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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은 Oct 25. 2021

세 잔의 커피

화해의 방식

평일 저녁 남편과 카페 나들이를 했다. 동네에서 30여분 거리로 걸어가서 식사도 하고 예쁜 카페에 들러 차 한잔 마시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크다 보니 이제는 저녁시간을 주로 나 혼자 보내거나 남편과 단둘 이만 보내야만 한다. 둘만이 즐기는 시간이 좋을 때도 그저 그렇게 시간 때우기식일 때도 있다. 혼자 있기 외로워서 상대를 찾다 보니 남편이 제일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혹은 내가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가족이기에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부부간에는 의무감, 그리움, 기대감등 다양한 감정이 오고 간다. 그중 부부간의 기대감으로 인해 행과 불행이 오고 간다.

 



첫 번째 커피는 내 기대로 인해 쓸쓸히 마무리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묵혀놓았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남편은 일언지하에 내 이야기 초반에 거절했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된다면서. 나는 그저 이야기를 건네고 나중에 상세히 다시 논의해보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야기를 단칼에 잘라버리니 마음이 상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남은 커피가 식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갈 때는 팔짱을 끼고 갔던 길을 돌아올 때는 나란히 걷지도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굳은 침묵 속에 왔다. 


부부들마다 싸우는 방식은 차이가 있을 거다. 나와 남편의 싸움은 늘 침묵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혹여 말로 하다 보면 내 마음에서 벗어나서 말이 말을 낳는 꼴이 될까 우려돼 가슴에 하고 싶은 말을 그 순간에 묻어둔다. 남편 또한 말을 계속하다 보면 소리가 커지고 자신을 통제치 못할 상황이 될까 두려워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 방법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당장 하고픈 말을 참아야 하니 답답함이 쌓여간다. 그럼 나중에라도 이 순간을 기억해내며 서운한 감정에 휩싸인다..


많은 부부들이 공감하겠지만 부부싸움이란 게 이유를 들어보면 대개는 별일도 아니다. 우리 역시 그랬다. 작은 말다툼이 처음에 품었던 기대감이 어그러지는 것을 감지했을 때 감정이 폭발하는 거다. 이미 빗나간 감정의 골은 되돌리기 힘든 지점까지 이르러버린다. 화도 가시지 않고  되돌릴 방법도 모른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커피 한잔을 하자고 말을 건넸다. 새벽에 잠을 깨고 지난밤 내가 왜 화났을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깊이 생각의 저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다. 난 성과 없는 지금의 삶에 허탈감이 가득했다. 그걸 남편을 통해 해결해보려고 했던 거다. 속 깊은 이야기를 동네 공원에서 커피 한잔 들고서 나누어보았다. 그러던 중 남편의 지금 심리상태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커피는 화해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서로가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평소에는 어색해서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린 다음 날 세 번째 커피를 마셨다. 이건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이다. 집에서 차를 몰고 한 시간 내의 외곽으로 나갔다. 둘째를 데리고 셋이서 함께 점심을 먹고 식당 근처 베이커리 카페를 들었다. 어제의 어색하고 화난 감정을 날려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신호의 표시다. 기대치 않은 시간이었는데 내 마음은 평온함으로 가득했다. 일요일 오후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날씨가 좋아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세 번째 커피는 특별한 것 없는 두 시간여지만 내겐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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