했다.
남들은 며칠씩 쉬는데, 나는 단 하루도 ‘휴식’을 위한 연가를 쓰지 못했다.
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하지만 팀에는 정규직이 둘 뿐이고, 대직자는 장기 연가 중이라 당분간 쉴 수도 없다.
쌓이고, 또 쌓였다.
게다가 서무 업무 외에도 사업 업무 때문에 팀장님은 연말 행사임에도 벌써부터 독촉을 하며 압박을 주신다.
터졌다.
복직 후에도 화장실에서 몰래 운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번엔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밥조차 먹지 못하고 밖에서 한 시간 내내 울었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복귀했지만, 부은 눈을 보고 무슨 일인지 묻는 말에 모두 앞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휴직 전에도 거의 매일 화장실에 가서 울긴 했지만, 사무실에서 터진 적은 없었는데…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30분을 내리 또 울었다.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억지로 웃으며 조퇴하지 않고 끝까지 일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칠흑 같은 우울함 속에 새벽 늦게 까지 울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금요일이라 천만다행이었고, 다음날이 정신과 진료일이라 또 다행이었다.
# 건강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매일 먹는 약의 용량을 올려 주셨다.
사무실에서 감정이 복받칠 때 진정할 수 있는 약,
그리고 어제처럼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먹는 수면제도 처방해 주셨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휴직 전 가장 힘들었던 시기와
휴직 후 8개월 동안 집에서 울기만 하며 칩거하던 동안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뇌의 신경물질 불균형이 생긴 것 같다고.
지금이라도 치료를 시작해서 다행이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편도선도 심하게 부어
이비인후과에서 주사를 맞고, 약도 무려 여섯 알이나 더 처방받았다.
내일은 공무원 입직 후 생긴 안압 상승과 유방물혹 때문에 또 병원에 가야 한다.
평일엔 연가 쓰기가 눈치 보여서, 가급적 일요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 가기 위해 하루라도 쉬고 오면 그만큼 일이 쌓이고, 배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나는 이 편이 낫다.
비교적 건강체질이던 내가 공직 입직 후
이유 없이 CA19-9 췌장암 수치가 급격히 올라가 몇 달 정밀 검사를 받고,
헬리코박터 균이 안 없어져 세 번이나 제균치료를 했고,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것도 처음 겪은 후 고통받고 있고, 어느 날은 원인불명의 복통에 밤새 시달리기도 했다.
2년 전 건강검진 때만 해도 없던 갑상선 결절이 올해 새로 생겼고,
난생처음 크게 다래끼가 나 눈 밑에 엄청 큰 농양을 빼기도 하고, 시력도 더 나빠졌다.
제설 작업 후 아프기 시작한 손목은 여름이 되어도 나아지지 않고, 가끔 마우스 작업을 할 때 파스 없이 일을 할 수 없다. 이제 와서 공무상 재해(산재) 신청은 나아지려니 하며 파스로 버텨온 나에게 병원 초진 기간이 원인 발생일과 너무 멀어 불가하다.
내성발톱이라는 게 생겨 몇 주 치료받으며 고생했고,
고지혈증 약을 시작했으며, 경계성 당뇨로 추적관찰도 하고 있다.
원인불명의 극심한 심계항진이 온 적도 있었다.
이렇게 여기저기 몸이 아파와 주말은 늘 병원투어이다.
퇴근 후엔 스트레스로 폭식을 한다.
무엇보다 직장을 다녀온 뒤로는 진이 빠져 집에 와서 아무것도 할 힘이 없다. 운동이 스트레스에 좋다는 걸 알지만, 중증 우울증을 겪은 후 만성 우울증으로 이어진 무기력 때문에 의지의 문제로 극복이 어렵다. 실행에 옮기는 건 컨디션이 좋을 때 가끔이다. 집안일을 거의 못하는 아내지만 이해해 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가끔 잔뜩 예민해져 퇴근해 집에서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고 말싸움을 한다.
가족은 말한다.
6년간 중소기업 다닐 때는 잘 지내던 내가 공무원이 되고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말한다.
나 역시 정신과 몸 모두 망가져버린 내 모습을 보면
이걸 버티는 것이 내 의지의 문제인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는 건지
의문이 들고 고민이 된다.
# 공무원이어야만 했던 이유
중소기업을 다니며 받았던 사회적 시선과 나 스스로의 자격지심은
내가 꾸역꾸역 이 직장을 버티고 있는 이유다.
누군가 그랬다.
공무원은 ‘좋은 직장들 중엔 제일 후지고, 후진 곳들 중엔 제일 좋은 직장’이라고.
적지 않은 나이, 스펙도, 스킬도 없는 기혼 여성.
지금의 나는, 공무원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곳이 스스로 떳떳하고, 내 조건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기에... 놓기가 어렵다.
# 향후 계획
공무원 조직이 주는 안정감 속에 , 나는 내 인생 가장 불안정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내가 언제까지 공무원을 할지는 모르겠다.
이 글은 사직서를 써가면서까지 버텼던 내 인생의 기록으로
잊히기 전에 남겨 두고 싶다.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쫓기듯 살아온 인생.
그러면서 내 몸과 마음은 망가져 버렸다.
예전엔 뭔가를 더하면서만 삶을 채워 왔다.
하지만, 이젠 뭘 더 하려고 애쓰지 않으려 한다.
이제는 자기 계발을 위한 강의수강도 쉬고, 공부도 멈췄다. 호기롭게 도전한 문예창작 대학원 입시도 탈락한 것이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신 ‘여백’을 만들고 있다.
요즘 내 가장 큰 관심사는
주어진 날들의 버팀, 그리고 나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일이 힘들어도 퇴근 후 여백의 시간을 생각하면 버틸만하다.
그 無의 시간을
산책, 드라마, 독서, 미식, 잠 보충...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현재를 온전히 누리며 여유 있게 살아가고 싶다.
#사직서를 냈던 공무원.
언제까지 이 직업으로 살지는 모르겠다.
다시 사직서를 내게 된다면
무너진 마음으로 내쫓기듯 냈던 사직서가 아닌, 냉정히 생각하여 내 인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 사직서가 될 것이다. 그래서 가슴속의 사직서는 아직 내 안에 있다.
공무원이 아니어도 된다.
어느 직업을 가져도 나는 나 자체로 소중하다.
나는 지금 그걸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버팀분투ing.
대한민국 중간으로 어떻게든 버텨보고자
영혼은 집에 두고, 몸뚱이만 질질 끌고 출근한다.
과거 99.9% 차올라있어서 0.1%에도 터져버릴 것 같던 풍선이었던 내가
이제는 적응 51%, 부적응 49%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
그래도, 텅 빈 마음 한 조각이라도 꼭 안고서,
내 몫의 하루를 조용히 버티고 견뎌낸다.
완벽하진 않아도, 흔들려도, 그만두지 않았다.
열심히 아프고, 성실히 버텨온 나를
이제는 조금 더 다정히 안아가며
어쨌든 내가 선택했고, 숱한 시련에도 버리지 못한 직업,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