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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Aug 06. 2021

부검 결과

사인 불명

9월 28일에 행해진 부검 결과서는 11월 13일에 입수할 수 있었다.

출산휴가에서 복귀한지 2주차였고 해질녘 형사의 연락을 받고 사무실을 뛰쳐나와 부리나케 차를 몰아 강력2계인가로 쫓아들어갔다.


공식 부검결과를 받기 전 사십여일동안, 왜 죽은걸까? 란 의문은 자나깨나 매순간 나를 죄여매고 있었다. 아기를 방관해 죽였다는 죄책감에, 나는 여태 살아있음이 참담했고, 나는 내가 아직 잃을 것이 많은 인생이라고 스스로 말해보면서도 자녀 동반 자살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죄책감은 밑도 끝도 없고 그저 고통이라, 나는 이것이 앞뒤를 가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인과가 필요했다.

부검 결과 서면상의 구체적인 사인이, 그 날 무얼 놓쳤던 것인지, 귀책이 누구에게 있는지 지목하는 데 근거가 되어주길 소망했고, 이 무더기같은 귀신같은 죄책감에, 줄거리가 생기길 바랬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싶었다. 귀책자를 갖게되어 죄책감도 경감되길. 출구가 생기길 바랬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검 결과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오로지 '예방접종과 죽음은 상관없음'을 증명하는 데만 힘을 주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국가 기관끼리 하는 일이란 게 그런거 아니겠냐는 냉소가 있었고, 실지 독감 백신 이후 불상자 부검 결과와 부검결과에 불복하는 국민청원이 연일 뉴스에 나오던 시기였다.


그런 뉴스를 목도할 때, 나는 오로지 나의 시련과 고통에만 함몰되어 있어서,

우리 애도 독감백신으로 인한 사망이었다면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텐데, 그럼 부검 결과가 빨리 나왔을텐데, 아니면 우리 부부가 권세가 있거나 유명인이었다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 부검 결과가 빨리 나왔을텐데, 아니, 내가 권세가나 유명인이었으면 응급실 의사가 그렇게 쉬이 돌려보내지도 않고, 소아과에서도 공들여 접종 사전검진을 하고, 그런 결격 사유의 산후도우미가 매칭되지도 않았겠지, 이런 '만약에' 진을 빼며 이십사시간 나를 원망했다.


내가 부검결과로 상상하던 사인은,

1번. 신경안정제 과복용 혹은 신경안정제와 B형간염 백신과의 상호작용 - 그러나 상호작용이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단 연구결과는 없을 것 같았다.

or 2번. 장염 상태에서 B형간염 백신 투여

or 3번 부검으로서 밝혀진 선천적 장기 결함


입주산후도우미가 소지하고 있던 1개월치의 렉사프로정5mg와 콜린페트정을 발견한 이후 나는 1번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신경안정제나 수면제 처방에도 접근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원체 잠을 잘 자지 못해 이 일을 한다는 도우미의 말, 죽기 전날 아침 유난히 힘들어하며 졸음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 도우미의 낯빛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밤새 아기가 몇번 깨어나 몇개의 젖병을 썼는지 나는 매일 세지 않았다. 유난히 힘들어하는 도우미를 두고도 5시간 가량 아기랑 둘만 두고 나는 외출했다. 산후도우미와 아기가 자는 방에 cctv도 설치하지 않았다.


분유에 섞여먹였을 신경안정제가 너무 미량이라 부검 결과 검출되지 않을까봐, 죽기 전 괄약근이 열린다더니 여러차례의 변에 그 약물이 다 배출되었을까봐, 나는 도리어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증거가 없을까봐.

부검 전후로 산후도우미와 통화를 했다. 아직도 아기 우는 소리가 귓가에 들러 정신과에 다녀왔다며 우는 소리를 하는 산후도우미에게 나는 약물에 대해 아무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국과수가 요청한 신생아 돌연사 관련 질의항목에 대해 산후도우미와 통화하면서도, 왜 애 얼굴이 회색인데도 내가 깰때까지 나를 먼저 깨우지 않았느냐고 질책하지 않았다. 증거를 쥐어야 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증거를 쥔들, 산후도우미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모두 나의 방관 하 가능했던 것이니 사실 원죄는 나에게 있다.


그 시점, 남편은 이미 자녀상 당한 자신의 처지를 수습할수 없는 과거라고 괄호 안에 묶어두고 현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부검 결과야, 민사/형사 재판 근거로 쓸 수 있는지 공개되면 그 때 판단해보자 정도만의 의미를 두고.

단순하고 현명한 마음가짐처럼 읽히나, 나는 남편이, 효율 운운하는 꼴이, 애도의 절차를 건너뛰려는 수작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응원하면서도 각자의 다른 행동양식을 어쩔 수 없이 경멸하며,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력계 사무실로 들어가 부검결과서 열람을 위해 사건관리과 담당자를 기다리고 사인 절차를 하고, 사진은 제외한 채 그 자리에서 열람 허락된 하드카피를 내줬다.


..류가 검출되지 않음 (독성화학과 감정에 의함)

.. 따라서 본 건은 예방접종에 의한 사망으로 보기 어려움
.. 등을 종합할 때, 부검소견 및 사후검사에서 사인으로 인정할만한 명백한 소견이 확인되지 않은 바, 변사자의 사인은 해부학적으로 불명임.


부검으로 사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예방접종을 사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 결론을 위해 그 이전에 많은 문장이 동원되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카톨릭대학교성빈센트 병원 응급실 첫번째 내원 시 의무기록요약은, 병원에서 추가 수정본을 보냈거나 아니면 부검감정서 작성자와 그 의사가 통화를 한 게 아닐까 싶게 내용이 미묘하게 변경되어 있었다.


4)내원 당시 진찰결과
 가) 많이 아파보이지는 않음
  ..
 라) 호흡음 깨끗함

내 눈에 그렇지 않더라도 의사의 소견이 그렇다 하면 그것이 진찰결과가 된다는 사실에 새삼 다시금 분통이 터졌다..지만 결론은 사인 불상이다.

내가 느낄 허탈함을 안다는 듯이, 형사 서넛이 나를 둘러싸고 말했다.


- 민사를 하실거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 연락해보세요.


담당형사는 말했다.


- 부검 결과가 나왔고 추가 조사할 것이 없으니, 사건은 종결해도 될까요?


11월 저녁, 이미 추위가 시작되고 해가 떨어진 도로를 내질러 조급한 마음으로 첫째를 하원시키러 가면서,

사인불상 결과에 나는 약간 홀가분했던가.

'정말로 나 불러세우려고 하나님이 쉬이 줬다 도로 데려간건가?'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사람이 그냥 죽을 수도 있지. 신생아가. 이유 없이.' 이렇게도 중얼거려보았다.

신호 대기에 걸렸을 때, 아기가 죽은 지 처음으로 아기 사진을 볼 용기가 생겨 사진첩을 열었다. 보고 싶었다. 아깝고 불쌍한 내새끼.


그러나 내 죄책감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부검 결과가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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