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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희 Aug 09. 2021

죄책감과 같이 살기

내 생도 죽음으로 가고 있는 것을

아기가 돌연사 하기 전날, 당일날, 그리고 화장까지는 분 단위로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 가을, 겨울은 어떻게 지냈는지 인상을 가진 날이 별로 없다.


아기 돌연사에 대한 감정은, 상실감(그리움), 미안함그리고 죄책감인데

앞 두 감정보다 죄책감이 압도적으로 나를 지배하고 있다.

이 죄책감은 일상생활에서도 내가 내 생각을 갖거나 발언하는 것을 스스로 저지하게끔 했고('너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는 잘 살면 안되.' 라고 여생에 어떤 기대나 노력을 하지 말라고 남편에게까지 악을 쓰기도 했다.

죄책감이 내게 형벌이고 그것이 마땅하다 스스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한편,


나는 이 죄책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고도 싶었다.

뭐, 뭐, 어쩌라고. 내 새끼 내가 간수못해서 뒈져버렸는데. 옛날엔 신생아 죽는거쯤은 흔한 일이었는데.

이러한 깊은 슬픔에는, 정작 남의 시선은 물론 위로조차 전혀 영향력이 없었지만, 마치 남한테 떠벌 이렇게 혼잣말하며 나는  죄책감에 무감각해지고 싶기도 했다.

이 죄책감을 찍어내릴만한 자극에 남은 생을 내어주고 싶었다. 결국 뇌를 죽이고마는 코카인, 성기 대 성기 뿐인 섹스, 시간관념을 표백해버릴 도박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루틴을 지키기 위해 몇가지 예식을 만든다는 남편 옆에서, 그를 경멸하며,

나 역시 일상과 자책감을 매일 굴렸다.

더럽게 안먹는 입짧은 첫째 아이의 평균미달 몸무게를 걱정하며, '그것이 알고 싶다'와 '실화탐사대'의 범죄 탐사보도를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감정이입하며 독파하면서, 연일 보도되는 아동학대 뉴스의 가해자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하며, 그래서 뉴스를 외면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며 내가 외출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텐데 매일 새벽 눈물지으며, 급하고 중요한 업무들을 빵꾸내며, 때로는새끼 죽어나간 이 집구석에서 여웃돈이 없어 별수없이 꾸역꾸역 살고 있는 현실이 싫어서 숙박업소로 내빼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 와중에, 죄책감을 자기 형벌 감옥으로 삼지않고, 죄책감을 가지고도 이럭저럭 생을 꾸려갈 수 있겠다위안을 준, 마음의 전환점이라고 할만한 생각이 있으니,

나는, 나도, 죽는다는 것이다.


죽어서 나중에 어디 좋은 데서 다시 만난다, 그런 얘기가 아니다.

언제 어떻게가 될지 모르나 내 인생도 한정적인데, 지금 이 모양새도 내 유한한 시간의 한쪽이라 생각하면,

기왕이면 순간 순간 좋은 기억을 만든다면. 과거에 너무 천착하자 말자. 지금밖에 모르는 천치처럼.

나도 어미 뱃속에서 나온 유기체인 뿐인 것을.


예전에는 죽음이, 더이상 내가 나를 의식하지 못한다는 그 단절이 너무나 두렵고

그래서 SF영화처럼 의식을 하드 드라이브에 이식할 수 있다면 기꺼이 지불의사가 있는 자의식 과잉자였지만,

이제는 비로소 죽는다는 것이 내 일로도 받아들여진다. 침상에서 점점 숨이 꺼져지는 나를 종종 상상한다. 그 때 우리 아기가 떠오를까. 인생이 유한하단 것에, 안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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